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 되던 해의 가을, 여성 수영 9시 초급반에 등록했다. 수영장 풀(pool)은 두 곳으로 한쪽은 수심 0.9미터, 한쪽은 수심 1.3미터이다. 초급반은 물론 더 얕은 쪽에서 배운다. 우리 반 회원은 열 명이 넘었다가 점차 예닐곱 정도로 줄었다. 잘하는 순으로 하는데, (예상은 했지만) 나는 맨 마지막 순번에 정착했다. 유일하게 내 뒤 번이던 70대 어르신은 두어 번 나오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2~30대 회원은 달이 바뀔 때마다 들고 나갔는데, 이미 잘하거나 금세 잘했다. 몸도 탄탄하고, 파워나 스피드의 차원이 나와는 다른 느낌. 다만 그들은 결석이 잦거나 몇 달 안 되어 그만두고는 했다. 물론 아무리 자주 빠져도 나보다는 월등히 잘했고.
선생님은 젊은 여성으로 숏컷에 마른 편이고 목소리가 칼칼했다(그녀를 모쌤이라고 하겠다). 눈매가 날카롭고 말이 빨라서 늘 혼나는 기분이고 늘 지적받는 건 사실이나, 누구도 대수로이 여기지 않고, 마무리는 둥그렇게 모여 환한 얼굴로 “화이팅!”을 외치며 훈훈하게 끝난다.
나는 의외로 성실한 면이 있어서(그 증거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내내 개근상을 받았다), 수업 시간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모쌤의 설명을 놓칠세라 귀를 곤두세우고 그녀의 가르침과 내 몸짓이 일치하도록 무던히 애를 썼다. 수업을 마치고도 5분쯤 연습을 했고 수영 교재나 유튜브 영상을 들여다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인체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려고도 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학생일 것이나, 내 열심과는 달리 배우는 속도는 마냥 더디었다.
하루는 ‘왼손으로 킥판을 잡고 옆으로 누워 발차기’와 같은 고난도의 동작을 하는데, 자세를 전혀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새로운 동작을 배울 때마다 대개 그런 식이었다.) 입과 코로 물을 잔뜩 들이키고 볼썽사나울 것이 틀림없을 자태로. 모쌤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표정으로 “혹시 어린 시절에 물에 빠졌다거나……, 뭔가 트라우마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섯 살 때 옥상 계단을 오르다 떨어진 것 말고는 물에 관한 기억은 없어서, 단지 겁이 많을 뿐이라고 했다. 모쌤은 나보다 열 살 남짓 어리지만 그녀 앞에서는 늘 쪼그라드는 심정이 되었다. 그녀가 나를 보는 눈빛에는 ‘그러려니’ 하는 체념과 ‘그래도 계속 나온다니’ 하는 의아함, ‘심지어 성실하다니’ 하는 신기함 같은 게 복잡하게 서린 듯하다.
모쌤한테 지겹게 들은 말은 역시 “힘을 빼라”는 것인데, 내 서툰 동작이 물과 반응하는 낯설고도 격한 양상 때문에 두려움에 빠지고, 두려움 때문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힘이 들어가서 잘 나아가지 않는 과정이 지난하게 이어졌다. 25미터 레인을 겨우 돌고 나면 수영장 입구의 스텐 사다리를 부들부들 부여잡고 거친 숨을 헐떡거렸다. 물에서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의 흥미로움이 15라면 75는 숨가쁨의 고통이라고 할까.
무리에서 가장 뒤처지고 남들이 하는 걸 나만 못하는 기분은 안타깝기 그지없고, 따라서 수업이 마냥 재미있을 리 없건만, 차마 그만두지는 못하였다. 남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어쨌거나 나아지기는 했기 때문이다. 힘을 뺀다는 감각을 조금씩 터득하고, 호흡이 조금씩 덜 힘들어지고, 조금씩 속도를 내고, (배영에서) 조금씩 방향이 똑발라지고……. 자잘한 성취에 수시로 뿌듯해졌고, 킥판 없이 앞으로 갈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이미 충만한 감격을 누렸다.
이것 좀 봐요. 내가 물에 떠서 앞으로 나가요. 글쎄, 내가 수영을 할 수 있다고요!
올리버 색스는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서, 40대 시절 모 동네 수영장 주최 장거리 수영대회에서 우승한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20미터짜리 풀을 무려 500번 돈 후”에도 더 헤엄치려는 걸 심판에게 제지당했다고(“제발 그만 귀가하세요!”), 스트로크(수영에서, 팔로 물을 끌어당기는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수영할 때면 “마음이 자유롭게 둥실 떠오르며 넋을 잃어 트랜스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된다”고, 그 행위에 “중독되었다”고 고백한다. 중독될 자격이 충분해 보이신다.
나는 어떤가 하면, (코로나 기간을 빼고) 수영반 4년째인 지금도 (느린 건 말할 것도 없고) 한 번에 네 바퀴도 버겁다. 자세도 여전히 엉성하다. ‘자유롭게 둥실 떠오르는’ 기분은 출발하고 얼마 안 되는 짧은 순간뿐이다. 보통 (자유형) 두세 바퀴를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숨가쁨의 괴로움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당장 멈추고 싶은 충동과 격렬히 싸우며 홀로 비장해진다. 아아, 숨이 찬다. 고통스러워. 그만두고 싶다. 안 돼, 조금만 견디자. 긴장을 풀어. 할 수 있다고. 이제 한계야. 그루비야, 기운 내.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이런 주제에 나 역시 수영에 중독되어 갔다. 수영 자체보다도, 수영 후 샤워를 마치면 온몸에 퍼지는 개운함― 딱딱하게 굳은 몸이 물살에 두드려 맞고 휘저어져서 흐물흐물해지고, 맑은 쾌감이 혈관을 타고 뿜뿜 흐르는 듯한, 새나라의 어린이로 다시 태어난 듯한, 그 산뜻하고도 나른한 기운―에 도취되었다.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커피를 마시면 지복(志福)의 시간을 맛보았다. 내게는 ‘샤워 후 맥주’보다 황홀한 ‘수영 후 커피’. 아마도 이 시간 때문에 수영을 못 끊는 게 아닐까.
초급반 시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자 잘하는 20대, 나를 포함하여 40대 셋, 50대 두 분이 고정 멤버가 되었다.(50대 한 분은 ‘열외’라고 할 수 있는데 모쌤의 가르침과는 딴판으로 ‘막헤엄’을 친다. 그녀를 '샛별'이라고 하겠다.) 모쌤은 “보통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두는데 우리 반은 뒤의 1, 2, 3등(나를 포함한 40대 셋)이 아직까지……, 역시 버티는 게 살아남는……”이라며 무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젊고 운동신경이 좋아 조금만 말해도 착착 알아듣고 쑥쑥 진도가 나아가는 회원들만 있다면 더 힘이 나고 보람을 느낄 텐데. 약간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뒤에서 2, 3등이던 선, 영과는 자연스레 친해져서 수영이 끝난 뒤 티타임을 종종 가졌다. 나와 선은 아이 둘을 키우는 중이고 영은 비혼이다. 서로의 맨얼굴과 몸, 어설프고도 필사적인 몸놀림을 수없이 보고, 순수한 헐떡거림, 함께 물살을 헤쳐가는 든든함, 조금씩 가능해지는 뿌듯함을 공유한 사이라 스스럼이 없다. 수영 외에 특별한 접점은 없지만 우리는 꽤 친근한 사이가 된다. 저마다 삐걱대는 동작과 영법에 대해 떠들며 깔깔거리다, 그래도 굴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