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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헤르쯔 Sep 06. 2022

나를 믿기 시작하다

이제부터는 나를 믿을 거야!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나를 믿지 못하던 나는 나를 믿기로 선택했다.


나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상황을 견뎌내야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운 생각들은 나를 더더욱 깊은 우울의 바다로 데려갔다.

얼마를 더 견뎌내야 이 불행이 마침표를 찍을지 모르던 그때.

매일매일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에 뒤척이다 잠에서 깨어 새벽을 맞이했다.

그 새벽은 모든 것에 침묵하고 있는 듯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고요하고 깜깜했다.


나는 거실로 나와 커튼 사이로 보이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바깥세상을 바라보았다. 공간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의 수많은 에너지는 가라앉아 잠들어 있었고 그 빈 공간을 바람만이 오고 갔다. 나는 바람이 내 얼굴을 살며시 스쳐 지나갈 때마다 숨을 쉬었고 그때마다 나의 작은 호흡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거실로 돌아와 바닥에 앉았다. 눈을 감고 나의 호흡에 집중하며 명상을 시작했는데 피곤이 몰려와 그냥 바닥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주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바닥은 너무나 차가워서 나는 빨리 몸을 일으켜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바닥이라고 생각한 바닥보다 더 깊고 깊은 바닥..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바닥에 나뒹굴러 져 있었다.


'여기서 더.. 떨어질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왠지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하아..."

하는 숨소리와 함께 시선을 옆으로 돌렸는데 반대편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굉장히 어린 여자아이가 하나 보였다. 그 아이의 발은 상처로 가득했고, 옷은 지저분했고, 부스스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모습을 살피다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아이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 공포, 그리고 몸과 마음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나는 다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 아이와 나 사이에는 얼음같이 차가운 유리벽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단단한 유리벽을 손으로 쾅쾅 쳐보지만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점점 어둠 속으로 자신의 몸을 숨기더니 어느 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유리벽도 사라지더니 칠흑같이 깜깜한 어둠이 나를 둘러쌌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이었다. 그래서 나조차도 그곳에 없는 듯했다. 그러나 나의 몸이 느껴지지도 보이지도 않아도 그 어둠만큼은 내게서 뚜렷하게 보였다.


그곳에서는 어떤 불안도, 두려움도, 고통도, 아픔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오로지 차가운 느낌.. 내 몸에서 느껴지는 차가움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사라졌던 그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이번엔 두 발로 서서 반짝이는 빛에 둘러 쌓여 있었다. 그 빛은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따뜻한 빛에 둘러싸인 그 아이를 바라보며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나를 조심스럽게 안아 주었다. 그러자 차갑게 굳어있던 나의 몸이 온기로 가득 채워지더니 빛으로 빛났다. 그렇게 나는 그 아이의 품에 안겨 편안히 잠 이듬과 동시에 나는 그 꿈에서 깨어났다.


그저 꿈으로 넘겨 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나는 이 날의 꿈이 그저 꿈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꿈은 나와 연결된 깊은 무의식 세계.

어느 누구의 세계가 아닌 오로지 '나의 의식'만이 존재할 수 있는 곳.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뿐인 우주 나의 그곳이었다.


이후에 나는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하는 생각,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느끼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겁이 나서 그것들을 숨기며 나를 탓했다. 그러나 절망만 있던 그 시간. 나를 버티고 살아내게 해준건 나의 깊은 곳에서 나에게 연결되어 전해진 메시지였다. 불행이라고 불리는 세상에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부터 계속해서 내가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을 믿기로 하고 나서 나는 나 또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기에 나는 결국 어떠한 순간에도 결코 나를 버리지 않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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