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다

by 시드니


아침에 일어났다.

이런, 또 운동을 못갔다.

나는 왜 끈기가 없지.

한숨만 나온다.

내일은 꼭 가야지




[아침에 일어났다]

누군가 나를 내려다본다면 몸을 웅크린 애벌레 같을 거다. 아파트에 살기에 망정이지, 천장이 없었다면 영락없이 일찍 일어난 새의 먹이가 되었으리라. 주섬주섬 손으로 뒤적이니 뭉툭한 물체가 손에 잡힌다. 아침부터 날 깨우려고 우렁차게 소리쳤지만 꿈쩍없는 날 포기해버린 핸드폰. 죽은 핸드폰을 톡톡 치니 숨을 토해내듯 액정에 불이 들어온다. 번뜩이는 불빛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옆에 잘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아마 매슬로가 다시 태어나 욕구이론을 쓴다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는 핸드폰 위치 확인인 걸로 정리해야 할 거다. 다들 화장실 뛰어가기 전에 핸드폰 부터 찾지 않는가. 생리적 욕구보다 더 앞서는 게 바로 핸드폰 위치 파악이다. 다행히 욕구가 충족되어 핸드폰을 손에 쥐고 기지개를 켠다. 비로소 애벌레에서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되는 순간이다.


[이런, 또 운동을 못갔다.]

새의 먹이는 피했다는 생각에 안심하는 찰나, 머리를 딩 하고 울리는 자각이 스친다. 오늘 아침 6시 새벽 요가를 갔어야 했다. 또 못 가고 말았다. 한숨을 쉬며 아쉬움을 토로해 보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요가에 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아니, 어제 잠들기 전부터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고차원적이고 빅데이터화된 내 몸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 약 40년간 데리고 산 이 몸은, 비록 알람을 6시에 맞췄을지언정 절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북극 한기가 한반도에 갇힌 맹렬한 한파인데, 어찌 가장 추운 새벽 시간에 요가를 간단 말인가. 그건 애벌레의 생존 본능에 어긋나는 일이다.



[나는 왜 끈기가 없지. ]

다만 오늘은 정말 갔어야 했다. 인간이라면, 최소한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오늘은 요가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나의 목 디스크를 고쳐주고 승모근을 내려주었으며, 무엇보다 기초 체력을 길러준 선생님과의 이별이었다. 처음 요가원을 찾은 건 목 디스크가 최악의 상황에 치달았을 때였다. 목뒤가 너무 묵직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병원에 갔지만, 돌아온 건 '추간판 팽윤'이라는 가벼운 소견뿐이었다. '팽윤'이라는 요상한 어감이 주는 찝찝함에 괴로워하던 중, 지인이 요가로 디스크를 극복했다는 말에 덜컥 집 앞 요가원에 등록했다.


처음에는 요가의 기초 자세인 다운독(기지개 자세)조차 버거웠으나, 점차 몸이 유연해지며 꽤 난도 있는 동작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체력이 붙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목의 통증은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새벽반을 다니며 무너진 몸을 재건해 나갔다. 그런데 간사하게도 몸이 좀 살만해지니 요가원에 발길을 끊는 횟수가 늘었고, 이제는 수강료만 선뜻 내버려 두고 나타나지는 않는 어설픈 부르주아 상태가 되어버렸다.

[한숨만 나온다.]

배가 불렀다. 돈이 없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면서—참고로 나는 **《청담동 살아요, 돈은 없지만》**이라는 책을 썼다—정작 수업료를 기부만 한 채 요가원에 가지 않고 있다. 재벌가 장녀이자 아이돌인 올데이 프로젝트의 애니(annie)도 콜롬비아 대학교 학위를 따겠다고 기를 쓰고 복학해 수업을 듣는다는데, 돈도 없는 주제에 요가 수업을 빼먹고 있다니. 게다가 오늘은 무려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날이 아닌가. 나는 대체 어느 수준의 미물인 것인가. 돈이 아쉬울 것 없는 사람조차 열정을 다해 사는데, 정작 돈도 없는 나는 겨우 애벌레적 생존 본능에 기대어 눈만 끔뻑거리고 있다.



[내일은 꼭 가야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지금이라도 요가원에 갈까 고민하던 찰나, 얼마 전 쇼츠에서 본 블랙핑크 제니(jennie)의 인터뷰가 스친다. 제니는 쉬는 날 눈을 뜨면 침대 속에서 원 없이 뭉개다가 나오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 했다. 그 순간, 나 역시 이불 안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남짓. 이 찰나의 순간 이불 속으로 복귀하는 선택이야말로 진정 풍요롭고 부유한 자의 결단처럼 느껴진다. 부지런해서 뭐 하겠는가. 어쩌면 부지런함이란 여유 없는 자들의 궁여지책일지도 모른다. '올데프' 애니도 아직 덜 유명하니 학교에 복학한 것이지, 제니만큼 독보적이었다면 학교고 뭐고 활동에 전념하지 않았겠는가.


그래,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다시 눈을 감으며 생각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소통할 방법이 어디 하나뿐이겠는가. 오늘 저녁 요가원에 출석해 선생님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찾아 DM을 보낼 거다. '마지막 날 뵙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그동안 제 몸을 잘 수련시켜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전해야지.

다시 침대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동안 괜찮았던 목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한다.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것에 대해 몸이 내리는 즉각적인 벌인 것일까.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잠들면 아픔 따위 느껴지지 않겠지.


나는 다시 한번 나를 안온한 행복 속으로 던진다.

난 참 행복한 애벌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