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weller Jul 13. 2024

사랑하지만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매일 사는 공간을 정리하며 든 단상

이사한 지 딱 반년이 지났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더 이상 일터가 아닌 ‘집’이 되면서, 집은 피곤한 몸을 누이고 안식을 취하는 정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대부분 세끼를 집에서 먹고, 집에서 책을 보고, 글을 쓰고, 피아노를 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청소를 하며 보냈다. 오며 가며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와 하늘의 색깔을 보는 재미를 누리는 만큼 나는 이 집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계절, 날씨, 시간마다 바뀌는 바다와 하늘을 보는 기쁨이 있다.


사람들은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을 사랑해 주나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라고 한다. 그러나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을 소중히 여겨주나요? 당신을 좋아해 주나요?”라고 물을 땐 “그렇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확연히 줄어든다고 한다. 사랑하긴 쉽지만 소중히 여기기는 훨씬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웃픈 말이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같은 질문을 우리 집에게 물어본다고 하면, 아마 집은 “우리 집주인은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답할 것만 같다.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나는 집안일에 재주가 없다. 재주가 없으니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리정돈을 잘한다거나 말끔히 청소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집의 입장에선 답답할 것이다. 맨날 이 집이 너무 좋다고 말하면서 정작 집을 깨끗이 치워주진 않으니. 그러나 재주가 없다고 해서 아예 집안일을 멀리하는 건 아니다. 기본적인 것들은 하지 않으면 되지 않으니 한다. 음식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머리카락이 보이면 청소기를 돌린다. 환기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 그런데 그게 전부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한 번은 소파에 앉아 멍을 때리며 집안을 둘러봤다. 아주 더럽지는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찝찝하다. 물건이 너무 많지도 않은데 뭔가 답답하다. 물건을 더 줄여야 하나. 가구배치를 바꿔야 하나. 문제는 감지했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 알게 됐다. 나는 집이라는 공간은 사랑했지만 이 공간에 사는 물건들을 돌보지 못했다. 그것들은 그저 이사 오고 난 뒤로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그 물건들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나와 관계 맺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저 있었다. 당연히 그들 위에 쌓인 먼지를 닦아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나와 남편은 거실에 있는 에어컨만 의지해 몇 날 며칠을 잤다. 그런데 안방은 에어컨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찜통이 되기 일쑤였다. 우리는 다급히 예쁜 흰색이 나는 써큘레이터를 구매했다. 덕분에 그 후로 우리는 쾌적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써큘레이터를 볼 때마다 이 더위를 견디게 해주는 걔가 고맙고 디자인이 예쁘기까지 해서 뿌듯했다.


우리 집을 지키고 있는 (지금은 우리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물건들도 언젠가는 그런 애정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가고 그것들의 효용이 너무 당연해질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아이템들이 애정을 독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당연해진 수많은 물건들이 모여 아무런 애정도 받지 못한 채 널브러진 모습들이, 그것들에 애정을 주었던 수많은 첫 순간들을 불러일으켜 무뎌진 내 감각을 자극한 것이다.




일순간에 집을 모조리 다 정리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거실이며 주방, 옷방이며 베란다 할 것 없이 방이면 방마다 돌봄 받지 못한 물건들의 향연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애정을 필요로 했다. 거의 모든 것들이 그랬다. 그래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몰라 막연한 마음만 들었다. 며칠 동안 막막한 마음만으로 끙끙 살았다. 급한 마음에 일단 청소기부터 돌려봤지만 바닥에 먼지만 없어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최근 청소하는 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콘텐츠를 봤는데, 거기 나온 청소의 달인이 ‘처음에는 정리에 재미를 들렸고, 정리를 하니 청소를 하게 됐고, 청소를 하니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됐다’고 했다. 정리와 청소와 생활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청소보다는 정리가 먼저인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먼저 길게 늘어진 전선들부터 묶어서 보기 좋게 정리를 했다. 그리고 버려야 할 물건과 기부하거나 주변에 나눠줄 만한 새 물건들을 박스에 넣기 시작했다. 정리하려다 귀찮아서 그 자리에 둔 물건들, 예전에는 자주 손이 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들, 계절이 지나 보관이 필요한 물건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리 전문가들이 말해준 대로 한 번에 한 방씩을 공략했다. 서랍장을 다 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4년 전 신혼여행에서 가져온, 언젠가는 쓸 것 같았던 기념품들까지 나왔다.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은 거라면 앞으로도 사용할 가능성이 낮았다. 이 넓은 공간을 이렇게 불필요한 물건들로 채우고 살았다니 놀라웠고 그래서 속상했다. 묵은 때를 벗겨내듯 나는 더 이상 이 집에 속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비워냈다. 서랍장이 견뎌야 할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깨끗해졌다. 내 마음의 무게도 점차 가벼워졌다.


깨끗하게 비워진 서랍장을 보며 마음의 무게도 가벼워짐을 느낀다.




예전에 어떤 정리 관련 책에서 저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린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녀는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집을 정리하고 청소해나가다 보니 자녀를 잃은 슬픔의 무게도 조금씩 덜어내고, 정리되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마음도 차분해졌다고 했다. 트렌디한 철학선생으로 유명한 조던 피터슨 교수도 ‘위대한 일을 하고 싶다면 네 방부터 치워라’고 했다. 정리를 하는 일은 확실히 삶의 어떠한 태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우리 집은 정리가 진행 중이다. 언제 정리가 다 끝날지는 잘 모르겠다. 집중이 되지 않을 때마다 틈을 내어 정리해보려 한다. 청소는 아직 내게 어나더 레벨이지만,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면 청소하는 법을 배워가 보려 한다.


아무것도 올려진 게 없는 책상에서 보이는 바다가 더 깨끗하게 느껴졌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과도하게 쏠려있는 관심을 덜어내고, 더 많은 빈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그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여유를 갖는 것. 그렇게 생겨난 여유로 다음에 채울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은 내가 집을 소중히 여기는 방식이자,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행위가 될 것이다. 사랑은 반드시 행위가 따른다. 소중히 여김은 그 사랑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태도이자, 행동, 그리고 그런 삶 자체다.


비단 집에 대한 사랑뿐일까. 나의 배우자, 연인, 가족, 친구들.. 나는 그들을 향한 사랑을 그들을 소중히 여겨주는 무언가로 더욱 멋지게 표현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