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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헤르쯔 Oct 10. 2022

문제가 주는 진짜 의미

심장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 그 증상이 나타났던 건 수면 중이었을 때다. 심장이 갑자기 조여오기 시작하더니 가슴 전체가 터질 듯이 팽창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쉴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너무 아파 괴로워하던 그때 나의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왔고 나는 거울을 통해서만 보던 나의 얼굴을 처음으로 직접 바라볼 수 있었다.


'나 죽은 건가?'


그때 나는 죽은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죽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만약 살아있다면 내일 당장 병원에 가 입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을 것 같이 아픈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신없이 오갔다. 그리고 그런 내 옆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새근새근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아이가 보였다. 순간 머릿속 생각들이 다 사라지더니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나의 몸에서 빠져나온 영은 곧바로 다시 내 몸으로 돌아왔고 나의 몸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조여 오는 심장에게 '제발.. 숨을 쉬어봐 천천히 천천히.. 제발 심장아 진정해'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을 아이 옆으로 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조금만 잘못 움직였다간 심장과 그 주변의 근육들이 터질 것 같았다. 살려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내는 기능이 멈추고 목의 근육들도 멈춘듯했다. 움직임이 자유로웠던 건 오로지 눈뿐이었다. 나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실체 하는 나의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지만 나의 영혼이 아이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움직일 수 없던 얼굴이 아이 쪽으로 향했다. 나는 곧바로 아이를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나의 손이 아이의 얼굴로 향했다. 이때도 실제 하는 몸에 있는 손이 아닌 나의 영이 아이를 먼저 만졌고 그 후 나는 손을 움직여 아이의 얼굴을 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의 보드랍고 따스한 솜털을 천천히 만지며 아이의 숨소리가 나의 손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그 후 나는 천천히 호흡이 돌아왔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심장의 수축이 조금씩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숨을 내실 때는 여전히 심장과 가슴 전체가 아팠다. 나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선 이 호흡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여러 번의 호흡이 이어졌고 나는 다시 나의 몸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이 아이를 만질 수 있는 나로 돌아왔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날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음에,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또다시 이 힘든 시간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에 정말 많이도 울었다.


다음날 나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여러 검사를 했지만 나의 검진 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다행이면서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죽을 거 같았고 죽은 줄 알았는데 나의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그 후에도 나는 몇 번씩 비슷한 증상을 겪었지만 내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아픔은 어디서 온 걸까?




숨겨둔 씨앗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건 명상이었다. 나는 조용한 거실에 앉아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보일 때까지 명상을 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는데 그 생각들 중 대부분은 나의 불안에서 시작된 걱정들이었다. 나는 명상을 하다 갑자기 눈물이 폭풍우처럼 쏟아지기도 했고 바닥을 치며 괴로움에 쓰러지기도 했다. 나의 심장 가슴의 통증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표출하는 표현이 분명했다.


그 시기 나는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의 내 모습은 진흙탕 속에 빠져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진흙탕 속에 빠진 나를 이끌고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걸어 나가야 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고 앞으로 나아갔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열심히 사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나였지만 실제의 나는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때 나는 간절히 믿었다. 이것이 절대 나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이 믿음은 나를 계속해서 일으켜 세웠고 진흙탕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보이지도 않던 절망의 끝쪽에 다 달았을 때 새로운 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이제 그 문을 열고 나가면 이 진흙탕과는 영원히 이별이었다. 문 앞에 서서 앞만 보고 걷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내가 지나온 자리에는 그동안 내가 보지 못한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내가 걸었던 그 길은 어쩌면 풀어내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수도 없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외면한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문제의 씨앗을 찾아 꺼내가 보다는 문제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필요했다. 그 고통이 나를 아프게 하고, 내 심장까지 아프게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나는 걸어야 했다. 진흙탕 속에서도 나는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말이다.


그 후 매 순간 아주 작은 것에 감사함이 들었다.

힘들어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죽은 줄 알았던 식물 위로 새로운 싹이 피어난 것에, 밤에는 잠을 못 자다 며칠 만에 낮잠을 한 시간이나 잤다는 것에, 그리고 나의 몸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에 감사했다.


나는 아이에게 많이 웃어주고 싶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엉망이더라도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언제 그 아픔이 다시 찾아와 정말로 나를 원인불명의 심장마비로 사망케 할지도 모르니까..

지금 살아 숨 쉬는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비록 고통 속에 있더라도 하루 23.59 시간이 모두 절망이더라도 단 1분만 단 1초만이라도 웃을 일이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내 삶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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