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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weller Jul 08. 2024

층간소음으로 올라간 윗집에서 점심을 차려주셨다.

들어와요. 밥 먹고 가요.

사실 이건 조금 지난 이야기다. 바닷마을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올 초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계약할 때 나는 서울에 있었고, 먼저 이 동네로 내려온 남편은 휴직하고 내려올 나와 함께 살 집을 먼저 구하러 다녔다. 나는 정말 중요한 것 한 가지면 됐다. 집에서 바다가 보일 것. 기왕 바다가 있는 동네에서 사는 거라면 집에서 매일 바다를 볼 수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리모델링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깔끔하게 살 수 있는 컨디션이면 됐다. 남편은 바쁜 와중에 바다가 보이는 집을 찾아 여기저기 매물을 알아보러 다녀주었고, 나는 사진만 보고 지금 이 집을 계약하자고 했다. 남편이 보여준 집 중 가장 정신이 산만한 집이었지만 그 집이 가장 바다가 잘 보였기 때문에 다른 옵션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사오기 전 남편이 찍어 준 지금 집의 이전 모습. 멀리 바다가 잘 보인다. 가능성이 보인다.


오로지 남편의 판단만 믿고 덜컥 계약한 집에 처음 들어왔던 날, 텅 빈 거실에서 보이는 바다를 오래오래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오래된 아파트라 습기 찬 콘도 냄새가 났던 것 빼고는 내 예상보다 괜찮았다. 눈만 돌리면 바다가 보였으니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윗집의 층간소음 때문에 정신이 산만했다. 흐린 귀도 한두 번이지, 쿵쾅쿵쾅 소리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오래된 집이라 벽이 얇나 봐. 남편과 나는 최대한 소리에 집중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윗집 현관문이 꽝-하고 닫히는 소리, 웅웅 울리는 TV 소리(이건 소리가 아니라 거의 진동에 가깝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소리까지..(!)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소음이라 치고 참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복병은 다른 데 있었다. 밤에 잠을 청하려고 자리에 누워도 이 소리와 진동은 끝이 없었다. 12시가 넘고, 새벽 1시, 2시, 3시가 되도록 그치질 않는다. 어딘가에 물건을 쿵 쿵 놓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달되어 귀에 박힌다. 도저히 안 되겠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 불 켜진 집을 찾아봤다. 층간소음이 반드시 윗집에서만 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3시에 불 켜진 집은 우리 집 윗집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소리의 원인은 확실한 윗집이다. 나는 일단 사진을 찍어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나는 아파트 관리소에 가서 사정을 알려 윗집 주인에게 주의를 부탁드리는 전화를 요청드렸다. 관리소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60대 초반쯤 되어 보였고, 일할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실무를 담당하는 여성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려 봤으나, 나만 발을 동동 굴렀다. 아직 애 없어서 모르겠지만 살다 보면 이웃한테 미안할 일도 많을 거예요. 어느 정도는 서로 참고 사는 수밖에 없어~라는 말만 돌아왔다. 애써 찾은 윗집 전화번호로 그분이 연락을 드렸다.


"예, 0000호죠~? 혹시 어제 밤늦게까지 무슨 작업 같은 거 하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층간소음으로 민원이 들어와서요~ 집에 잘 안 계신다고요~? 어제 민원인이 새벽에 불 켜진 것까지 사진 찍어서 가지고 왔는데요~ 네 주의 좀 부탁드릴게요~"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관리소 직원은 쉽지 않겠다는 말투로 나를 달랬다. 아니, 집에 자주 없대. 그런데 무슨 소음이냐고 되려 뭐라 하시네.. 쉽지 않아 보여요. 어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 당황스러웠지만 뭐 할 수 있는 데까지 나를 드러내지 않고 정중히 민원을 요청했으니, 이젠 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불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날 밤에도 잠을 청했다. 어김없이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또 새벽이 되고, 나는 계속 말똥해졌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올라가야 하나. 요즘 하도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데 얼굴을 보이는 게 맞는 걸까. 잠귀가 워낙 없는 남편은 야속하게 잘도 잔다.




이렇게 속만 썩이다가는 내가 병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새벽 1시에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가 문제의 원인이 윗집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두운 새벽, 윗집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위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혹여나 누군가는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르니. 잠시 후 안경 쓴 까무잡잡한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나시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그녀의 목에는 굵은 금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아랫집에 얼마 전에 이사 온 사람인데요.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와서 정말 실례드려요. 그런데 밤에 소리가 계속 심하게 나서 잠을 청할 수가 없어서 제발 밤 시간만이라도 조심해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나는 애원하다시피 말씀드렸다.


