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
1989년의 대학입시는 12월 중순에 있었구나. 입시 스트레스를 말하지만 그 시절의 입시가 주는 압박과 중요도는 더 컸던 것 같다. 수능이 시작되기 전 학력고사 시대였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나는 학력고사 시험일에 자못 진지해져서 인구과밀문제, 교통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저 대학입시를 중시하는 사회문화로 수험생들 지각하지 말라고 직장인, 학생들이 좀 늦게 일과를 시작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찾아보니 1980년대에 자가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교통사고율도 가파르게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 내용을 어디에선가 본 걸까.
그 시절에는 화제의 수험생 소식이 기사에 꼭 실렸다. 매스미디어의 시대라 TV와 신문에서 이야기하면 이튿날 가정에서 직장과 학교에서 깉은 내용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대학입시 결과가 나오는 지음 시골출신 한 수재의 이야기가 감명 깊었는가 보다.
지금 찾아보니 1989년 만 16세에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사람은 전근호라는 분과 (무려) 조국 전 국회의원이라고 한다. 정황상 전자의 인물 같다. 온라인 강의도 물론이거니와 참고서도 변변찮던 시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여하튼 그분은 현재 목사님이 되셨다고 한다.)
그때도 나는 노력과 끈기를 높이 사는 어린이 었다. 열심히 해 보겠다는 마음, 끝까지 해 보겠다는 집념. 그 두 가지가 있으면 무언들 못할까 싶다. 오늘날의 나는 그런 마음을 잃지 않게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이 일기이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놓는 포스트잇의 글귀이다.
개인의 다짐에도 모자라 온 국민이 노력과 끈기를 갖길 바란다는 상당히 계몽적인 내용을 끝을 맺는다.
어린 나이지만 좀 징글징글한 구석이 있었다. 이 어린이가 속세의 때를 타며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웃기지만 궁금하다. 내가 어떤 식으로 변화해 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던다야.
맑고 잔잔한 나날이 흘러가고 있었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마와 아버지는 사는 것이 작은 전쟁이었겠지만 그 품 아래 풍족하진 않지만 정서적으론 안정적으로 커가고 있었지.
친구와 가족이 전부였다가 조금씩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 같구나. 그것 역시 이미 주어진 내용이라고 해도 기사를 보고 너의 걱정과 의견을 남긴 것이 기특하다. 좀 지나서는 거의 모든 사회문제에 ‘정부는 해결하라 ‘고 끝을 맺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지금 그 정부의 모세혈관 같은 사람이 된 걸까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한결같이 응원하고 있어!
다음 주 드디어 1990년의
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