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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04. 2021

2년 6개월의 습작을 통해 얻은 건

2년 6개월의 습작을 통해 얻은 건 지독한 어깨와 허리 통증이다. 일주일에 세 번 살기 위해 아파트 요가를 하고 등산을 하고도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우선 의자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르면 새벽 6시부터 앉기 시작해서 집안일을 할 때 외에는 과외가 끝나는 10시까지 앉아있으니 의자가 중요했다.  

   

집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거실의 소파를 버리고 전부터 봐 둔 탁자와 의자를 구입했다. 탁자 위에 유리를 깔지 않고 나뭇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제품이었다. 세트인 의자는 낮아서 안전감 있고 고급스러웠지만 하루 종일 앉아있기는 불편했다.     


초밥이 의자가 생각난 건 그때였다. 주로 옷을 걸어놓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그것을 가지고 와서 앉아봤더니 이거다, 싶었다. 허리도 어깨도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단 한 사람만은 내가 편해하는 걸 내내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말했다.    

옷걸이의 용도로 사용되던 의자


“나 의자에 앉아서 그림 그려야 해.”     

여태 초밥이가 책상에서 공부를 비롯한 뭔가를 하고 있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 국수 장인이 되려는지 액체 괴물을 하는 건 봤다) 의자와 책상을 구입한 2년 동안 사용을 안 하다가 내가 의자를 사용한 지 3일 만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게 나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의자를 찾아 중고장터에서 뒤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브랜드 의자로 가장 저렴한 것은 삼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당근에 올라온 게 있어서 내가 가지러 가면 택배로 받아서 조립하는 것보다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내가 검색한 것과 같은 의자를 발견했다. 의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내가 의자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까 마침 쓰레기장 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경비아저씨가 말했다.   

  “가져가고 싶어요? 보니까 방석이 닳았던데.”

“이건 교체하면 돼요.”

“가져가려면 그렇게 해요. 스티커 떼 줄게요.”     


초밥이는 궁상맞게 왜 남이 버린 걸 주워왔냐고 하지 않고 잘했다며 자기 의자를 냉큼 가져갔다. 나는 혹시 구조해온 의자를 쓸 생각은 없냐고 하니까 녀석은 냉정함이 묻어나는 정확한 태도로 거절했다. 그나저나 그 의자는 이제 나와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보미와도 온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 김이나 작사가가 나오는 시디즈 광고를 보게 되었다.     

작사를 어떻게 쓰냐고요? 섬광처럼 탁하고 떨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계속 시간이랑 싸움을 하는 작업 같아요. 계속 기다리고, 기다리고.    


시간과 하는 싸움, 쓸거리가 있어서 쓰는 게 아니라 뭐라도 나올 때까지 앉아있어야 한다는 말. 나도 2년 6개월의 습작생 기간 동안 그것 하나만큼은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을 보내기 전의 나랑 후의 나는 완전히 이제 다른 사람이에요. (중략) 이건 내가 아닌 누가 절대 대신해줄 수가 없는 시간이에요.    


글을 쓰면 겉으로 볼 때는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조금씩 나아지는 내가, 어제와 다른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두 시간 전의 나와 지금이 달라졌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내가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언젠가는 괜찮은 인간이라고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어쩐지 내 생각을 잘 풀어냈다고 생각하는 글을 한편 쓰고 나면 가슴 벅차고 살맛이 난다. 이게 진짜 사는 거지, 싶은 순간이다.    

  

반면 살맛 나지 않는 순간이 부지기수다. 공모전에 지원할 때 하고 떨어질 때마다 나의 꿈이 무용지물이 된 원고가 된 것 같았다. 책 한 권 분량을 제본을 해서 우편접수를 해야 했던 경우에는 인쇄소에 원고를 넘기고 제본비(3,000)를 내고 등기우편 비용(2,500원)을 부담해야 했다. 인쇄소와 우체국을 오간 교통비, 시간이 모두 헛수고로 돌아가는 일은 겪을 때마다 매번 처음인 것처럼 힘이 빠졌다.


짧은 경험 중에서 최고는 전북 미디어 창작 공모전이라고 해서 시나리오 공모를 할 때였다. 온라인으로 서류를 접수했더니 전북창작미디어센터라는 곳을 오라고 해서 세 시간을 대기하게 했다. 그런 다음 대회의실 같은 곳에 나를 정중앙에 앉게 하고 마이크로 시나리오 설명을 하고 질문에 대답하게 했다.

 

그때만 해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지원자에 대한 주최 측의 배려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1차 서류에서 선정된 작품에 한해서 2차 면접을 하고, 면접 방식도 미리 설명했어야 했다. 나는 군산에서 전주로 갔고, 함께 대기하던 사람들도 완주, 대전, 각지에서 왔다고 했는데 교통비는 물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실망보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나는 계속 공모하고 투고할 거라는 걸 안다. 그저 내가 바라는 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의자에 진득하게 앉아있는 것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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