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긴장되고 지난했던 인터뷰를 마쳤다. 종일 긴장 속에 너무나 고생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여 주말에 스스로에게 포상을 주고자 인디애나폴리스로 향했다. 그간 가장 먹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 먹으러 다니는 짧은 푸드파이터 나들이였다.
블루밍턴에 와서 개인적으로 가장 있었으면 하는 것 중 하나가 베이커리였다. 마트에 있는 대량 생산 공장표 도넛과 쿠키는 많이 봤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가게 앞을 지나가노라면 빵 굽는 냄새에 마법처럼 이끌려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 참새가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베이커리가 하나쯤 있었으면 했다. 갓 구운 빵이 시간대 별로 나오고, 달달한 빵, 짭짤한 빵, 섬섬한 빵이 늘어져 있어 선택 장애가 생길 것만 같은 그런 동네 빵집 말이다. 블루밍턴에 프랜차이즈 도넛 가게는 그래도 꽤 있는데, 다른 옵션의 빵을 파는 가게가 별로 없어 늘 아쉬웠다.
블루밍턴 사람들은 조리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의 달달 짭짤한 각종 조리빵들 정말 맛있는 게 많은데, 제빵을 배워 창업을 하면 왠지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인디애나폴리스에 뚜레쥬르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빵 맛집들이 워낙 많아 좀처럼 찾지 않던 뚜레쥬르였는데, 입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가 번쩍 뜨여서 인터뷰가 끝나자마다 달려가기로 했다.
도시로 달려가는 길, 구름이 예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인디애나폴리스로 진출하는 김에, 평소 먹고 싶었던 짜장면도 먹기로 했다. 꾸덕하고 달달한 짜장면도 제법 향수를 유발하는 항목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여 오늘의 루트는 짜장면 집에서 점심을 먹고, 뚜레쥬르에서 커피와 빵을 사서 돌아오는 것으로 정했다. 검색을 해보니 기대하는 짜장면에 가장 가까운 비주얼을 연출하는 곳이 있었다. China Garden Restaurant이라는 곳이었다. 중국음식점인데 한국인 셰프가 있다고 해서, 믿고 가 보았다.
한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는지, 메뉴를 보며 자장면을 찾던 중 서버가 다가와서 '짜장면은 이거다'라고 알려주었다. 자장면 2개와 탕수육으로 추정되는 Sweet & sour pork를 주문했다. 사실 꿔바로우가 제일 먹고 싶었는데, 메뉴에 없었다. 서버가 주문을 받으면서 탕수육은 소스도 한국식으로 해줄까? 아니면 중국식 오리지널로 해줄까? 물어봐서 신기했다. 여차여차하여 오리지널 중국 소스로 최종 선택을 했다.
음식 비주얼은 훌륭했다. 김치와 단무지/양파까지 제공되길래 어라, 제법이네 싶었다. 무척 반가워지려던 찰나, 김치를 맛보고 적지 않게 실망했다. 이것이 바로 파오차이의 맛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감칠맛이 하나도 없는 게 한국인의 소울메이트 다진 마늘과 깊은 맛을 내는 젓갈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고춧가루만으로 붉은빛과 얄팍한 맛을 낸 것 같았다. 비주얼은 제법 영롱했으나 피상적인 배추 겉절이에 불과했다. 한국 음식점이 아니기에 용서해 주기로 하였다. 부디 다른 외국인들이 처음 경험하는 김치가 이 맛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탕수육은 익숙하게 먹어본 맛이 났고 소스도 맛있었다. 만족하면서 먹었다. 남편은 돼지 잡내가 많이 나서 영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 거에 조금 무딘 편이라 소스랑 먹으면 그럭저럭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대망의 자장면...! 소스가 면과 다른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게 흡사 간짜장 같았고 비주얼이 훌륭해서 기대를 자아냈다. 생기기엔 한국의 그것과 아주 비슷했는데 희한하게도 맛은 전혀 달랐다. 한국에서 먹었던 맛보다 달지 않고, 춘장 향도 훨씬 약해서 짜장보다는 팥죽(?) 비슷한 맛이 나서 특이했다. 설탕을 한 봉지 넣었더니 한층 익숙한 맛이 나서 그럭저럭 먹었다. 하지만 굳이 두 번 먹으러 더 오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는데, 외국에 나오니 그 맛을 찾아다니기가 영 쉽지 않다.
중국집에서 반쯤 만족하고 반쯤 아쉬운 대로 배를 채우고, 다시 가장 큰 목표였던 뚜레쥬르를 향해 달려갔다. 뚜레쥬르는 규모가 꽤 큰 인터내셔널 마켓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익숙한 로고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한국에서는 본체만체해서 미안했구려.
한국인만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외국인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어서 놀랬다. 더군다나 뚜레쥬르가 입점해있던 마트에 음식점이 5개 있었는데, 뚜레쥬르를 포함해서 그중 3개가 한국 음식점이었다. 이러면 또 국뽕이 차오른단 말이다. 모쪼록 오래간만에 찹쌀 도넛, 팥앙금 소보로빵, 소시지 빵 등등 조리빵을 잔뜩 사 올 수 있어 행복했다. 오랜만에 보니 눈이 돌아서(?) 빵을 4만 원어치를 사버렸다.
오래간만에 한국스러운 커피도 먹고 싶어 아메리카노와 라떼도 주문했다. 설렘 폭발하며 첫 모금을 마시는데 아뿔싸, 설탕물이다. 이놈의 미국은 따로 빼달라고 하지 않으면 커피에 시럽을 넣는 게 기본인 곳이 너무 많다. 이게 아직 익숙지 않다. 시럽 빼달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 쌉싸름한 아메리카노와 고소한 라떼의 맛을 또 침범당하고 말았다, 젠장. 시럽은 인간적으로 알아서 넣는 걸로 하자- 제발 부탁이다.
뚜레쥬르 빵과 커피를 사고 또 기분이 좋아져 사진도 찍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조금 어이가 없고 웃기다. 한국에 있었다면 뚜레쥬르를 구입했다고 사진을 찍는 건 상상도 못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 맛 빵과 커피를 맛보고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는 후문이다. 한국의 레드오션 베이커리 시장 속에서 창업을 고민 중이신 파티시에 분들이 계시다면 주저 없이 인디애나로 건너와주시길 읍소 드리는 바다. 특히 블루밍턴에는 작은 베이커리 하나만 있어도 정말 대박 날 것 같다는 비밀도 함께 말이다.
다음날 뚜레쥬르에서 사 온 빵들을 오븐에 다시 한번 따뜻하게 구워내고, 오믈렛에 커피까지 곁들여 배부르게 브런치를 먹었다. 조금씩 이 빵 저 빵 다 맛보는 게 너무 좋다. 딸기 생크림 소보로빵이랑 커스타드 소보로가 진짜 맛있었다.
아무리 당연하던 것도 없어져보면 부재 안에서 필요와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를 무시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블루밍턴에도 매력적인 베이커리가 생기길 살포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