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본모습을 원하고 또 원하지 않느라 항상 바빴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나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모든 나를 전부 가지는 건 불가능했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소피아의 재앙」
제가 가진 내러티브 개념이 무엇이든 간에 궁극적으로는 그림이 나타나는 현실에 뒷전으로 밀려나며, 이미지는 항상 저보다 그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책은 그 자신의 삶을 갖고, 나쁜 책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해 비틀리고 씨름하고 구부러지면서 모양이 만들어지죠.
결국 웨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은 (불교적 관점에서) 존재와 사물의 영속성과 무상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변하고 동시에 모든 것이 남아 있다. 혹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이미 말했듯이, 변화를 제외하고는 영원한 것은 없다. (…) 만화가에게는 정체성과 자기 유사성의 개념을 비난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단순히 그래픽 코드의 구성을 변경하는 게 그것이다.
산문은 선물이 아니라 노동이다. [......] 즉, 종속 구문은 노력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그것은 예지, 기억, 수단과 목적의 합치를 필요로 한다-정말로 생산적이기도 하다. 즉, 그 결과는 부분들의 총합 이상이다. 왜냐하면 종속절은 절들 사이의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의미는 분절적이 되며, 전에 존재하지 않던 양상들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 이것이 바로 복합성이 생겨나는 방식이다.
(프랑코 모레티, 「소설」, 『멀리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