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진 김에 쉬었던 세 달
달리기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매거진까지 만들어놓고 긴 시간 글쓰기를 쉬었다. 중간중간 달리기는 했지만 삶의 여러 가지 문제에 맞닥뜨리다 보니 그때의 경험들이 글 까진 이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풀마라톤 이후 뛰는 둥 마는 둥 하며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25년 4월, 뜻밖의 부상으로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조금 더 의욕을 갖고 달려보자며 뛰었던 3일간 매일 3km 정도의 가볍다면 가벼웠던 달리기가 내 몸을 파괴하는 마중물이 되었을까. 마지막 날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오른쪽 허벅지 안 쪽을 따라 생경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름 수년의 달리기를 하며 신스프린트 염증, 아킬레스건 염좌, 거위발건염, 요통 등 다양한 질환을 경험했지만 이 부위에서 주는 통증은 상당히 생소했다. 경험 상 이런 종류의 통증은 병원치료를 받아도 긴 시간이 소요되어 결국 스트레칭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내 맘대로 진단을 내리고(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내전근 건염으로 판단했는데, 실제로 병원에 방문했을 때도 이 질환이 맞기는 했다) 그에 맞는 운동법, 스트레칭 법을 찾아 꾸준히 실행했다. 평소 잘 쉬어주면 나름 금방 회복이 되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한 두 달이 지나도 통증은 나아지기는커녕 어떤 날은 더 심하게 느껴져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과거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사실 그 간 몇 달의 나는 숨쉴틈도 없이 여러 가지 일들로 몸과 마음이 모두 바쁘고 피로했던 것 같다. 나의 그런 상황이 통증도 잘 가라앉혀주지 못하고, 병원에 갈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부산한 나날이 어느 정도 정리된 8월 초 무렵 집 근처의 재활의학과에 방문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지시로 몇 가지 동작을 취해본 결과 내전근 건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물리치료를 받고 진통소염제와 근육이완제를 5일간 복용한 뒤 다음 주 진료 때까지 문제가 생기면 도수치료를 받자는 심플한 처방을 받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먹은 그날 언제 그랬냐는 듯 통증이 사라졌다.
3~4일 정도는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의했지만, 치료 5일째인 오늘 시험 삼아 러닝머신에서 10분 달려본 결과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대체 운동으로 스피닝 자전거를 타서인지 호흡에 여유가 있었다. 엎어진 김에 쉰다고 했던가. 그간 일상도 러닝도 모두 바쁘게 달려오던 내가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몸이 신호를 보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나 고생한 내 몸뚱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용서를 빌었다.
바쁘게 사는 것이 능사는 아니건만 이 세상은 내가 가만히 있게 두지를 않는다. 바쁘면 바쁜 대로, 일이 없이 한가하면 한가한 대로 내 머릿속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이런 과부하 상태를 나 스스로가 알아차릴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무언가 정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잠시 눈을 감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내 몸을 쓱 훑어보자. 나의 내전근 통증처럼, 제발 살려달라고, 그만 멈추고 잠시 쉬어달라고 내 몸이 울부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땐 잠시 그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간 참 고생이 많았다 한 마디 해준다면 몸과의 화해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