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실 언니, 글짓기 상, 담임선생님
1990년 5학년 담임선생님은 과학부장(?) 같은 보직을 맡고 계셨다. 못해도 40대 후반은 되셨을 것 같다. 어느 달인가 교실공사로 교실이 부족해졌는데 우리 담임선생님이 자진하여 과학실에서 수업하겠다고 하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반 학부모들이 항의할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생활했다. 과학실 책상은 모둠으로 앉아야 했고 한 책상에 6명씩 앉았다. 제일 불편했던 것은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였다. 불편한 줄도 모르다가 어느 날 허리 펴서 앉기가 좀 힘들다 싶었던 때가 떠오른다. 그렇게나 많이들 편의나 편익에 대해 따지는 것이 익숙하지 않던 때였다.
과학실 장 뒤편으로 실험준비실이 있었고 실험도구 관리나 이런저런 과학실 관련 잡무를 보는 과학실무사가 있었다. 실제 그 이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20대 여자가 주로 맡았고 크게 어렵지 않았던 일 같았다. 그분께 우리는 언니라고 불렀다. 우리 반 여자애들은 그 포지션에 있는 언니들을 잘 따랐다. 난 아주 가깝진 않았지만 언니라는 것 자체로도 좋았다. 왜 아줌마가 아니라 젊은 여자가 좋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도 곧 저렇게 될 수 있겠다는 기대와 호기심 때문 아닐까 싶다. 팍팍한 어른의 삶이 아닌 자유와 젊음의 어른의 생활을 알고 싶은 까닭이었을 것이다.
딱히 나에게 잘해준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물리적으로 가까이 지내게 된 과학실 언니가 빨리 적응하기를 더 나아가 학교의 기둥과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단어를 그저 써 보고 싶었던 것인지,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학교의 기둥이란 무엇이고 밑거름이란 뭘까.
학교에 존재감 없던 나였다. 3학년이 되어서 일기 쓰기를 강조한 교장선생님 덕분에 일기 쓰기 상까지 있었고 그래서 아주 조금 두각을 나타냈을 뿐이다. 그러다가 5학년 때 한국 요구르트 주최의 건강글짓기대회에
참석했다가 은상을 받게 됐다. 내 기억으론 어린이공원 어느 곳에 가서 나눠준 원고지에 고작 4-5장 썼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사촌과 학교 운동장에 놀러 가서 놀았다 뭐 그런 별스럽지 않은 에피소드였다. 그런데 그 글짓기가 전국대회 은상을 수상해서 어린이 신문에 깨알같이 이름이 실렸다. 정말 의아한 일이긴 한데 여하튼 그 일로 나는 주변에 글짓기 잘하는 아이로 각인되었다. (그렇게 글쓰기 상으로 나름의 명성을 누리다가 중학교 가서 딱 멈추게 됐다. 중학교 땐 학년에 1,2명 뽑다 보니 내가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시에 부상으로 작은 신시사이저를 받았는데 엄마가 떼쓰는 어린 사촌동생에게 인심 좋게 줘 버려서 한동안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나의 자존감이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정*선 선생님. 5학년과 6학년 연이어 두 해의 담임선생님이셨다.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대머리였고, 참외 단어의 ‘외’ 발음이 아주 정확했던 것으로 미루어 전라도 출신이셨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로 사모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편찮으신 정도였구나 일기를 보며 놀랐다. 선생님은 중고등학생인 자녀가 셋이 있었는데 집안 살림을 세 아이들과 함께 한다고 했다. 주말이면 큰 배낭을 메고 시장에 가서 일주일치 장을 봐 온다고 했다. 왜인지 그 말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장면을 그려보면 무척 생활력강하고 씩씩하면서도 한편으로 처량하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촌지도 흔했던 때라 직간접적으로 촌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수술 비용 얘기도 어쩌면 관련된 게 아니었을까? 싶기고 하다.
지금 어른의 생각으로 떠올려보면 공무원 박봉에 아이 셋 건사하고 살림하고 또 그다지 섬세하지 않은 성격이셨는데 학교에서 꾸러미들 상대하는 삶이 꽤나 고단했을 것이다. 어찌 됐던 그 시절 나에게 여러 잡다한 심부름을 정말 많이 시켰는데 그 정도가 거의 부담임 이상이었다. 심지어 수행평가 평가장부를 집에 가져가서 정리해 오기도 했었다.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는데 내가 그 정도로 신임을 받는구나 라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오학년의 던다야
글짓기라는 장기로 별 상관도 없는 부반장이
되었던 첫 해였지. 받아쓰기도 어려웠고 말귀도 밝지 못한 1학년 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지. 너는 주로 그래왔지. 처음엔 더뎠고 시간을 오래 두고 천천히 발전하다가 결국 존재감을 보이는 아이였지. 그게 너의 장점이야..
잊지 마.
쉽진 않겠지만 기어코 해내는 게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