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 피서, 진우랑 다툼
1989년에 일기장이 또 발견되어 4학년 일기를 추가한다. 일기장으로 나온 공책이 아닌 일반 공책에 적었다. 여름방학 숙제로 시작하여 11월 첫추위가 올 때까지 적은 공책이었다.
우리 집은 나들이나 여행, 유흥을 잘 모르고 살았다. 주말 나들이는 극히 드물었고 여름휴가는 주로 부모님 친지분들 만나러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그 시절 많은 가정에서 그랬을 것 같다. 늘 의아했던 것이 금요일쯤 기상예보를 하며 나들이객들을 위한 멘트가 있어서 ‘저 말은 쓸데없이 왜 하나‘하는 생각을 했다. 절제하고 힘써 일하고 것이 기본 기조였다. 엄마는 종종 “정신 나갔지. 저렇게 놀러 다니고.”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돌아보면 그건 일종의 반어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보다 흥이 있고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인데 말이다.
여하튼 그만큼이나 위 일기 속 ‘피서‘는 드물디 드문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디를 간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이었다. 넷째 이모는 충무(지금의 통영) 남자와 결혼하여 그곳에서 자리 잡고 사셨다. 엄마와 이모가 얘기해서 숙박비를 아낄 겸 이모네 집에서 머물기로 했던 모양이다.
떠올려보면 예전에는 휴가로 어디를 가서 숙박시설에 머문 적이 없다. 모두 지방에 친지네 머물렀고 우리 집도 당연히 서울 오면 머무는 곳으로 내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몇 개월 몇 년을 고모들, 사촌들이 살다가 떠났다. 이 일기에서 충격은 입석 기차를 타고 간 것이다. 휴가철이라 꽉 찬 기차에 잡을 곳도 기댈 곳도 마땅치 않은 기차에 네 가족이 네 시간이나 어찌 서 갔을까. 볼 것이라곤 창 밖 풍경, 기차 안 소란스러운 모습이 전부였을텐데. 그렇게 고생스러운 일 후에도 기분이 좋았다고 하다니. 그때는 그랬다.
넷째 이모는 충무시청 바로 옆에 2층짜리 상가건물에 2층에 사셨다. 같은 건물 옆에 이모부는 간판가게를 하셨다. 그 지역에서 살기에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하셨다. 이모부는 키가 작고 체구가 다부지고 의리를 중시하고 어른들께 깍듯한 스타일이었다. 다소 건달 같은 면이 있었지만 어쨌든 서울에서 온 우리 가족을 친절히 맞아주셨다. “충무 오셨으면 한려수도 가셔야쟤. 해질 때 바닷가 쫙 돌면 풍경이 기가 막힙니더 형님.” 그런 말이 기억이 난다. 난 자연경관이나 풍경에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할 나이라 그 바다냄새와 몸에 튀는 물이 싫었을 뿐이었다. 이모부를 포함하여 바닷가 사람들이 도시사람들에 비해 거칠어서 좀 어색했다. 뭔가 다른 정감도 느껴졌다. 사교성이 부족하고 말수도 적은 아버지, 오빠, 나 모두 이 괄괄한 이모부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구경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또 모르지. 우리 가족은 싫다, 불편하다. 재미없다 이런 말뿐만 아니라 좋다, 즐겁다, 재밌다는 말까지도 표현에 인색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왜 인지 꽤 오랜 기간 내 앞에 김진우가 앉았다. 서로 장난을 많이 칠 정도로 친했는데 저 날은 뭔가 아귀가 잘 안 맞았던 모양이다. 평소라면 선생님 눈을 피해 슬쩍슬쩍 장난을 치고 넘길일이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길래 그 말에 급발진해서 내 머리까지 때렸을까 싶다. 아마도 그 친구의 예민한 부분을 팍 건드렸으니 그랬겠지. 그 정도도 서로 얼굴 붉히고 말 일일 수 있었는데 이번엔 선생님이 애 따귀를 때렸다니 이번엔 내 편에서 미안했다. 화가 나 달려드는 진우에게 나는 밀리지 않고 저런 말을 했다니 놀랍다. 그 말에 화가 풀린 진우도 성격이 어지간히 좋은 아이였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툭탁거리고 선생님이 애들 보는 앞에서 뺨을 때리고 그러다 알아서 애들끼리 화해하는 모습은 지금은 결코 볼 수 없는 일들이다.
89년의 던다야
모처럼의 가족 여행을 멀리 떠났구나.
힘들고 생경한 경험들이 모두 뒤엉켜 89년 여름의 기억으로 남아있겠어.
어른이 되어 너의 가정을 꾸려서 과거의 충무, 지금의 통영을 방문하게 될 땐 같은 그 장소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질 거야.
약하고 소심하기만 한 과거의 던다인 줄 알았는데 강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통쾌했다. 너 안에 호랑이 같은 기개를 키워나갔으면 좋겠어. 미래의 너는 많은 사람 앞에 서 말할 일이 있을 거거든. 또 꼭 싸워야 할 일도 있을 거고.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