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을 커버하지 못하면 날카로운 강점도 무뎌질 뿐이다.
나는 사수가 두 명이었다. 일을 직접적으로 배우는 선배가 둘이라는 게 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두 분의 업무 스타일에 갭이 꽤 컸다), 두 분이 가진 업무적 지식과 노하우들을 동시에 흡수했기 때문에 두 배 빨리 성장할 수 있어서 일면 좋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내 사회생활에 정말 큰 영향을 준 한 선배(A 선배라고 칭하겠다)와 함께 일하던 게 생각이 많이 난다. A 선배는 여러 면에서 성향이 나와 반대였다. 특히, 꼭 그래야만 하나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꼼꼼한 완벽주의였던 게 나와 많이 달랐다.
A 선배는 본인이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봉준호 감독급의 미친 디테일을 추구하는, 프로정신이 투철한 분이었다. 반대로, 나에게는 디테일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성격이 원체 꼼꼼하지 못한 탓에 일을 할 때도 세세한 부분에서 잔실수가 많았다. 오탈자를 자주 내기도 했고, 외근을 나갈 때 중요한 물건을 빼놓고 나간 적도 여러 번이다.
물론, 내 웃픈 실수담들이 생긴 이유가 단순히 내 성향 탓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정신이 딴 데 팔려있던 게 더 컸다.
당시 나는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는 일에 한창 재미를 붙인 상태였다. 때문에, 일을 하면서 최대한 큰 덩어리 시간을 만들어내고, 그 시간을 활용해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일에 몰입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디테일한 부분을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그런 덩어리 시간이 잘 만들어지질 않았다.
나는 내가 흥미를 느끼고, 또 내 강점도 더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업무들만 골라서 일을 하고 싶어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는 곳이 조직이라는 것에 아직 완전히 동의하지 못했을 때라, 디테일한 부분을 챙기는 일은 버려도 된다는 무책임한 생각을 했다. 그때는 그게 굉장히 합리적인 건 줄 알았다(엄청 교만했다).
그런 나에게 A 선배는 큰 산이었다. 부탁받은 일들을 해서 결과물을 가져가면 단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었다. 완벽주의 선배가 보기에 사회 초년생인 내가 업무에 제대로 집중도 못하고 만들어온 결과물이 눈에 차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다.
A 선배가 준 일을 처리해서 가져갈 때는 최소한 세 번 이상 집중해서 퇴고를 해야 했다. 그렇게 몇 번씩 확인하고 점검해서 가져간 결과물에서도 항상 아쉬운 점들은 발견됐다. 그 부분은 분명 내 한계였다. 솔직히 짜증도 좀 났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겸손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배우려 했다.
그렇게, 일의 만족도에 대한 내 눈은 그 선배의 기준에 맞춰져 함께 올라갔다. 동시에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업무 퀄리티를 끌어올리기 위한 디테일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됐고, 점차 불필요한 실수를 줄여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업무 스타일은 지금도 몸에 배어서, 어떤 일이든 세 번 이상 꼼꼼하게 체크하고 점검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아무리 뛰어나고 날카로운 강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고쳐지지 않는 단점이 있으면 그 사람은 완벽하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기는 힘들다. '영재가 기획은 참 잘하는데,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는 못하고 덜렁대더라'라는 평가를 받는 순간, 나는 일을 깔끔하게 잘 마무리해내는 강점이 있는 사람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구도가 아니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 저 사람의 강점보다 더 유용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라고 구구절절 설득하는 작업을 거치고 싶지 않았다. '저는 이런 강점이 있지만, 저분이 가지고 있는 강점도 보통 이상 수준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어필하는 게 훨씬 매력적인 답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를 위해서 치명적일 수 있는 나의 단점을 보완해가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A 선배와 함께 일하는 것은 나의 단점을 보완해가기 위한 최고의 훈련이었다. 사소한 불만족과 불편감이 드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솔직하고 집요하게 피드백을 주던 그 선배 덕분에 디테일에 취약했던 내 단점을 많이 고쳐갈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감정적으로 서운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과정들은 앞으로의 내 커리어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로 자기 시간과 감정을 쏟아가며 업무적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선배가 있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감사하다. A 선배가 내 작업물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고민해서 피드백을 주느라 투자해주셨던 시간들 덕분에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에 솔직하게 직면하고 이를 고쳐갈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모질게 평가할 수 있는 냉정함이 필요한데, 사실 혼자 힘만으로 그 정도 높은 수준의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때문에, 내 단점을 고쳐가기 위한 과정에 기꺼이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주던 A선배와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조직 안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성장해가는 데 있어서 함께 일하던 동료 분들의 크고 작은 도움이 너무나도 많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 혼자였으면 더뎌졌을 성장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함을 통해 급류를 탔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그렇게 나는 점차 사회인으로, 1인분의 몫을 다해낼 수 있는 조직의 일원으로, 그리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성장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