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이후 수년을 나와 함께 역할극을 해왔던 여섯 살 아들은 마치 명예 고문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신나 하며 적극적인 아이디어 제공과 홍보 활동을 아끼지 않았다.
100일에 걸쳐 첫 영상을 완성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족 시사회였다.
주말마다 좀비 모드로 영상제작과 아빠의 역할을 해온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내의 평가는 동료애와 애잔함이 담겨있을 수 있으니 제외.
아빠 목소리가 TV에서 나오는 것만으로 이게 뭔가.. 하며 멍하니 신기해했던 두 살 공주님도 제외.
냉철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첫 째 아들이었다.
USB로 영상을 담아 아내와 두 아이들을 소파에 앉히고 재생을 눌렀다.
어색했고 긴장되었다. 정면을 바라볼 수 없었다.
곁눈질로 아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아빠의 목소리가 나오니 너무너무 재미있어했다.
영상이 시작되고 2분 뒤, 갑자기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만지작거렸다.
영상이 시작되고 5분 뒤, 그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렇게 짧지만 길었던 8분간의 시사회가 끝났다.
궁금한 눈빛으로 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외면한 채 아들은 먹을 것을 달라며 쪼르르 엄마를 따라갔다.
"아들, 아빠 영상 어땠어? 평가를 해 줘야지."
"......... 잘했어 아빠."
머릿속에 두 글자의 단어가 강하게 박혔다.
의. 리.
영상을 만들어오며 '재미있다' → '재미있을 거다' → '(이렇게 고생하는데) 재미있어야 한다.' 이 단계로 나만의 착각 속에 빠지면서 노력에 대한 당위성을 콘텐츠에 대한 보상심리에 담으려고 했던 내 기대를 지긋이 깨 주면서도, 아빠가 행여나 의기소침할까 봐 돌려서 표현해주는 아들의 모습에게 진한 사나이의 의리를 느꼈다.
(물론 그 순간 함께 찾아오는 민망함과 허전함도 내 몫이었다.)
아들의 묵직한 조언을 바탕으로 영상의 도입부를 짧게 하고 지루해 보이는 부분을 과감히 날리며 그렇게 첫 영상은 업로드되었다. 이후에도 아들의 의리와 관심은 내가 유튜브에 계속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정말 보이지 않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촬영으로 인해 아들과 공룡 친구들은 잠시 원치 않는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유튜브에 영상을 하나하나 올려가며 마음속에 욕심이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상에 대한 완성도와 업로드에 대한 타이밍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이는 나의 주말 역할에 대한 비중에도 조금씩 변화를 불러왔다.
유튜브를 하기 전에는 주말에 내 방에 혼자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유튜브를 하고 나서는 처음으로 방문을 잠가 보았다.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놀아달라며 아빠방 문을 두드리는 것을 애써 외면했다.
"여보, 딱 1시간만 더 집중할게."
아이들의 기상과 함께 바로 정리했던 작업도 시간이 점차 늘어났다.
주말 아침 아이들과의 시간과 아침 식사 준비를 아내에게 떠맡기다시피 했다.
"여보, 나 30분만 금방 눈 붙이고 일어날게."
평일에는 온전히 100% 이상으로 회사 업무에 집중하고 밤늦게 오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주말 새벽에 작업을 하면 그 날 오전 컨디션 유지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잠들던 오후 낮잠의 규정(?)을 깨고 아이들의 에너지가 한창인 오전에 안방으로 쓰러지다시피 들어갔다.
아들도 바다에서 모사 사우르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 했다.
"아빠 촬영할 때는 잠깐만 조용히 하자. 조금이면 돼"
가끔 아이들과 여행을 갈 때도 항상 가방에 장난감과 삼각대를 챙겨갔다.
해변가에서 아빠와 놀고 싶어 하는 아들을 옆에 두고 영상을 찍었다.
혹시라도 아들의 목소리나 그림자가 카메라 속에 들어갈까 봐 아들에게 몇 번이고 안 해도 될 당부를 했다.
첫 영상이 업로드될 때 함께 좋아해 준 가족의 응원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가족의 도움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나하나 장난감들을 내 혼자 생각나는 대로 사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 욕심을 정당화시키는 자기 세뇌는 나도 모르게 무엇이든 당연하게 명분을 만들어 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며 1년 여가 지났다.
구독자 1,000명을 앞둔 상태라 더 나만의 명분을 쏟아내며 한창 영상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주말 아침.
평소 와일드하게 활동 에너지를 분출하던 아들이 그 날 따라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한 마디.
"아빠, 나랑도 놀아주면 안 돼요..?"
멍했다.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아들을 꼭 껴안았다.
평소였으면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달라는 이야기를 했었을 아들은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변했구나 내가.
회사에서는 초심과 본질을 그렇게 강조해 왔었는데 내 작은 생각과 행동 하나 다스리지 못했구나..
아차 싶었다. 아차산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아들에게, 딸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의 일이었음에도 정확히 기억나는 그 날 이후 영상에 너무나 몰두해왔던 습관을 고치고 주말의 원래 내 역할에 더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물론, 영화와 같은 스토리처럼 각성한 아빠의 풀파워 육아 전투력이 하늘을 치솟거나 하지는 않았다.ㅋ)
채널의 영상을 올리는 속도가 더 늦어지기도 하였지만 유튜브가 가족을 앞지를 수는 없었다.
채널을 봐주시는 구독자 분들을 위해서는 꾸준히 제때제때 영상을 만들고 올려야 했지만, 이 조차도 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 마음의 속박이라고 생각하고 나 스스로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주기로 했다.
삶 전체로 보면 유튜버라는 도전 속의 극히 작은 경험이지만 아들의 한 마디는 나로 하여금 소중한 것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밸런스를 잡아가는 삶이 중요함을 느끼게 하였다.
나에게는 정말 큰 마음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저 발자국처럼 지금의 도전이 훗날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기억과 용기가 되기를.
아직 채널 규모나 구독자 수로 보면 난 아직 유튜버라 하기에도 부족한, 먼지 같은 도전자이다.
(책의 끝까지 영상 제작 방법이나 채널 성장과 광고 기법에 대한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을 것이다.ㅎ - 유튜브와 서점에는 이와 관련된 메가 유튜버분들의 좋은 내용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조금 더 먼저 시작한 크리에이터로서'마음'과 '디테일'의 과정에 맞춰 글을 쓰고 있다.
오늘 글을 통해 유튜브에 도전하고 유튜버로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두 탕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용기'를 꼭 잊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다.
유튜버로 치면 나 역시 아직 유아기 단계이지만 1년 반 동안의 시간을 통해 채널'만' 커지는 것보다 채널과 내가 '함께' 커 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미혼이든 기혼이든 만약 집이라는 공간과 배경에서 유튜버에 도전하시는 분들께는 그 과정에서 가족이 주는 힘은 정말 크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그 과정을 가족과 함께 공유하고 '서로' 응원해주며 걸어가셨으면 좋겠다.
오늘도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유튜버 분들과 육아를 위해 노력하시는 엄마·아빠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하며 응원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