우리는 밤에 잠을 잘 안자. 나시 차림의 여자가 대답했다. 아. 정신 차리고 보니 집안은 형광등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고, 심지어 TV로는 축구경기가 한참이었다. 아. 이 집은 지금이 초저녁이구나. 깊은 탄식. 어쨌든 조심해 볼게요.. 미안해요. 잘 자요. 짧고 굵게 끝난 윗집 여인과의 대화. 약간은 허무했다. 그래도 못된 사람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윗집도 조심한다고 조심하겠지만 아무래도 문제는 아파트의 구조에 있는 듯했다. 이후에도 밤이고 낮이고 이어지는 진동에 가까운 소리에 일상생활이 힘들어졌다. 보다 못한 남편이 하루는 나 대신 밤늦게 쿠키를 들고 올라가 다시 한번 간곡히 주의를 요청드려 주었다. 그런데 남편이 좀처럼 내려오질 않았다. 나는 두려운 마음에 살금살금 윗집으로 올라갔다. 남편은 윗집 문 앞에 서서 윗집 어르신들과 대화 중이었다. 안 그래도 우리가 민원 듣고 ㅇㅇ 코스트코까지 가서 이거 층간소음 매트 사가지고 왔어. 오늘 이거 깔았어. 이번에는 안주인의 남편 되시는 분까지 합세해서 얘기 중이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분들은 아닌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희소식. 우리는 여기 겨울에만 와있어요. 3월부터 12월까지는 없어. 날 구원하는 말이었다. 놀란 눈이었지만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휴 다행이다. 그럼 2월까지만 견디면 되는 거잖아.) 그 말에 나는 마음이 놓여 편한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고 나서도 잠을 설친 건 한두 밤이 아니긴 하다. 그래도 이제 기한이 있는 기다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선잠을 자도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전날의 소음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아침이 왔다. 나는 윗집 아주머니께 뭐라도 드리고, 커피라도 한잔 하자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여러 번 밤에 실례를 무릅쓰고 올라간 것도 사과드릴 겸, 또 아직까지 소음이 지속된다는 걸 에둘러 말할 겸 해서 말이다. 나는 동네 과일가게에 들러 싱싱한 딸기 한 박스를 샀다. 그리고 윗집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조금 밀려왔지만, 이미 초인종은 눌러졌다.


문이 열렸다. 나시 원피스의 아주머니는 딸기 한 박스를 든 나를 보고 놀란 듯 쳐다보시더니, 들어와요. 밥 먹고 가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때는 오전 11시 30분. 조금 이른 점심이긴 했다. 거실에는 커다란 식탁에 식사가 한 상 차려져 있었다. 방송인 이홍렬 씨를 닮은 푸근한 인상의 주인아저씨는 의자에 앉아 계셨다. 심지어, 작은 치와와 두 마리까지 멀찍이 각자의 개집에 차분히 앉아있었다. 이상하게 짖지는 않았다. 개까지 있었다니.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안으로 들어가길 주저했다. 우리 애들은 가정교육을 잘 받아서 괜찮아요. 들어와요. 두 치와와는 14살짜리 노견과 어린 딸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딸기라는 애의 꼬리는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꼬리가 하얘서 염색이 돼. 주인 내외는 부연설명해 줬다. 확실히 가정교육은 잘 된 것 같았다. 올가가기 전까진 윗집에서 개를 키우는지 전혀 몰랐으니까. 


차려놓은 식탁을 두고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아침을 먹은 지 2시간도 안 됐던 터라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어색하게 그들의 밥상에 앉았다. 아주머니가 내 밥상을 차려와 주셨다. 코다리간장조림, 간장 게장, 냉이가 한가득 들어간 된장국, 그리고 난생처음 보는 전호나물(나중에 주인 내외가 설명해 주셔서 알게 됐다.)이 놓였다. 예사롭지가 않았다. 밥을 한 숟갈 떠서 반찬과 먹어봤다. 맛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나는 층간소음 때문에 윗집에 올라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있다.

보통 맛이 아닌 것이었다... 가운데 보이는 나물이 그 귀하다는 전호나물.


우리가 울릉도에서 식당을 해. 아… 역시 음식 맛이 이유가 있었구나. 그분들은 울릉도에서 홍합밥, 따개비밥 같은 것들을 위주로 판매하는 일을 하신다고 했다. 주인어른이 은퇴하시고 부부는 울릉도에 새 둥지를 트셨다고 했다.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집을 비우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사실 어찌 보면 이 집은 그들의 주된 거처는 아닌 것이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한겨울만 몸을 피해 있는 은신처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은신처라고 하기엔 집에 물건이 많았다.)


