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친구, 신체검사
같은 아파트 동에 살던 여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체구가 비슷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치아교정도 꽤 멀리 떨어진 같은 병원에서 했고, 같은 성당에 다녔고, 엄마들끼리도 기도 모임을 하셨다. 그런 접점이 있었다.
공백이 많던 시절, 집에 모여 놀 땐 숙제를 하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작은 책을 만들며 놀았다. 그러다가 나는 재밌지 않은데 여진이 혼자 재밌다고 깔깔댄다거나 난 기분이 좋지 않은데 그걸 모른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나만 굉장히 이해심 넓은 아이인 것 같지만 어쩔 땐 내가 작은 일로 삐지고 여진이가 양보하기도 했다.
또 나는 여진이가 얄미워서 괜히 골려주려고 아끼는 책을 숨겨놓기도 했다. (나에게도 이런 면이!) 한편 여진이는 내가 입은 옷이며 교정이며 계속 따라 해서 불편했던 기억도 있다. 이쯤 되면 잘 맞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여진이와는 삐그덕거리는 채로 꽤 오래 가까이 지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어서 같은 반이 되었는데 그 때야 비로소 소원해지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때가 그렇게 덜거덕 거리며 지내며 나와 어떤 친구가 맞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맞는 친구를 만나면 헷갈릴 것 없이 편안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일기에는 여진이의 불편한 행동에 참고 참고 참는 모습만 적었다. 그럴 땐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지 어이없게도 그 아이의 어떤 점을 본받고 싶다는 얼토당토않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의 나라면 무표정으로 지긋이 친구 눈을 깊게 바라보면서 “그만해. 기분이 나빠”라고 차분하고 또렷하게 말하겠다.
4학년의 나는 글씨를 눕혀 쓰기 시작했다. 아! 기억이 난다. 당시에 같은 반에 부잣집 고위직 자제였던 나영이란 친구가 있었다. 김나영. 성격도 활발하고 공부도 잘하던 그 아이가 부러웠다. 나영이가 바로! 글씨를 눕혀 쓰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썼다. 뭐라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는 신체검사 때 키와 몸무게를 쩌렁쩌렁 불러주었구나. 일기를 보니 나는 작고 야무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키가 작은 막내고모를 닮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큰 키도 아닌데 키가 커져서 안타까워하다니 어처구니기 없다. 저체중인 것 같은데 그걸 날씬하다고 하다니 그것도 안타깝다. 미디어 영향을 현재보다는 훨씬 덜 받을 때였겠지만 알게 모르게 키는 커야 하고 몸무게는 적게 나가야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때 더 영양가 있게 실컷 먹고 역동적인 활동을 더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것이 아쉽다.
열한 살의 던다야
사랑니 같은 친구를 만났구나. 마음이 좀 힘들었고 너도 미운 감정이 들었겠어. 표현하는 것도 서툴렀지만 그 정도라면 너에게 관계를 배워나가는 하나의 단계였다고 생각해. 고맙고 예쁜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다 보면 너에게 정말 편안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알아보는 안목도 생기고 적당히 거리 두는 법도 배워나가는 거겠지.
한창 밥맛이 없던 그때.. 몸의 사이즈는 제쳐두고 신체를 잘 쓰는 법을 배웠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만해도 훌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