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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weller Jun 25. 2024

친구를 울리는 친구

고등어볶음밥이 뭐라고. 사랑한다는 말이 뭐라고. 이게 뭐라고.

학창 시절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내 마음을 척하니 알아주고, 나도 그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친구를 만드는 일이 왜 이리 어려웠던 걸지. 돌이켜보면 기질상 진지한 내 성향은 한창 각자의 마음을 알아가는 청소년기 또래 친구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같이 다니는 친구 무리는 있었지만, 그들 앞에서 정말 내 이야기를 하면 냉담하거나 어리둥절한 표정이 돌아왔던 걸 보면, 내 이야기는 그들에겐 별로 관심 없는 주제거나 따분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억지로 원치 않는 연예인 가십 거리를 알아야 했고, 관심도 없는 드라마 얘기로 한 시간을 하하호호 해야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왠지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난 학창 시절 친구 복은 확실히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은 플러스 마이너스 0’이라는 명언을 비장하게 말하며 씁쓸한 듯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던 회사 선배의 말처럼, 그랬던 나에게도 마이너스 프랜드쉽의 고난을 상쇄하듯 혜성처럼 나타난 친구들이 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즈음에 만나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줄곧 내 ‘베스트 프렌즈’인 친구들이 바로 그 구원자들이다. 나와 비슷한 내면세계를 공유하고 내가 경탄하는 것에 함께 감탄하는 친구가 생긴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원치 않는 연예인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고, 굳이 관심이 가지 않는 최신 콘텐츠를 유튜브 짧게 보기로 어렵사리 섭렵해서 아는 척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나이면 되는 것이다.




그런 친구들이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바다 마을에 놀러 왔다. 올해 초에 한번 놀러 왔다가 초여름맞이로 한번 더 온 친구도 있고, 지난한 박사논문 과정 때문에 이번이 처음인 친구도, 또 이번이 4번째 방문인 친구도 있다. 완전체로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바다 마을에 살면서 한 달에 한번, 많게는 두세 번씩 손님을 치르게 된다. 아무래도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서울과 경기권에 사는 사람들이니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바다 구경도 하고, 얼굴도 볼 겸해서 와 주는 것이다.


그래도 몇 번 손님을 치러봤다고, 나는 친구들이 오기 전부터 MBTI ‘P’ 성향임에도 불구, 나름 J처럼 엉성한 계획을 세워놨다. J가 보기엔 너무 대충 짜인 계획 같아 보이겠지만 먹는 것에 진심인 친구들 입맛에 맞춰 나름 식도락 여행으로 충실히 짜게 된 것 같다. 주로 이 고장 맛집들을 위주로 식사 일정을 짜고, 디저트 맛집들도 야무지게 구성하여 선보였다. 역시나 친구들은 거의 모든 메뉴에 만족했다. 2박 3일 일정 중 대망의 둘째 날 저녁은 친구들을 위해 직접 내가 만든 음식을 선보이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여행 계획을 짜며 이 부분을 제일 고심하고 신경을 써서 준비했다.


서울에 살 때는 회사를 다닌다는 핑계로 최소한의 집안일만 했으니, 내가 따뜻한 음식을 차려준다는 발상(?)이 아마 친구들에게는 상상이 어려웠을 것이다. 서울에서도 친구들을 종종 초대하긴 했지만 늘 배달음식을 대접했고, 요리같이 정성이 필요한 작업을 귀찮아하는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들이기에 야심 찬 나의 계획은 그들에게 의아하고 걱정이 되는 것이었을 테다.