울릉도 사람을 만난 건 난생처음이라 나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울릉도 생활은 어떠신지, 독도는 가보셨는지. 밥상에 올려진 전호나물이라는 게 눈 속에서 크는 귀한 나물이라 몸에 보약이라는 것도 알려 주셨다. 어르신들은 잘 먹는 내가 대견한지, 나름 예의를 갖춰 대해드리는 것이 마음이 편해지셨는지 나를 친절히 대해주셨다. 우리가 층간소음 있다는 말 듣고 얼마나 조심하고 있는지 아나. 물컵 놓을 때도 밑에 울릴까 봐 살살 놓고 여기 컵받침이랑 식사매트까지 이중 삼중으로 놓고 쓰고 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경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우리의 고충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주시고 최대한으로 노력해 주시는 태도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풀렸다. 게다가 우린 이제 밥까지 같이 먹은 사이 아닌가. 아주머니는 내가 선물로 드린 딸기박스에서 딸기를 조금만 덜어 놓고 나머지를 다 주셨다. 마음만 받을게요.




나는 아주머니께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우린 같이 우리 집으로 내려갔다. 교회 다니나 보네.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있는 마그넷을 보고 윗집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나도 교회 다녀요. 같은 교회는 아니지만 같은 믿음을 가진 신자라는 게 신기했다. 아주머니는 가끔 독도에 가보신다고 했다. 독도에 가면 뭔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게 있어요. 아무래도 우리 땅 끝이다 보니까.. 울릉도에 삶의 터전을 가꾸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아주머니는 울릉도는 자연이 정말 아름답고, 특히 4월에 관광하기가 제일 좋다고 하셨다.


아주머니에게는 40살 난 따님이 계신다고 했다. 따님이 양념게장을 좋아해서 자기가 자주 만들어 준다고 하셨다. 저는 음식을 잘 못해요. 한쪽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있는 아주머니는 말했다. 한 가지만 잘하면 돼. 보아하니 아주머니는 식당만 하는 게 아니라 음식도 파시고, 명이나물도 파시고, 여행객들에게 울릉도 주변 숙소도 연계해 주시는 바쁜 비즈니스 우먼이었다. 귀에 꽂힌 블루투스 이어폰도 그 사업 때문인 것이었다. 우리가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에서 명이나물을 보내달라, 무슨 나물을 보내달라 연락이 왔다.


아주머니는 판매하고 계시는 울릉도산 명이나물 작은 한 박스를 선물로 주셨다. 나는 아주머니가 카카오톡 계정 연동이 잘 안 된다고 하셔서 얼떨결에 그 일을 도와드리게 됐다. 아주머니는 윗집에 계신 아저씨와 전화 연락을 하면서 안방에서 걸어봐요. 거실에서 걸어봐요. 소리 나네. 등의 말을 계속하셨다. 직접 그렇게 확인해 주시는 게 감사했다.


윗집 아주머니께서 주신 100% 울릉도산 명이나물.중국산 아니다. 이걸로 한동안 잘 차려먹었다.




아주머니는 아까 차려주신 전호나물이 얼마나 귀한 건지 계속 강조하시면서, “아저씨 저녁에 와요?” 물었다. 내 남편이 저녁 시간에 집에 있냐는 질문이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아주머니는 그날 저녁 전호나물로 만든 전 두 장을 부쳐서 가져다주셨다. 향긋한 특유의 향이 정말 독특하고 맛있는 전이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전호나물전. 지금 봐도 침 고인다.. 


나는 얼마 전에 아빠가 만들어 준 수제 그래놀라를 통에 한가득 넣어서 아주머니께 갖다 드렸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그 통에다 나물무침이랑 딸 주려고 만드신 ‘순살’ 양념게장을 꾹꾹 담아 돌려주셨다. 다른 반찬은 덤이었다.


순살(?)양념게장과 정체 모를 나물무침


그 뒤로도 윗집에서는 여전히 쿵쿵 소리가 비슷했다. 힘들긴 했지만 예전만큼 힘들진 않았다. 우린 밥도 같이 먹은 사이고, 반찬도 나눠먹은 사이고, 무엇보다 그분들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얼굴을 모르는 이웃이 내는 층간소음은 짜증스럽고 공포스럽지만 같이 밥을 먹어 본 이웃이 내는 층간소음은 그들의 일상 소리일 뿐이다. (물론 늦은 밤 나는 소리는 힘들긴 하다.)




이 모든 게 윗집이 차려준 그 밥상 때문이었다. 그 밥상 덕분이었다. 상을 내어준다는 건 뭘까. 내가 매일 치르는 일상의 의식에 이웃을 초대하고 내 삶의 공간과 시간을 나누는 것 아닐까. 도시에서는 좀처럼 받아본 적 없는 환대의 경험에 나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 깊은 곳이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어느새 봄이 왔고,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여름인 지금까지도 텅 빈 윗 집은 여전히 조용하다.

언젠가는 꼭 윗집 아주머니가 차려주시는 따개비밥을 먹으러 울릉도에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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