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날로 깊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치열하게 고민해도 나에게 맡겨진 과업을 잘 해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잘하고 있다'라는 효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왜였을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무엇이 일을 잘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내릴 수 없었기에, 나는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사회는 명료하고 예쁜 수치적 성과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숫자를 토대로 일을 잘하는지 유무를 평가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그 숫자라는 것도 사실 그리 객관적이지만은 않다. 사회가 요구하는 숫자는 Max값이 없어서, 100을 일궈냈어도 200을 거두지 못하여 송구스러워지는 곳이 사회다. 조직의 기대라는 것은 절대로 만족이란 것을 모르는 불가침의 영역인 것이다.
때문에,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더더욱 눈에 보이는 유형의 비교 대상에 집착하게 된다. 주로는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그 대상이 된다. 'A보다 이번 분기 매출 실적이 더 잘 나왔다!'라는 것을 곧 내가 잘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역량이 뛰어난 사람에게 '경쟁력(경쟁하는 힘)'이 있다고 하는 것만 보더라도, 경쟁을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는 방식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다.
그 당시 내 주된 비교 대상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부서로 입사했던 계약직 동료 두 명이었다. 각자가 진행하고 있는 업무가 달랐기에 성과를 직접 비교하는 것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둘이 자꾸 신경 쓰였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의 평가가 그 친구들의 것과 비교되면서 경쟁의 구도가 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아니, 착각했다).
그러한 비교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나에게는 전담하는 프로젝트가 없었던 반면, 두 친구들에게는 각자의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 점이 부러웠다. 그 친구들은 프로젝트 담당자로써 처리해야 할 메인 과업들이 비교적 명확하게 있었던 거 같은데, 나는 아니었다.
나는 잘 굴러가고 있는 프로젝트의 개선점을 연구하고 찾아내는 애매한 작업부터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그게 내 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찾아낸 개선사항들 대부분은 그 프로젝트의 핵심 가치와 연결되지 않는 비주류의 작업인 경우가 많았다. 굳이 해결되지 않아도 문제 될 게 전혀 없는 사안들이 대부분이었다(반대로 잘 해내면 더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들이긴 했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자유도는 높고, 중요도는 떨어지는 일들을 맡고 있었다. 이 점이 나에게 도전적인 과제를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자극해주긴 했지만, 비교의 잣대 앞에서 불편한 감정을 야기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나는 심리적으로 많이 쫓기고 있었다.
더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내가 내놓는 결과물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를 지나치게 의식하다보니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졌던 것이다.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불행의 씨앗이다. 그것을 알았기에 나는 직장 동료들과 내 결과물을 계속 비교하고 있는 스스로가 참 불쌍했다. 태생이 비교와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비교하며 스스로의 존재감을 가늠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나만 잘하면 그만이지'라고 아무리 다독여봐도,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자꾸 비교하고, 의식하고, 그러다 보면 나만 더 작아졌다. 조직엔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오로지 내 업무와 그 결과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는 타인과의 비교, 시선, 오고 가는 경쟁조의 말들에서 멀어져야 했다. 그런 이유에서 불가피하게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과 일정 수준의 감정적 거리를 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말과 눈빛이 나 스스로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거리를 둬서라도 누군가와의 비교로부터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눈과 귀를 틀어막았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도 일을 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법
대신, 비교와 경쟁 말고도 나 스스로가 일을 잘하고 있음을 점검하게 해 줄 또 다른 기준점이 필요했다. 내가 찾은 방법은 '일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수행하고 있는 이 과업이 전체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인지, 이 과업이 완벽하게 수행되었을 때 나타나게 될 결과는 무엇인지를 최대한 명확하게 하려 했다. 이 흐름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에너지를 오롯이 그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어느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나의 능력을 가늠하는 데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만 몰입하면 됐다. 이를 의도적으로 되뇌면서 나의 일, 나의 업무, 나의 성장에만 시선을 고정시켰다.
덕분에 나는 남들과 전혀 다른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길은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나만의 길이었다. 조직 안의 모두가 서로 눈치 보기 바빠 아무도 걸으려 하지 않던 그 길을 나는 걸었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선제적으로 내디딘 발걸음들을 통해 뜻하지 않았던 많은 기회들에 먼저 닿을 수 있었다. 이것은 또 다른 나만의 대체 불가능성이 되어주었다. 타인의 기대와 요구대로 움직이지 않고, 내가 나다운 선택을 내렸을 때 그것은 오롯이 내 강점이 되어주었다.
물론, 그로 인해 감내해야만 했던 손실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