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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여름방학

베개 싸움과 둘째 고모의 결혼

by 던다 Feb 08. 2025

3살 위로 오빠가 있다. 썩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여느 오빠들이 그렇듯 동생을 챙겨주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내가 하는 일에 주로 놀리거나 핀잔을 주는 평범한 오빠였다. 성격도 나는 능력과 재능에 상관없이 뭐든 열심히 하려던 데 반해 오빠는 상황 봐서 될 만한 걸 적당히 하는 느긋한 성격이었다. 그 기본적인 기질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커서는 더 데면데면해져서 왕래라고는 거의 명절에만 간신히 얼굴을 보는 정도이다. 그러다 일기를 들쳐보니 오빠와 이런저런 놀이를 같이 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오빠는 그 나이 남자애들답게 때리거나 던지는 것을 좋아했다. 조용한 어린이인 나였지만 오빠가 그러하니 그렇게 맞고 때리며 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빠에게 크게 펀치를 맞고 기분이 확 상해 뿌앵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가곤 했다. 엄마는 “아이고 **야 동생 때리면 안 되지”했고 그 말은 전혀 실효성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한참을 오빠란 존재는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나? 오빠가 자녀를 낳아 내 자식에게 사촌을 만들어준 것. 그것이 최선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릴 적 넘치는 시간을 싫든 좋든 오빠와 함께하며 성당도 가고 애들끼리 동네를 돌아다니고 집에서 화투도 치며 그렇게 보낸 것이 새삼 조금 고맙다.

네 명의 고모 중 둘째 고모가 결혼준비를 할 때였다. 이 고모 역시 다른 고모들처럼 상경하여 우리 집에 함께 살았다. 그러다 기차를 탔다가 옆자리 남자와 얘기하다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했던가. 그 눈 맞은 남자. 그러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당시 고모부를 만난 건 집이 아니라 집 근처 경양식 집이었다. 돈가스와 수프가 나오는 그런 가게였는데 나로서는 그런 고급 식당이 처음이라 그 기억이 선명하다.

고모부는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낯선 집안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어색해하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잘하셨다.


아버지를 비롯한 친가 친척들은 똑똑하고 성격이 좀 괴팍한 면이 있었는데 반해 고모부는 그런 똑똑함보다는 유들유들하고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좀 가볍고 바람피울 것 같다는 인상이 짙었는데 인상은 인상인 뿐 결혼 이후 처갓집 제사에 고모는 안 나타나도 고모부는 매번 오고, 여자문제도 일절 없는 아주 괜찮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당시에는 학벌도 직장도 변변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을 잘 되는 것 같았다. 고모 역시 부동산 폭등 타이밍에 맞춰 집 매매, 매수를, 그것도 적당한 지역에 한 데다가 자녀마저 초영재라 동네 엄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시절 좋은 기회를 착 잘 잡아 성큼성큼 사다리를 밟아 올라간 것 같다. 그 고모와는 왕래가 별로 없지만 여전히 큰 걱정 없이 잘 지내고 계실 것 같다.


아홉 살 던다야.
너의 세계에 함께한 오빠, 고모, 그리고 친지들이 썩 다정하고 편하지 않았지만 어찌 됐던 함께했구나. 이질적인 여러 사람들을 겪는 것 자체로 지나고 보면 배움이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편한 사람을 알아보는 법, 아니면 다정한 사람이 되는 법을 남들보다 조금 빨리 깨닫게 됐는지도 몰라.
또 두세 줄 간신히 일기를 쓰던 것에 비하면 불과 일 년 사이 엄청 일기가 길어졌네. 부지런히 쓰고 또 자라는 모습을 응원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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