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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weller Jul 11. 2024

퍼즐은 단순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사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체하는 훌륭한 유모였다. 늘 우리가 살던 동네의 근방에 사시며 수시로 우리를 돌봐주러 오셨다. 우리 할머니는 (당시) 보통의 할머니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동생과 나는 할머니와 색칠놀이(요즘으로 말하면 컬러링북 같은)를 하거나 건전한 카드 게임, 머리를 쓰는 게임 등을 하며 놀았다. 할머니는 단순히 우리를 돌봐줄 뿐 아니라, 우리랑 노는 걸 즐기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우리에게 큰 행운인 것 같다. 그중에 우리가 정말 좋아하던 놀이는 단연코 퍼즐이었다.


동생과 나는 디즈니 영화를 매일 돌려봤다. 미녀와 야수, 백설공주, 인어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자연스럽게 디즈니 공주가 나오는 퍼즐을 즐겨했다. 100피스부터 200피스, 500피스까지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퍼즐을 했다. 어린 나는 비슷한 색깔과 모양을 찾아 조금씩 맞춰가다 보면 어느새 완성되는 신비한 매력에 빠졌다.




세월이 흘러 나는 동생이 낳은 4살 난 조카를 봐주며 퍼즐을 다시 만나게 됐다. 조카가 좋아하는 만화가 그려진 30피스짜리 퍼즐을 하고 있으니, 어릴 때 할머니와 하던 놀이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동생부부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크리스마스 퍼즐을 하며 그 포근하고 아늑한 계절을 누리는 걸 즐긴다. 며칠 동안 같이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조각을 맞춰가는 그 모든 과정이 크리스마스의 일부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생네 집에는 예쁜 퍼즐이 꽤 있다. 얼마 전 제부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동생부부가 황급히 미국에 간 사이에 조카를 봐주느라 동생 집에 머물렀는데, 하필 그때 몸이 아팠다. 그때 눈에 보인 게 다름 아닌 퍼즐이었다.


조카가 유치원에 가고 없을 때면 동생이 가진 퍼즐 중에 제일 예쁜 걸 골라서 아무 생각 없이 조각을 맞췄다. 하나하나 맞추다 보면 신기하게도 몸의 시름이 잠시 잊혔다. 1,000피스짜리 퍼즐을 조금씩 맞춰가며 형태를 만들어내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에도 불구하고, 뭐든 생산적인 걸 좋아하는 나는 솔직히 퍼즐 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저 킬링 타임용 놀이거리로만 여겨졌다. 여유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살면서 퍼즐을 할 여유가 많지는 않았고, 여유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퍼즐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예쁜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옆에서 별 일이라며 웃었지만, 나는 엄마도 같이 퍼즐을 하자고 졸랐다. 엄마는 어느새 내 앞에 앉아 다른 쪽 조각을 맞춰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퍼즐을 하며 별의별 이야기를 나눴다. 테두리가 얼추 다 맞춰지니 조카가 올 시간이 되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던 퍼즐을 엎어 퍼즐통에 넣었다. 갑자기 열려버린 퍼즐의 매력에서 나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집에 가서 가지고 있는 퍼즐을 뒤졌다. 동생 부부가 몇 년 전에 하고 선물로 준 1,000 피스짜리 퍼즐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예쁜 방 여기저기에 온갖 디저트가 뒤덮여 있는 환상적인 그림이었다. 보기만 해도 먹고 싶어 지는 케이크며 마카롱 같은 것들이 있는 그림이었다. 이 정도면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책상을 치우고 바로 퍼즐을 펴서 테두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모서리 모양새가 나오면 원하는 색깔이나 모양이 모여있는 곳을 위주로 조각들을 찾아 모으고 맞춰 나간다. 뒤집혀 있는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잘 보이게 정리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그럼 잠시 멈추고 다른 일을 한다. 밥을 먹고 나서 집중이 되지 않을 때, 늦은 저녁 시간에 틈틈이 자리에 앉아 또 퍼즐 조각을 맞춰나갔다.


최근 유튜브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10분의 시간을 가지면 집중력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콘텐츠를 봤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퍼즐을 하기도 했다. 신기하게 아침에 퍼즐을 하면 전날 잘 보이지 않던 조각들이 너무나도 쉽게 보인다. 확실히 잠을 깨우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10분만 하기엔 너무 재밌었다.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면 머릿속이 온통 퍼즐 조각들로 채워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틈틈이 5일을 했고, 드디어 퍼즐이 완성됐다.


드디어 완성된 1,000피스짜리 퍼즐. 군침이 도는 디저트들이 많아서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한 조각만 보면 도무지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던 것들이 모여 한 부분을 완성시키고, 또 완성된 다른 부분과 부분이 만나 더 큰 부분을 완성해 가며 마침내 큰 그림이 드러난다. 결국 완성이 된다. 우리의 일상도 아무 의미 없는 퍼즐 조각 같아 보일 때가 있다. 도무지 정리되지 않아 엉망진창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의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불필요한 일이 일어날 때면 그저 나의 인생에서 그 조각을 도려내고 싶기도 하다. 그게 내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돌아보면 마치 퍼즐에서 내가 싫어하는 색깔이 더 큰 그림 안에서 미묘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듯 그 일은 내 삶에서 제자리를 찾아 어느새 아름다운 색을 내고 있을 때도 있다. 과거에 해석되지 않았던 많은 일들이 결국 제자리를 찾았다. 제자리를 찾아간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퍼즐을 하며 퍼즐로 비유된 인생을 살아내는 경험을 하는 게 아니었을까. 재미있는 부분은 재미있는 대로 즐기며 나아가고, 죄다 비슷한 색깔만 있어 보이는 지루한 구간에서도 나름대로 그 안에서의 재미를 찾아가며, 언젠가는 이 그림이 아름답게 완성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놀이하듯 퍼즐이라는 인생을 살아본 것이 아닐까.


완성된 퍼즐을 보며 우리의 인생 또한 결국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할 거라는 믿음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삶의 조각 하나가 맞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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