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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weller Jul 09. 2024

하루 세끼를 차려 먹는다는 것

그 어떤 자기개발보다 숭고한 의식이 아닐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한 끼를 차려먹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맞벌이로 4년을 넘게 생활하다 보니,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음식을 차려먹는 일은 적었다. 그러나 휴직이 시작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고, 그러므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음식을 차려먹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어졌다. 남편과 동등하게 집안일을 하거나 (사실은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 했다) 일과시간 대부분을 동등하게 노동했던 시절과는 확실히 달랐다. 나는 집에서 뭔가를 해야 했다.


남편이 이 바닷마을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공부를 병행하게 되면서 우리는 작년 한 해를 주말부부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사실 말이 주말부부지, 실상은 거의 월말부부나 다름없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일신상의 사유’로 1년 간 무급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주말부부는 신이 내려준 축복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쉽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서 만성피로가 쌓였고, 남편도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고군분투를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상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돈보다 중요한 건 무조건 시간이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대체하지 못하는 손해다. 나는 회사에 정당하게 요청할 수 있는 규정상의 권리를 요청했고, 그 과정은 험난하고 지난했다. 남편이 이기적이다, 회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어가며 (그러나 업무에는 태만하지 않도록 성실히 노력하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회사에서 규정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그 개인에게 문제를 삼을 것이 아니라 회사 자체의 규정을 문제 삼는 게 우선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휴직을 하게 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살게 됐다. 우리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남편이 회사에 가고 나면 나는 정말이지 아무런 책임도 부여받지 않는다. 처음에는 텅 빈 시간이 어색했다. 분명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데도 많았는데,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귀하게 얻은 이 시간을 가치 있고 소중하게 보내며 하나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는데, 한편으로는 그래서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질 몰랐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정말 일상적인 데 있었다. 하루 세끼가 문제였던 것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정말 간단히 아침을 차려먹었다. 당연히 점심을 사 먹었고, 저녁은 근처에 사는 부모님이 가져다준 반찬을 먹거나 그도 아니면 포장해 와서 끼니를 해결했다. 주말엔 나보다 음식을 잘하는 남편이 한두 끼를 차려줬고, 그러다 보면 어찌어찌 끼니 해결이 됐다. 음식을 하지 않는 나에게는 확실한 변명거리가 있었다. 일을 하고 피곤하니까.


그러나 이젠 처지가 달라졌다. 밥을 차려 먹어야 한다. 물론 근처에서 뭔가를 배달해서 시켜 먹을 수도 있지만, 이곳은 서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만큼의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이 없다. (음식 안 차려먹는 와중에 영양성분은 정말 꼼꼼히 따져 먹는 복잡한 사람=나) 게다가 나는 이제 돈도 안 벌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남편이 버는 돈이 곧 우리가 함께 쓰는 돈이라고 생각하지만, 노동 없이 소비만 하는 삶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밥을 차려먹기 시작했다. 아침은 혈당을 높이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간단히 챙겨 먹고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 문제는 점심과 저녁인데, 처음부터 두 끼를 다 차려먹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녁은 최대한 간단히 샐러드를 해서 먹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규모를 늘려가보기로 했다.




일단 밥을 짓자. 최대한 많이 지어서 소분해 냉동해 놓는다. 그리고 내가 잘할 줄 아는 음식, 계란 후라이를 해보자. 기본(?)은 받쳐주는데, 반찬이 문제였다. 반찬가게에서 몇 번 반찬을 시켜봤는데 죄다 짜거나 달았다. 몇 번 먹으면 물렸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처음에는 알배추를 넣은 된장국을 끓여봤다. 멸치 육수 팩을 넣고 끓이다가 적당히 썰은 알배추와 대파, 청양고추만 넣고 된장을 푼 뒤에 끓이기만 하면 끝이었다. 알배추를 살 일이 거의 없던 나는 주먹보다 커다란 밍밍한 알배추가 이렇게 훌륭한 음식이 되어 나와주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그래서 한동안 알배추 된장국만 주구장창 끓였다. 맛에 민감한 남편도 맛있다고 해줬다. 그러다 한 번은 “오늘도 알배추된장국 끓일 거야”라는 자신만만한 나의 말에 질린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알배추된장국은 당분간 그만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그만 먹자고 한 문제의(?) 알배추 된장국.


아차. 음식을 먹는 남편은 질릴 때도 됐겠다. 매번 국을 끓이며 알배추의 경이로운 재탄생을 목격하는 것에 맛들려 있던 나날 속에서 남편의 한마디는 나를 각성시켰다. (남편은 웬만하면 내가 뭘 할 때 반대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정말 이젠 참을 만큼 참았다는 뜻일 테다.) 나는 자주 애용하는 온라인 장보기에서 오리고기를 샀다. 아무래도 붉은 육류보다는 몸에 덜 해로울 테니까.. 그리고 오리와 함께 파프리카, 양파, 청양고추, 부추를 넣고 볶음을 했다. 볶는 요리는 생각보다 쉬웠다. 재료를 다 썰어서 넣고 볶기만 하면 됐다. 남편이 맛있다고 해줬다. 요리 자신감이 조금 올랐다.


