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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효 Jan 27. 2024

녹족부인




(13) 을지문덕을 잡아라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제께서도 을지문덕을 보면 사로잡아 압송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문술도 을지문덕을 체포하는 데 동의하였다.



“안 됩니다. 절대로 그리하면 안 됩니다.”

유사룡이 우문술과 우중문의 의견에 반대하였다.



“위무사, 황제 폐하께서 을지문덕을 보면 사로잡아 압송하라고 나와 우문술 장군에게 밀명을 내리셨습니다.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우중문의 눈이 황소눈 처럼 커졌다.



“우익대장군 말이 맞소. 황제께서 그리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상서우승께서 어찌 반대하시는 겁니까?”

우문술이 유사룡이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두 분 장군들께서 어느 정도 병법을 안다면 나의 말을 알아들을 겁니다.”

유사룡은 우문술과 우중문의 손까지 잡고서 극구 만류하였다.



‘아니, 이자가 보자 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병서라면 나도 수십 번도 더 읽고 실전에 응용도 하였다. 특히, 거란이나 돌궐 등과 수많은 전투에서 나는 병법을 활용하여 매번 승리하였다. 그런데, 붓이나 잡고 있던 유사룡이 병법 운운하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우문술은 유사룡의 말이 괘씸했지만 참고 있었다.



“위무사, 요즘 들어 함부로 말을 하는데, 병법에 적장을 절대로 잡으면 안 된다는 구절이 어디에 나와 있답니까? 손빈(孫臏)의 손자병법에 그런 말이 있더이까? 아니면, 오기(吳起)의 병법서의 나와 있습니까? 그도 아니라면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에 그런 말이 한 적이 있습니까?”



우문술과는 달리 우중문은 핏대를 세우면서 유사룡을 힐난하였다. 그러나 유사룡은 빙그레 웃으며 오히려 우중문과 우문술을 어리보기 대하듯 했다. 유사룡이 여유 있는 자세로 나오자 우문술은 유사룡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위무사. 어째서 을지문덕을 체포하면 안 된다고 하는지, 이유나 들어봅시다.”



우문술이 일단 유사룡이 반대하는 이유가 듣고 싶었다. 우문술은 유사룡이 병법뿐만 아니라 천문지리까지 통달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있었지만, 그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나라 군대가 고구려군과 주요 전투를 할 때마다 유사룡은 천문이 어떻고, 지리가 어떻고 하면서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들에게 말참견하였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유사룡의 말을 들어서 크게 낭패를 본 적이 없었다.



“좌익위대장군, 살파랑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살파랑(殺破狼)이란 게 뭡니까? 낙양에 있는 고급 기루 이름입니까? 아니면 고구려 기녀(妓女) 이름입니까? 나는 태어나서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봅니다.”

속으로 유사룡을 깔보던 우문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많은 장수가 병법서만 읽었다면 이는 겨우 말 타는 법을 배운 것에 불과합니다. 병법을 제대로 배운 자는 천문과 지리에도 능통해야 합니다. 을지문덕은 살파랑 격국(格局)을 구성하고 북쪽 하늘을 지배하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살파랑은 북두칠성 중 탐랑성, 파군성, 칠살을 말하는데, 장군들이 을지문덕 장군을 해치거나 곤란에 빠지게 하면 자칫 황제 폐하의 목숨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황제 폐하께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그 모든 책임을 두 분 대장군께서 져야 합니다.



내가 근자에 천문을 자주 염탐해보면서 자미두수(紫微斗數) 12궁 중 황제에 해당하는 별들을 관찰하니 천이궁(遷移宮)에 흉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바로 살파랑의 격국에 의한 일이니 을지문덕 장군을 그냥 돌려보내야 합니다. 아직은 을지문덕을 잡아 둘 때가 아닙니다. 삼백만 수나라 대군의 고생이 자칫 무위로 돌아가고 고구려 원정은 수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자중해야 합니다.”



우중문과 우문술은 유사룡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진법(陣法)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유사룡이 을지문덕에게 위해를 가하면 황제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말에 우문술과 우중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유사룡이 천문지리에 능통하다는 풍문을 몇 차례 들은 바는 있지만, 황제의 목숨이 연관되어 있다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우중문이 우문술의 팔을 잡고 잠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일각(一刻)이 지난 뒤에 다시 나타났다.



“우리 두 사람은 위무사 의견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대장군님들, 정말로 잘하셨습니다. 황제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우문술과 우중문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본영 막사로 돌아왔다. 을지문덕과 우중문, 우문술은 보름 후에 다시 수나라 진영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 약속에는 을지문덕이 고구려 태왕과 조정의 관리들을 모두 데리고 함께 오는 조건도 붙었다. 세 사람은 웃는 낯으로 술잔을 비우고 밖으로 나왔다.



