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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효 Jan 27. 2024

녹족부인




(12)을지문덕의 염탐










“두 분 장군께서 이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 고구려에도 차가 다양하게 있습니다. 이 사람은 고구려 인삼을 달인 차를 즐겨 마신답니다.”

을지문덕이 탐스러운 수염을 쓸어내리며 여유를 부렸다.



“호오, 고구려 인삼이 몸에 참으로 좋다는 소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내가 평양에 입성하면 인삼차를 실컷 마셔봐야겠습니다. 인삼이 남자들 정력을 보강하는 데 좋다고 하는데요? 요즘 들어 내가 정력이 달려서 그런지 밤일이 시원치 않습니다.”

우중문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



“두 장군께서 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대군을 이끌고 먼 달려 압록수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으니, 내가 나중에 대장군들께 고구려 인삼을 선물하지요. 인삼을 잘못 먹으면 오히려 몸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인삼을 복용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몸 상태를 알아봐야 합니다. 인삼이 누구에게나 잘 듣는 게 아니랍니다.”

을지문덕의 말에 뼈가 들어있었다.



“아, 그렇군요. 고구려 인삼이 영약이란 말을 예전부터 들어왔습니다. 백제와 신라에서도 인삼이 산출되는데, 고구려 인삼이 최고라고 하지요? 장군께서 선물하신다니 기대가 됩니다.”



침착한 성격의 우문술이 을지문덕을 흠모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우문술은 을지문덕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덕담이 너무 오래가는 듯 하자 진진이 옆에 있다가 자주 킁킁거리며, 불편해했다. 그는 통역하면서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때 밖에 있던 위무사 유사룡이 술 냄새를 풍기며,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을지문덕에게 시선이 꽂혔다.



“위무사 어른, 이분은 고구려군 총사령관 을지문덕 장군이십니다.”

진진이 유사룡에게 을지문덕을 소개했다.



‘오오-, 과연, 과연 파군성의 정령이 사람으로 화(化)한 게 분명하구나. 일록 좌장의 말대로 한 마리의 맹호로다. 아니, 맹호가 아니라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거대한 항용(亢龍)이로다. 나는 지금까지 이처럼 고고하고 헌거로운 호걸은 처음 본다. 내가 이 호걸 옆에 있어도 강한 자기(磁氣)가 느껴진다. 이런 사람이 우리 수나라에 태어났더라면 황제가 되고도 남는다. 검은 팔자 수염과 대춧빛보다 붉은 얼굴, 파란 안광(眼光)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눈, 여인네보다 크고 진한 입술, 아-, 과연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영걸이로다.’

유사룡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위무사 어른, 어제 드신 술이 아직도 안 깨십니까? 이분은 고구려군 총사령관 을지문덕 장군이십니다.”

유사룡이 을지문덕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자 진진이 다시 한번 소개했다.



“어? 아! 그, 그렇지. 고구려군 총사령관이신 을지문덕 장군님이시지. 미안합니다. 제가 장군의 용안(龍顏)을 바라보다가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송구합니다. 소인은 수나라 상서우승으로 별동대에 소속되어 위무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을지 장군님을 직접 알현하니 감개무량합니다.”



유사룡이 이상하리만치 을지문덕에게 고개를 반쯤 숙여 체머리 떨며 굽신거리자, 우중문과 우문술은 자존심이 상했다. 우중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무사, 용안은 황제에게나 쓰는 말이오.”

“아, 알지요. 알고말고요. 을지문덕 장군님은 황제보다 더 위에 계신답니다.”

“아니, 뭐라고요? 위무사는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요?”



우중문이 불쾌하고 뇌꼴스러운 얼굴로 유사룡에게 꾸짖듯 소리쳤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을지문덕은 그만 자리에 앉아 있기가 멋하여 자주 큰기침을 해댔다.



“자, 장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중하셔야 합니다.”


그 와중에 진진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우중문에게 진정하라고 애면글면했다. 을지문덕은 웃음이 났지만, 간신히 참고 있었다. 진진이 겨우 유사룡과 우중문 사이를 진정시키고 을지문덕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는 고구려군 총사령관이신 을지문덕 장군과 강화회담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제 인사치레는 그 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모두가 바쁜 사람들이니 군소리는 될 수 있으면 빼고 알맹이만 가지고 논하는 게 좋은 듯 합니다.”



우문술이 좌중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자 우중문이 컥컥대며 부아가 난 심사를 진정시켰다. 유사룡은 우중문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음에도 정신을 못 차린 듯 을지문덕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중문과 우문술이 싸움닭이라면 을지문덕 장군은 독수리라 할만하다. 양광 황제가 을지문덕이나 고구려 태왕을 보면 반드시 잡아서 요동의 대본영으로 압송하라고 했다. 우중문이 그리하고도 남을 자이다. 내가 말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나 우리 수나라 군사들은 을지문덕에게 전멸당할 수 있다.



