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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모(1)

혼돈의 시대

by 최재효


[역사 중편소설]



김씨 왕조를 연 여걸 김옥모(金玉帽)에 관한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 소설은 전기(傳記)가 아닌 픽션이 가미된 소설이니 오로지 소설 작품

으로 감상 부탁드립니다. - 저자 최재효









혼돈의 시대







천년을 이을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로국은 진한 12개 소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소국들을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합병하며 나라의 세(勢)를 불려 나갔다.



박혁거세부터 3대 유리 *이사금까지 박 씨 성(姓)의 군주들이 통치하다가 석탈해(昔脫解)가 제4대 군주가 되면서 바야흐로 석 씨의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서라벌에는 박 씨나 석 씨보다 먼저 김 씨 족벌이 뿌리를 내리고 상류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김 씨들은 정치적으로 박 씨나 석 씨보다 열세에 있었기에 자신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 줄 구심점과 그럴듯한 신화가 필요했다.



탈해 이사금 9년에 *금성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궁성 안에 있던 이사금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면 보통 닭이 아닐 것 같았다. 이사금은 신하 호공(瓠公)을 보내 사정을 살펴보게 했다.



* 이사금(尼師今) - 이사금은 '치리'라는 뜻으로 이(齒)가 많은 사람, 즉 연장자는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후계자를 뜻하는 말이다. 이 호칭은 마립간으로 바뀔 때까지 사용되었다. * 금성 – 금성(金城)은 박혁거세부터 탈해이사금 때까지 사로국(계림국)의 도성이었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뻗쳐 있고 나뭇가지에 황금빛 찬란한 궤짝이 걸려 있는데, 그 아래 흰 닭이 울고 있었습니다. 소신이 그 황금 궤짝을 가지고 대궐로 돌아오려고 하니, 새와 짐승들이 소신의 뒤를 따르며 기뻐하여 뛰놀고 춤을 추었나이다.”



호공이 탈해 이사금에게 고하니, 이사금이 그 궤를 열어보았다. 황금 궤짝 안에는 용모가 수려한 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오, 이 아이는 필시 하늘이 나에게 보내준 선물이 틀림없다. 나라 백성들에게 알리고 경축하게 하라. 그리고 강상(綱常)의 도를 어긴 흉악범을 제외한 죄인들을 모두 석방하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깎아주고 당분간은 백성들을 동원하는 노역을 금지하라.”



탈해 이사금은 사내아이를 얻은 기념으로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나라의 이름도 사로국에서 계림국으로 바꿨으며, 그 아이를 거두어 양자로 삼았다. 또한, 아이가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씨를 김 씨로 했다. 아이는 자랄수록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이름을 ‘알지(閼智)’라 했다.



알지는 탈해 이사금의 아들로 성장하였고 태자에 봉해졌으며, 혼인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군주의 자리를 박혁거세의 후손인 박파사(朴婆娑)에게 양보해야 했다. 알지는 대보(大輔) 벼슬에 만족하며 자손을 번성시켰고, 김 씨의 시조로 추앙되었다.



계림국 세 번째 지존 *노례(弩禮) 이사금의 비(妃)와 탈해 이사금의 아들 구추(仇鄒)의 배우자도 김 씨였다. 또한, 파사이사금의 비와 여섯 번째 군주 지마(祗摩) 이사금의 배우자도 김 씨였다.



* 노례 – 박혁거세의 아들로 유리(儒理) 이사금으로도 불린다.


계림국의 여덟 번째 군주였던 아달라 이사금이 후사가 없이 붕어하자 구추의 아들 석벌휴(昔伐休)가 아홉 번째 군주가 되었다. 이로써 석 씨가 다시 지존의 자리를 되찾았다. 벌휴 이사금은 두 아들을 보았는데, 큰아들이며 태자인 골정(骨正)과 둘째 이매(伊買)였다.



그런데 골정과 이매 형제가 다른 성씨 부족들과 권력 다툼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말았다. 얼마 뒤에 벌휴이사금이 붕어하자 다음 군주의 자리는 당연히 골정의 두 아들 중에서 선정되어야 했으나 결과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분하다. 당연히 나의 두 아들 조분(助賁)이나 첨해(沾解) 중에서 계림국의 지존이 나와야 하거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이매 아들 내해(奈解)에게 군주의 자리를 빼앗겼다. 조분과 첨해가 어리니 내가 섭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남편이 죽고 권력에서 멀어지니 되는 일이 없구나. 김 씨 가문의 선조들과 친정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한(恨)을 아들들을 통해 성취하려 했거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구나.”



“어머니, 침수 드실 시간입니다. 벌써 *자시(子時)가 지났습니다. 많이 취하셨어요. 이러다 어머니 옥체라도 상하실까 걱정입니다.”



골정 태자의 비(妃) 옥모부인(玉帽夫人) 김 씨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짖었다. 큰딸 수로(水老)가 실의에 빠져 초저녁부터 술잔을 벗 삼으며 지청구를 해대는 *그미를 달랬다. 그미는 계림국 최고의 미인이었다. 골정 태자와 일찍 혼인하여 슬하에 두 아들과 자매를 두었지만, 외모는 아직도 처녀티가 났다.


* 자시 – 밤 11시~ 다음날 새벽 1시 사이.

* 그미 - 주로 문학 작품에서, ‘그녀’를 가리키는 말.



백옥 같은 피부에 아름다운 얼굴, 늘씬한 키, 허리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 각종 황금 장식품과 비단옷 등이 그미의 고귀한 신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골정 태자와 혼인하기 전에 그미는 이미 계림국뿐만 아니라, 고구려나 백제국까지 소문난 경국지색이었다.



골정 태자와 시아버지 벌휴 이사금도 그미의 아름다운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울까 걱정하여 항상 웃는 낯으로 대할 정도였다. 그미는 가무뿐만 아니라 규방술까지 경지에 올라 골정 태자가 다른데 시선을 줄 수 없게 했다. 그렇다고 그미의 언행이 되퉁스럽거나 돈바른 것은 절대 아니었다.





-계속-








* 오탈자나 비문 등은 최종 탈고시 수정 및 보완 예정입니다.

깊은 이해 있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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