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가 보기에도 대체 가능한 존재였다.
첫 사회생활인 탓에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고 낯설었다. 일을 배우는 건 당연했고,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하나하나가 다 어렵고 숨 막히기만 했다.
본부장님께 보고드릴 땐 말끝을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다나까로 해야 하나?), 점심을 내가 먹고 싶은 걸로 정해보라고 하는데 진짜 내 마음대로 메뉴를 정해도 되는 건지, 이미 진작에 6시가 넘었는데 왜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건지, 도대체 퇴근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 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때는 사무실에 내 편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같이 나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뿐인 것만 같았다. 때문에 그런 유치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질문 안 하고 어리바리 얼타는 모습도 완전 마이너스 요인이긴 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게 '업무 전화'였다. 첫 사회생활인지라 흔히 통용되는 비즈니스 매너에 대해 일절 몰랐던 나에게 전화로 고객들을 응대하는 일은 너무 벅찬 과제였다. 행여라도 통화하다가 말실수라도 해서 컴플레인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말 한마디 쉽게 뱉을 수 없었다.
나름 극복해보겠다고 전화를 걸 때마다 상황에 맞는 대화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첫 인사부터 전화를 끝내는 순간까지의 대화 흐름을 스크립트로 다 써놓고 그 안에서만 통화를 했다. '대화'를 한 게 아니라 '연기'를 한 것이다. 그러다 혹시라도 내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나 리액션이 나오면 갑자기 벙쪄서 어색한 정적이 만들어지곤 했다. 애드리브 기능이 전혀 탑재가 안돼 있던 것이다.
하루는 우리가 진행하는 행사에 고객들이 참석하는지 확인 전화를 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여느 때와 같이 스크립트를 써놓고 대본대로 전화를 몇 통 돌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다른 팀 팀장님 한 분이 오셔서 한 소리 하셨다.
"전화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다. 왜 그렇게 어색하게 같은 말만 반복하냐. 자동응답기 같다."는 게 팀장님 말씀의 요지였다. 너무 맞는 말이었다. 정해진 스크립트를 똑같은 톤, 똑같은 어투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고 앉아 있으니 그게 자동응답기가 아니고 뭐겠나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가 대체 가능한 존재임을 또다시 증명해버리고 말았다. 내 월급 가지고 자동응답 시스템 설치하면 되는데, 굳이 회사가 나를 써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그 생각이 들자 나 스스로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본인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버린 사람은 숨 쉬는 게 더 어색해진다. 본인이 걷고 있음을 의식해버린 사람은 오른발을 내딛을 때 어떤 팔이 앞으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지 헷갈리게 된다.
업무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떤 톤으로 말하는지, 말투가 어떤지, 대화 흐름이 매끄러운지 계속 의식하면서 통화를 하다 보니 기존보다 더 어버버 되고 말이 잘 안 나왔다. 그렇게 한동안 나의 어색 터지는 전화 말투는 본부 안의 뜨거운 감자가 됐고, 사무실 안에서의 내 별명은 '인공지능, 어색이'가 돼버렸다.
제대로 시작도 안해보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형편없는 전화 솜씨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조직 안에서 하는 모든 업무와 생활들에 서툴렀다. 사실 당연했다. 처음은 으레 낯설고 서툴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극복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에 서툴고 잘 못하는 내 모습을 나 자신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사무실에서 이등병같이 얼타고 있는 내 모습이 싫었고, 사람들이 지나가다 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날카롭고 아프게 마음에 박혔던 거 같다.
나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의식했다. 내가 하는 말, 행동, 업무의 결과물, 그 모든 걸 놓고 사람들이 품평회를 하듯 시선을 쏘아붙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그랬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심리적 상태가 그랬다는 것이다. 첫 사회생활에 직장이란 곳은 나에게 너무 무섭고 두렵기만 한 공간이었다.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첫째, 회사를 그만둔다(도망친다).
둘째, 내가 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빨리 배우고 적응해서 살아남는다.
둘 중 한 가지를 꼭 선택해야만 했고, 난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힘들더라도 사무실에 남아 이 시선을 버티고 견뎌내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잠들기 전이면 '내일 출근하기 너무 싫다'라고 괴로워하며 잠을 설쳤다. 그냥 다 포기하고 그만둬버릴까 생각하다가 겨우 잠에 들곤 했다. 그래도 아침이 되고 눈을 뜨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넥타이를 맸다. 그렇게 나는 또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어떻게 하면 조직 안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사색을 하면서 회사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