오리고기를 사다가 유기농 부추와 청양고추, 양파를 넣고 볶았다. 맛이 괜찮았다.




하루는 저녁 시간이 다 돼서 갑자기 바질페스토 리가토니를 해보고 싶었다. 워낙 이탈리안 요리를 좋아하는 우리지만 막상 집에서 파스타를 자주 해 먹지는 않았다. 내가 밀가루를 많이 먹지 않으려는 탓도 있다. 나는 즉흥적으로 집 근처 마트에 들러 바질을 찾았다. 아쉽게도 바질이 없었다. 열심히 레시피를 검색했는데 시금치페스토라는 게 있었다. 마트에 있는 시금치를 덜컥 샀다. 그리고 집에 있는 믹서기에 시금치와 올리브유, 아빠가 만들어준 그래놀라를 조금 넣고 갈아서 시금치페스토를 만들었다. 리가토니면은 삶기만 하고 그 위에 페스토를 부어 데워줬다. 그럴듯한 모양새가 나왔다. 퇴근한 남편은 내가 만든 음식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너가 이걸 만들었다고??? 남편은 사진부터 찍었다. 10점 만점에 8점이라고 했다. 나머지 2점은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맛은 좋았지만 우리 집 믹서기의 성능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페스토를 만드는 데 진을 다 뺐다. 믹서기를 다시 사지 않는 한 시금치 페스토를 다시 만들진 않을 것 같다.


냉동실에 남은 과메기로 페스토를 만들어 과메기 페스토 리가토니를 해 먹었다. 남편이 내 실험정신에 박수를 쳐주었다.


페스토에 덴 이후로는 주로 원 팬 요리를 자주 해 먹었다. 볶은 양배추와 계란후라이를 넣은 참치덮밥이라든지, 들기름을 넣은 달래간장비빔밥(너무 싱거워서 한번 먹고 버렸다.) 같은 것들을 해 먹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노밀가루 단호박빵 만들기에 한창 재미를 들렸다. 아침에 혈당을 내리는 데 좋은 음식이 단호박, 아몬드, 계란 같은 것들이라는 말을 듣고 알게 된 레시피인데 만들기도 제법 간단하고 맛도 괜찮아서 아침 끼니 대용으로 자주 해 먹는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게 좋대서 달래를 사다가 들기름과 간장을 섞어봤다. 맛은 없었지만 건강한 맛이었다.


전자렌지에 쪄서 으깬 단호박에 계란을 풀고, 아몬드가루를 넣어 구우면 노밀가루 단호박빵이 된다.
단호박에 아몬드가루와 계란, 소금만 넣고 블루베리를 얹어 데운 단호박빵. 건강하고 맛있는 맛이다.


매일의 끼니를 차려먹는 일은 쉽지 않다. 재료 준비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차려내고, 씻고 정리하는 것까지 생각해 보면 하루에 족히 3시간은 걸리는 일인 것 같다. 매일 3시간을 오로지 식생활을 위해 떼어 놓는다는 것은 정말 큰 투자가 아닐 수 없다.


결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고 시간만 훌쩍 가있는 게 집안일이라는 말을 흔히들 하는데, 정말 그렇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음식뿐인가. 매일같이 먼지가 쌓이니 청소도 해줘야 하고, 온갖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개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말 하루가 다 가 있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충분히 만족스럽게 하지 못하고 끝나는 날들도 많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 뿌듯함을 느끼는 성격이라 이런 하루는 허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끼니를 직접 차려먹는 수고로움은 허다한 그 어떤 자기개발보다도 훨씬 숭고하고 아름다운 자기개발이란 생각이 든다. 출처가 명확하고 내가 통과시킨 재료들로 만든 음식은 몸을 건강하게 한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으면 탈이 날 수 있으니, 어쩌면 건강하게 차려먹는 음식은 운동보다 더 큰 효과를 낳는 것 아닐까. (운동이 필요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아주 좋은 자기개발인 것이다. 게다가 나의 수고로 식구나 손님을 먹일 수 있다면 그건 자기개발을 넘어 타인에게로 흘러가는 적극적 사랑의 실천일 테다.




매일 하는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려던 목적은 아니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하루 세끼를 차려먹는다는 건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숭고한 의식이자 함께 식사하는 이를 아껴주는 행위다. 그저 지루하게 매번 반복되고 보이지 않아 없어지는, 시간 아까운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지금껏 나를 먹인 수많은 손길이 지금의 나의 몸을 만들었다. 앞으로도 (때론 귀찮겠지만) 이 요리의 노동을 겸허히 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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