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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11. 2023

 프랑스 소도시 VICHY의 두근두근 초여름

본격적인 타국 생활 적응기


vichyssois

1. [형용사] 비시(Vichy)의

2. [명사] 비시 사람


파리에는 파리지엥(parisien)이 있다면, 비시에는 비시수와(vichyssois)가 있다.








  한국이라면 아침부터 밤까지 반팔만 입고 다닐 6월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프랑스의 6월은 달랐다. 투명한 여름 하늘 속, 구름이 달랐다. 


  뚱뚱한 구름이 몰고 온 비가 수시로 오락가락하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 갑자기 흐려져 비가 내리기도 하고, 해가 쨍쨍한데 여우비가 와서 도시 전체에 보석이 내리듯 춥고 눈부시게 만들기도 했다. 하루에 비가 세 번씩 오기도 했으니 '사실 여긴 영국이 아닐까..?'하고 생각했을 정도. 게다가 아침과 저녁나절은 서늘하기까지 해 긴팔 외투는 필수였다.


구름이 떼 지어 몰려다녔던 프랑스 VICHY의 초여름


  일교차가 꽤 나다 보니 얼마 안 가 바로 감기에 걸렸다. 챙겨간 비상약을 아껴 먹었지만 결국 둘째 주 주말에 앓아누웠다. 여름에 감기라니,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변덕스런 날씨를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다. 처음에는 우산을 챙겨 다니다 툭하면 비가 내리니 나중에는 그냥 맞고 다니는 편을 선택했다. 그 편이 가방도 마음도 가볍고 편했다. VICHY에 적응하는 첫걸음은 날씨였다.








  어쨌거나 프랑스인들에게 6월은 여름의 시작이자 Vacance(바캉스, 여름휴가)의 시작이다. 여름이 온다는 것은, 프랑스인들에게는 떠나라는 신호이며 외국인들이 몰려온다는 신호이자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이 굉장히 느려진다는 신호다. 여름휴가를 즐기러 외국이나 다른 도시로 많이 빠져나가는 만큼 기존 영업시간을 변경하거나 문을 닫는 상점들도 많다. 심지어 행정기관은 업무를 중단한다.


한여름날 VICHY의 광장, 사람이 없다


  바캉스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도 있다. 여름에 급증하는 노인 사망률이다. 이는 프랑스 바캉스 문화와 여름 더위가 만들어낸 현상으로 한국에선 연말에 노인들의 고독사를 알리는 뉴스가 많이 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몇 달간의 여름휴가로 다들 이곳저곳으로 떠나면 노인들을 돌볼 사람이 없고, 대개 가정마다 에어컨이 갖춰져 있지 않아 쉽게 더위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름마다 자원봉사자들이 노인들의 끼니를 도시락으로 만들어 배달해 주며 그들의 건강을 돌보기도 한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고 활기 넘치는 여름의 프랑스를 기대하고 온 나는 실제로 마주한 텅 빈 도시에 벙- 쪄버렸다. 프랑스인들이 살아가는 프랑스의 풍경이 보고 싶다면 여름은 때가 아니었다. 여름 프랑스에서 맞닥뜨리고 지나치는 이들은 그저 관광객들이다. 여행자들이 프랑스인들이 떠난 도시를 채우고, 남아있는 소수의 프랑스인들조차 곧 가게 될 바캉스를 기다리는 것이 프랑스의 여름이었다. 실로 태양과 바다의 계절에 프랑스인들은 떠나버렸다.






  버스 시간표조차 달라서 보는데 애먹었다. VICHY는 한국의 여느 시골처럼 버스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월~토와 일요일&국경일의 시간표가 달랐고, 거기서 바캉스 기간의 시간표가 또 달랐다. 이 도시에서 경제적으로 아끼며 먹고살려면  버스가 절실했다.


 가까운 시내에도 마트 Monoprix가 있었지만 규모가 작았고, 가격이  비쌌다. 대형마트 CORA는 중심부에서 약 3km 떨어져 있었기에 여름이 짙어지고 유례없는 기록적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땡볕 아래 왕복  6km를 걸어서 오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그 고생을 두어 번 해보니 버스만이 살 길이었다.


제일 멀리 있었지만 저렴했던 대형 마트 CORA, 왕복 6km가 걸렸다



  내성적이라 당시 심하게 쫄보였던 나는 VICHY에서  버스 타는 것도 크나큰 용기가 필요했다. 항상 먼저 조사해 보고 행동하는 계획형 인간이라 인터넷으로 프랑스에서 버스 타는 영상을  검색하고, VICHY의 버스시간표와 노선을 다 찾아보고, 머릿속에 수차례 시뮬레이션까지 돌려가며 연습한 후에 버스를  탔다. 



VICHY 중심부를 통과하던 A 버스 노선도와 시간표

 

프랑스 VICHY의 전기 버스


  뭘 하든지 인사가 기본인 유럽이니 Bonjour! 인사하고, un ticket, s'il vous plait(표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며 준비한 돈을 버스기사에게 직접 주고 영수증과 잔돈을 거슬러 받았다. 요금은 1.5€. 한국에 비하면 꽤 비쌌지만 더위로 부터 생명을 보장받는 값으로는 싸다. 전기차였던 버스는 넓고, 한적하고, 조용했다. VICHY에서 첫 버스를 타니 생애 처음 버스를 타는 것 마냥 들뜨고 모든 것이 생경했고 신기하기만 했다. 뭔가 이뤄낸 것 같은 기쁨이 마음에서 넘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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