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가장 힘든 것은 다른 게 아닌, 존재감의 문제였다.

by Jay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18년 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 부랴부랴 취업준비에 목을 매던 시기. 사회의 차갑고 높은 장벽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면접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채 서류만 20번쯤 떨어졌을 때, 깨달아버린 것이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반 오십을 넘게 살아오면서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실상 내 삶의 경험들은 이 사회가 원하는 기준점에 미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음을. 나는 아직 제대로 준비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야속한 시간이 날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임을.


서류 광탈의 고배를 몇 잔 마시다 보니 정신이 번쩍 들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나름 일찍 정신을 차린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다행이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 갈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너무 절박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이 됐든 열심히 노력해서 남들은 쉽게 해내지 못하는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여러 길이 있었겠지만, 내가 내린 선택은 최대한 빨리 사회에 나가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필드에서 굴러야 빨리 클 수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실력은 없는데 일은 하고 싶으니 어쩔 수 없이 몸값을 깎아야 했다. 그렇게 내가 희망하던 연봉의 절반만 받고 일해야 하는 계약직 일자리 하나를 잡게 되었다. (그때는 이 직장에서 2년이나 일하게 될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특별한 나]가 아닌, [아무 나]가 된다는 것


입사 초반, 딱 내가 받는 임금 수준만큼의 일들만 나에게 주어졌다. 주로 복사를 하거나, 서류들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행사 때 쓰일 명찰을 만드는 일을 했고, 창고정리를 했다. 그런 잡일들이 없을 때는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다들 바쁜데 나만 덩그러니 짐짝처럼 던져져 있었다. 나에게는 그 어떤 기대와 관심도 없는 것만 같았다.


그때의 나는 누구도 할 수 있지만 굳이 자기 손으로 하고 싶지는 않은 하찮은 작업들을 대신 받아 처리해주는 존재였다. 그런 잡업이 아니고서는 조직 안에서 내 존재 이유나 가치도 함께 사라지는, 그런 초라한 사람이었다. 나름 팀 안의 생산성을 극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스스로 정의 내리며 마음을 달래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나'가 아닌, '아무 나'로 여겨진다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다. 그 하나하나의 작은 일들을 통해 나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했다는 것을.




그렇게 야금야금 내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근 3개월을 단순 업무만 계속했다. 남들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에겐 내세울 수 있는 무엇인가가 없었다. 전문 지식이나 경험 같은 것들이 일절 필요치 않은 루틴한 업무가 반복됐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역량들을 조직 안에서 분명하게 증명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풋내기에게 쉽게 기회를 내줄 만큼 사회가 그렇게 너그럽고 포용적인 곳이 아니기도 했고. 그 암울한 상황을 뚫어내기 위해선 특별한 결단이 필요했다.


'독해지자! 내가 없이는 사업이 돌아가지 않을 만큼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자!'


그렇게 나는 조직 안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길 꿈꾸기 시작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을 받아서 하는 게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걸로 독보적인 성과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독기가 바짝 오른 계약직 직원 한 명의 파란만장한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2년 계약직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계약직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괴롭고 힘들었던 것은 적은 임금도, 빈약한 복지혜택도, 조직의 차별적 대우도 아니었다. 내가 조직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 그 존재감의 문제. 그게 나를 진짜 괴롭게 만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절박함이 나를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그 결핍은 나를 간절하게 만들었고,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 감정은 시의적으로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번듯한 사회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꼭 거쳐가야 하는 의식 같은 것. 하지만, 그 불편한 감정을 끌어안고 회사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것을 얻는 과정이 쉽지 않은 상태를 흔히 '드라마틱하다'라고 말한다. 내 회사생활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내가 마주해야 했던 시련과 역경도 분명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 할 나의 목표 또한 선명했다.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내 지난 2년의 계약직 직장 생활을 정의 내릴 수 있는 한 문장이다.


그렇게 처절하게 2년의 시간을 달려왔다. 과연 내게 얼마만큼의 대체 불가능성이 갖춰지게 됐을까? 문득, 이를 반추해보고 싶다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계약직 생활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그래서 난 지금 어떤 존재가 되어 있는지 찬찬히 돌아보고 싶다.



이 글은 내 인생의 다음 단계로 더 힘 있게 뛰어오를 수 있는 발판이다. 아니, 꼭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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