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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모(4)

흔들리는 첨해 이사금

by 최재효 Apr 20. 2023

[역사 중편소설]











흔들리는 첨해 이사금





첨해 이사금 앞으로 항렬이 같은 두 명의 이사금이 있었다. 바로 내해와 조분 이사금이었다. 계림국 열 번째 내해 이사금이 붕어하고 그 뒤를 그미의 큰아들 조분(助賁)이 군주의 자리에 올랐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붕어하였다. 조분 이사금의 뒤를 이어 아우 첨해가 계림국의 열두 번째 군주가 되었다.



내해 이사금이 붕어할 때 그에게는 태자인 우로(于老)와 이음(利音)이 있었다. 우로와 이음의 생모는 바로 그미의 딸 수로부인이었다. 우로와 이음 형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주가 되지 못한 것에 한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외할머니인 그미와 어머니 수로부인 때문에 밖으로 울분을 표출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내해이사금이 평탄한 군주 역할을 하고 임종 전에 두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우로야, 이음아, 아비의 유언을 잘 새겨들어라. 내가 죽거든 내 뒤를 이을 사람은 조분이다. 너희들은 군주의 자리를 탐내면 절대로 안 된다.’



 첨해 이사금은 이찬 장훤(長萱)을 *서불한(舒弗邯)으로 삼아 국정을 맡기고 양부(良夫)를 이찬으로 삼았다. 궁궐 근처에 남당(南堂)을 짓고서 그곳에서 주로 국정을 처리했다.    


  

* 서불한 - 계림국 17 관등 중 1등 관위로 우벌찬(于伐飡), 각간(角干), 이벌찬(伊伐飡)이라고도 했다.

      


 첨해 이사금 즉위 이듬해 사벌국이 계림국에 반기를 들고 백제에 귀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계림국은 우로(于老)를 파견하여 전쟁을 벌여야 했다. 계림국은 겨우 사벌국을 제압했지만, 왜국의 침입으로 심각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때 왜 열도는 산과 섬에 의지하여 30여 개의 읍락국가(邑落國家)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야마타이국(邪馬台国)이 가장 강력하여 열도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다. 히미코(卑彌呼) 여왕이 야마타이국을 다스렸는데 그녀가 죽고 뒤를 이어 현재는 이요(壹與) 여왕이 다스렸다.



 “공주야, 네가 나라를 위하여 큰일을 할 때가 된 듯하구나.”

 “모후,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소녀는 얼른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일은 꼭 사내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사내들보다 여인네들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가 아니다. 제왕의 이불속에서 세상의 모든 일이 정해지기도 하고 없었던 일이 되기도 한단다.”



 그미는 바르게 자란 석정 공주를 바라보며 대견해했다. 아비 없이 자란 탓에 행여 성격이 삐뚤어지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그미의 큰딸 수로부인은 내해 이사금과 혼인하여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지만, 이제는 미망인이 되었다.



그미는 고구려에 첩자를 보내 고구려 왕실의 사정을 알아보게 했다. 그미가 고구려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백제와 왜국의 침략을 막강한 고구려의 힘을 빌려 막아보려는 셈속이 있어서였다.



 또한, 최근 들어 이매 계열의 외손들이나 박 씨 족벌(族閥)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머지않아 계림국에서 피바람을 부르는 정치적인 대격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미를 더욱 초조하게 했다.    



 “모후, 소자도 모후의 말씀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사금께서는 당연히 모르실 테지요. 이 어미만큼 남삼한과 대륙 그리고 주변국들의 정세(政勢)를 잘 아는 이가 또 누가 있겠습니까? 군주가 된 지 사 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이사금도 권력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입니다.”  



 “모후, 아직도 소자는 정치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미는 갑자기 첨해 이사금이 덩둘해 보이자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공주는 이 어미와 함께 고구려로 가자. 지금의 계림국은 내외 우환으로 폭풍 전야와 같은 상태다. 네가 조국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 같다. 이 일은 어미가 하룻밤 만에 결정한 게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수백 수천 번도 더 고민하고 번민한 결과다. 너희 남매는 무조건 어미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고 따라주기를 바란다.”



 “모후, 공주를 고구려 태왕에게 바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이제야 그미의 말귀를 알아들은 첨해 이사금이 놀란 안색으로 물었다.



 “모후, 소녀는 모후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하오나, 고구려 태왕 정도면 궁궐에 이미 여러 명의 절세가인이나 아름다운 비빈(妃嬪)이 있을 터인데, 소녀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어찌하나요?”

 “여인이 사내를 후리는 일은 얼굴로 하는 게 아니다.”



 그날부터 그미는 월정 공주에게 규방의 비술(祕術)을 전수하였다. 그미는 이미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상태로 귀족사회의 사내들 취향과 그들의 기호(嗜好)를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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