유사룡이 혼잣말로 중절 거리자 우중문은 그를 반 거둘 충이 취급하며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사룡은 황제가 보낸 위무사였고, 조정에서 벼슬도 자신보다 위에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 막말을 하기가 거북스러운 존재였다.



“어제 웅록이란 전령이 와서 장군이 오늘 우리 수나라군 군영으로 오신다는 통보를 전하고 갔습니다. 우리는 장군께서 이 전쟁을 끝내고 양국이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파격적인 방안을 가져왔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문술이 먼저 운을 뗐다. 을지문덕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고구려군은 귀국의 대군을 맞이하여 전군이 목숨을 걸고 응전하고 있습니다. 수나라는 고구려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습니다. 이번 전쟁에 삼백만이 넘는 군사를 동원하였고, 그중 별동대는 파죽지세로 이곳 압록수까지 진격하였습니다. 이제 압록수만 넘으면 우리 고구려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해서, 고구려는 대국인 수나라에 항복하고자 합니다.”



“참으로 잘 생각하시었소. 진작에 그리했어야지요. 어험-.”

우중문이 몇 가닥 안 되는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다가 한쪽이 항복할 때에는 장군 한 사람이 할 수는 없습니다. 고구려가 우리 수나라에 항복할 의사가 있다면 당연히 국정을 책임지는 고구려 태왕이 와서 항복해야 합니다.”



우문술이 을지문덕을 노려보았다. 초면에 을지문덕에게 안온한 얼굴을 보였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인상이었다. 우중문이 더펄이라면 우문술은 구미호(九尾狐)였다.



“우문술 대장군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오늘은 내가 고구려 태왕을 대신하여 고구려가 수나라에 항복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현재 고구려 태왕께서는 압록수 건너 고구려군 진영에 계십니다.



일단 두 분 장군께 고구려의 항복 의사를 전하고 열흘 후에 내가 태왕을 모시고 다시 수나라 진영으로 올 것입니다. 한 나라의 지존이 오고 가는 문제를 사전 절차도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을지문덕이 열흘 후에 고구려 태왕을 모시고 다시 올 예정이라는 말과 사전 절차를 꺼내자 우중문과 우문술은 눈을 크게 뜬 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을지문덕의 말뜻을 정확하게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고구려의 태왕을 예의로 맞이하기 위해 요동 대본영에 상주하고 계신 황제 폐하를 이리로 모시고 와야 합니다.”

유사룡이 끼어들었다.



“그것은 불가하오. 여기서 요동까지는 말을 달려서 갔다가 오는데 보름은 걸리는 거리요. 차라리 고구려 태왕이 요동의 수나라 대본영으로 가는 편이 나을 듯싶소.”

잔꾀로 똘똘 뭉친 우문술이 두 눈을 치켜뜨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우리 태왕께서는 옥체가 불편하시어 말을 못 타십니다. 우마차나 걸어서 가야 하는데 그리되면 요동까지 가는데 두 달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귀국의 황제께서 이리 오는 편이 훨씬 수월하지요. 그리하면 전쟁도 빨리 끝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을지문덕이 곤란한 표정으로 우문술을 노려보았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어차피 고구려가 항복하는 것이니, 시간은 촉박하지 않습니다. 보름 후에 고구려 태왕과 왕비, 을지 장군 그리고 고구려 조정의 문무백관 전체가 일단 이곳 수나라 진영으로 와서 하루쯤 쉬다가 다시 요동과 압록수 사이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 황제 폐하께서도 약속 지점으로 나오실 겁니다.”

성질 급한 우중문이 대안을 제시했는데, 고구려에게 매우 불리했다.



“좋습니다. 그리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럼, 나는 즉시 돌아가서 태왕께 이 사실을 알려고 평양성에 있는 조정의 만조백관을 속히 오라고 해야겠습니다.”

을지문덕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우중문이 을지문덕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잠시만요. 을지 장군께서 좋은 소식을 가져오셨는데 그냥 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이렇게 만났으니 술이라도 한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을지 장군은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조촐한 술상을 보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나나 우중문 대장군이나 평소에 을지 장군을 존경해왔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만난 기념으로 함께 술 한잔 정도는 마셔야지요.”



우중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문술도 한마디 하고 따라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유사룡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중문이 막사 밖으로 나가면서 우문술과 유사룡에게 눈을 찡끗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막사 밖으로 나가자 을지문덕과 진진만 막사 안에 남았다.



“을지문덕이를 돌려보내면 안 됩니다. 저놈을 체포하여 황제 폐하가 계신 요동의 대본영으로 압송해야 합니다.”

우중문이 주변을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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