을지문덕과 수행원 두 명이 수나라 진영을 빠져나와 동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을지문덕 일행이 돌아가고 나서 우중문은 삼록을 불렀다.



“대장군, 찾으셨습니까?”


“내가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다. 유사룡이 나에게 흥글방망이놀은 게 틀림없다. 을지문덕을 체포해야 했다. 촐랑이 유사룡의 체 치 혀 때문에 대사를 그르친 게 분명하다. 삼록대장은 구록대장과 병사 열 명을 데리고 을지문덕을 추격하여 잡아 와라.”



“알겠습니다.”


우문술도 을지문덕을 보내놓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유사룡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은 게 아니라면 위무사인 유사룡이 천문지리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었다. 우문술은 자신의 좌익위대장군 진영으로 돌아가던 중 다시 말머리를 돌려 우중문에게 향했다.



“삼록대장님, 구록대장님, 저기 을지문덕 일행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와 대략 천여 보(步)쯤 되는 거리입니다.”


우중문의 명령을 받고 을지문덕 일행을 추격하던 수나라 추격병이 소리쳤다. 정말로 을지문덕 일행이 뽀얀 흙먼지를 날리면서 동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 압록수가 추격병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곧이어 을지문덕 일행을 태우고 돌아갈 중선도 보였다.



을지문덕 일행은 뒤를 돌아보다가 한 떼의 기마병이 자신들을 추격해오는 것을 보고 더욱 말을 빨리 달렸다. 을지문덕 일행이 수군추격대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추격병들이 타고 있는 말이 을지문덕 일행들이 타고 달리는 말보다 빨랐다.



“장군, 거기 서시오. 할 말이 있소이다.”

“을지문덕 장군, 잠깐 서시오. 전달할 물건이 있소이다.”



추격병들이 을지문덕 일행에게 소리쳤다. 그때 삼록은 구록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구록이 삼록의 신호를 받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맨 뒤로 빠졌다. 이유도 없이 말달리는 부하들을 세울 수는 없었다. 을지문덕 일행과 겨우 백 보 정도고 거리가 좁혀졌다.



“장군, 수나라놈들에게 잡히게 생겼습니다. 말이 빨리 달리지 못합니다.”

“큰일이다. 적정(敵情)을 잘 살폈는데, 잡히면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만다. 저기 강기슭에 고구려군 배가 있다. 조금만 더 달려라.”



을지문덕은 압록수 가까이 접근하면서 위험한 상황이 되면 북쪽으로 오리쯤 더 달릴 계획이었다. 그곳에 웅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을지문덕 일행과 수나라 추격대 사이가 거의 좁혀졌을 때였다. 갑자기 수나라 추격병들이 화살을 맞고 비명을 질러대며 말에서 떨어졌다. 주변에 고구려 군사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추격병들 모두가 땅에 떨어지고 삼록과 구록만 말을 타고 있었다. 형제의 손에 활이 들려 있었다. 형제는 말에서 내려 을지문덕을 향해 절을 하였다. 압록수를 향해 달리던 을지문덕은 기이한 일을 목격하고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장군, 가시면 안 됩니다.”

“장군, 위험합니다. 저들이 속임수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너희들은 잠시 여기서 기다려라. 나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오면 안 된다.”



을지문덕이 느끼는 바가 있었다. 수나라 진영에 들어가 우중문과 우문술을 만날 때 그들 곁에 일록, 삼록, 구록이 무장한 채 호위하고 있었다. 녹족 삼 형제는 을지문덕과 시선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목례를 하며 예의를 갖추었다. 이전까지 보아온 수나라 군관이나 장수들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을지문덕은 녹족 삼 형제와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가가서 그들의 이름과 소속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말에서 내린 을지문덕이 삼록과 구록에게 다가갔다. 삼록과 구록은 을지문덕이 가까이 다가와도 일어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을지문덕에게는 단검 한 자루도 없었다. 을지문덕이 엎드려 있는 형제의 등을 두드렸다.



“고맙습니다. 두 분께서 이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을지문덕이 형제에게 고맙다고 존댓말을 하자 그제야 형제는 고개를 들어 을지문덕을 올려다보았다. 형제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장군님, 다시 한번 절을 올리겠습니다.”

“그만해도 됩니다.”



을지문덕이 녹족 형제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세 사람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치 아버지가 아들들과 대화를 하는 모양새였다. 을지문덕의 수행원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기이한 사건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몰라 우두망찰 말 잔등에 앉아만 있어야 했다.



한 식경(食頃)쯤 지나서 녹족 형제는 을지문덕과 헤어져 수나라 진영이 있는 쪽으로 말을 달렸다. 을지문덕은 형제를 보내놓고서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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