둘째 날 오전, 한창 웨이트 트레이닝에 빠진 나와 친구들은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서 함께 근육운동을 했다. 2시간 반동안 쉬지 않고 운동한 후에 점심을 먹고, 바다를 바라보며 이 지역 명물 커피와 함께 요즘 핫하다는 두바이초콜릿을 먹었다. 친구들은 당 충전과 동시에 더욱 행복해졌다. 행복해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나까지 기분 좋아졌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해 질 녘엔 바다가 잘 보이는 이 지역 관광명소에 걸어갔다가, 바다를 보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날은 벌써 저물고 있었고, 그날따라 온몸에서는 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맥주를 사겠다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는 한 명의 친구와 함께 집에 급히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얼려둔 대파를 꺼내고, 양파와 애호박, 새송이버섯과 청양고추를 썰고, 두부를 씻고, 양념장을 위한 참기름과 고춧가루, 간장, 깨소금, 다진 마늘을 꺼냈다. 냉동 고등어 4개를 꺼내 해동을 했다. 고등어볶음밥과 두부부침을 동시에 만드는 게 나의 미션이었는데, 평소와 다른 건 늘 2-3인분씩 해오던 볶음밥을 두 배 이상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준비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10여 년 간 나를 보아 왔지만, 이런 모습은 정말 처음이라며 내가 요리에 열중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사이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한쪽에선 냉동 고등어 4마리를 익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볶음밥 재료를 볶고 있었다. 얼추 모양새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쉼 없이 음식을 만드는 나에게 갑자기 친구가 내 폰에서 알람이 울렸다고 말해왔다. 아차. 내가 준비해 놓은 또 다른 이벤트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고등어를 열심히 굽다 말고 소리쳤다. 얘들아!! 얘들아!! 빨리 베란다로 나가봐!!! 지금!! 지금!! 친구들은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허둥지둥 베란다로 향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서는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바다 너머 공장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일종의 메시지 편지 같은 서비스를 해주는데, 바닷가에서 공장 쪽을 바라보면 ‘ㅇㅇ야 사랑해. 나랑 결혼해 줘.’ 같은 프러포즈 류의 메시지가 흘러가곤 한다. 그런 오글거리는 이벤트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나는 거실에서 밤에 종종 공장 쪽을 보다가 그런 메시지를 발견하더라도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꾸준히 그 공장의 메시지창을 통해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며 추억을 만든다. 그 메시지창을 활용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을 그 시간에 맞춰 메시지 예약을 해 두었던 것이다.


바다 반대편에서 보이는 전광판 메시지


찰칵. 찰칵. 야 진짜 장난 아니다. 너무 감동이다. 찰칵찰칵. 아 그래서 시간을 물어봤구나 계속. 찰칵. 찰칵. 쏘 스윗이다. 와~~ 사랑해~~


우리는 고등어 냄새를 맡으며 베란다에서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친구들은 영상이나 사진을 찍으며 연신 감탄사를 날렸다. 걔네들 눈가가 촉촉해졌다. 코를 훌쩍거리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며 놀랐다. 어때? 맘에 들어? 감동이야?! 멋있지?? 응 너무 감동이야. 고등어볶음밥에 이벤트에, 진짜 대박이야 대박.. 친구들은 감동을 그치지 못했다.


제법 아늑하게 꾸며지고 있는 그날의 저녁상


거실은 노란 조명으로 아늑하게 밝혀졌고, 거실 한가운데 놓인 나무 식탁에는 메인 요리에 곁들일 음식들이 접시들에 근사하게 담기고 있었다. 남편이 사다 준 보라색 리시안셔스와 미스티블루가 우리의 식사 공간을 아름답게 채워 제법 근사한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재즈도 적절하게 흘러나와 지친 하루를 이완시켜 주는 듯했다. 이어지는 식사자리에서도 와일드 루꼴라를 곁들인 고등어볶음밥과 아보카도오일로 부친 두부부침을 먹으며 친구들은 행복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미슐랭가이드 별점 매기는 사람 되는 게 꿈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친구 한 명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팔아도 될 법한 맛이라며 극찬해 주었다.


루꼴라를 곁들인 고등어볶음밥과 두부부침, 그리고 여기에 어울리는 만두와 (알콜 혹은 무알콜) 맥주까지.


친구들이 찍어준 그날의 밥상





친구들이 떠나고 남은 텅 빈 식탁에 가만히 앉아 나의 것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준다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의 기쁨을 찾아 살아간다.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 세상, 숨 돌릴 틈이 생기면 마치 허기진 배를 채우듯 내게 무언가를 채워 넣게 된다. 채워 넣어야 안심이 된다. 누군가의 이익에, 내가 원치 않는 누군가의 일을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소진된 느낌을 지우려면 박탈당해 텅 비어 있는 내 안의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 그러면 마치 더운 날 달달한 커피를 마실 때 당이 충전되듯 다시 나로 돌아온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무언가를 내어주는 건 그래서 더욱 소진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내어줄 만한 거창한 것이 딱히 없다고 느껴질 때는 더더욱. 그럴 땐 그저 한 끼 식사를 대접해 보는 거다. 매일 내가 차려 먹는 음식을 조금 더 만들어 보는 거다. 식탁이 있는 거실로 초대해 보는 거다. 그를 향한 애정을 가득 담은 한 줄의 편지를 써 보는 거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가 나눈 조그마한 그 무언가가 그들에게 기쁨이 된다. 나는 분명 조금 없어졌는데, 없어진 나의 자리를 그들의 기쁨이 채운다. 더 가득 채운다. 부족함을 느낄 공간이 없어진다. (나의) 공간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더 곁을(나를) 내어 주게 된다. 나는 자꾸 없어지는데, 자꾸 그 이상 더 채워진다.


남아있는 고등어볶음밥을 친구들이 남겨두고 간 기쁨의 열기로 데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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