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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Aug 23. 2024

프롤로그. 기억 안나?



** 소설 속 사건과 인물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        



                         


공간을 인식하는 것은 공동체를 인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야마모토 리켄 (‘2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다음 사람에겐 그러지 마.”

머리가 핸들에 부딪친 순간, 희진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이어지는 굉음과 후면을 때리는 강한 충격에 놀랄 새도 없었다. 사람은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면 주마등처럼 인생의 순간들이  스쳐 간다고 들었다. 그런데 자동차 에어백이 터지고 숨이 막혀오는 찰나에 생각난다는 게 잠수이별한 전 여친이라니. 그녀의 마지막 잔상이 깨진 유리파편처럼 사정없이 박혀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오른 손으로 귀 주변을 더듬어보는데 피가 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왜 정신을 잃어가는 것 같을까. 머리에 쥐가오는 것 같다. 설마 졸린 건가? 여기서 잠들면 끝장인데. 왼손으로 옆을 더듬어 차 문을 열려는데 안에서 열리지 않는다. 갑자기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죽어 저승에 간다면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 야구선수가 되지 못한 것? 아니면 프리츠커상을 받지 못한 것? 뭐가 됐던 간에 지금 죽으면 아쉬운 인생인 건 맞다. 고작 32살이니.


얼마 정도 지났을까. 차창 밖이 소란스럽다. 아마도 구급대원들이 출동했을 거다. 고속도로긴 했지만 시내진입 구간과 가까웠으니 금세 달려왔을 거다.


- 똑.똑.똑


드디어 내 차까지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창문을 덮을 듯한 덩치를 가진 그는 댐을 개방하듯 굳게 닫혔던 문을 활짝 열었다. 바깥 공기가 확 들어오면서 경직됐던 몸에 힘이 풀렸다. 살았다. 이제 곧 병원으로 이송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구출을 기다리며 문을 연 구급대원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런데 몸 상태를 묻고 차에 박힌 나를 꺼내줘야 하는 그는 운전석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한참을 뒤적이던 그는 드디어 원하는 걸 찾았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의 두툼한 손에는 내 손가락과 어떤 기계가 들려있다.      


삐빅, 삐삐.   


뭐지. 뭘 한거지. 신분조회를 한 건가. 이런 응급상황에서 신분조회보단 빨리 처치하는 게 먼저 일 것 같은데. 다중 추돌이 났을 때의 프로세스인가? 상관없다. 발견되었고 곧 병원으로 옮겨질테니. 그런데 내 지문을 확인한 대원이 내 손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다시 차 문을 닫는다. 아니, 날 두고 어디가? 어디 가냐고!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문을 마구 두드렸다. 소리를 들은 대원은 멈칫 하더니 다시 차문을 열어 내 얼굴에 본인 얼굴을 들이댄다. 입꼬리 한쪽을 올린 그는 내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아저씨, 내가 말했잖아. 안 구해줄 거라고. 기억 안나?”










-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시드니입니다. 출간이 연달아 있어 당분간 새로운 글을 쓰기 어려울 것 같아, 2019~2021년에 써두었던 단편소설을 몇편 업로드 합니다. 습작생 시절 쓴 글이라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고 구성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재미로 쓴 글이니, 재미로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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