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돈이 없었어요
나의 《F 폭격기》 졸업논문 지도교수님은, 진정한 역사가가 되어 사회에 나가기 위해선 두 가지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첫째, 졸업논문을 오직 자신의 창의성, 논리성, 객관적 역사적 증거물들만으로 완성해 역사학계에 기여한다. 둘째, 자신의 논문 연구 지역에 가서 6개월간 살아본다. 이 뭔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지만 온전히 자신이 쓴 역사를 자신의 몸에 새겨 넣으라는 뜻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게 진정한 역사가가 되는 길이라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프랑스에 사는 것에 무한한 열망을 품었다.
피 말렸던 졸업논문을 간신히 통과하며 첫 번째는 달성했으나 언제나 두 번째가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난 《프랑스》하면 파리 Paris밖에 몰랐고, 소르본(Sorbonne, 파리 4 대학)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파리는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하다. 월세 120만 원? 한 달 생활비 70만 원? 그런 돈은 없었다. 모아 놓은 돈도 몇 백 안 되어 부모님께 지원받는데 염치없이 파리로 가겠다 고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유학원 원장님께 고민을 털어놓다 나온 대안이 지방이었다. 라벤더와 지중해로 유명한 남부 지방도 세계적인 대도시 파리와 아름다운 Mont-Saint-Michel(몽생미셸)이 있는 북부 지방도 아닌 딱 중부 지방, Auvergne(오베르뉴). 그곳엔 인구가 2만 5 천명 남짓한 작은 도시, VICHY(비시)가 있다.
약국화장품 브랜드로만 알고 있던 VICHY, 이게 도시이름이라고? 그리고 진짜 있다고? 유학원 원장님은 VICHY가 작고 조용한 도시라 공부에 집중하기 딱 좋고, 어학원도 시립이라 잘 되어 있어서 6개월이면 충분히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추천했다. 게다가 파리에 대비해 50~70% 정도 낮은 예산을 가지고도 지낼 수 있다는 점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다만, 즐길 거리도 없고 따분한 도시라는 평이 있고, 프랑스의 지방 소도시라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아 정보도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공부하기엔 딱 좋다잖아?
그래, 그럼 여기다, VICHY로 가자!
이렇게 나는 스물넷, 뭐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떠나도 되는 나이에 프랑스 소도시, VICHY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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