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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n 23. 2021

엄마 얼굴 왜 그래?

딸 덕분에 매일 늙어가고 있다는 걸

초밥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초밥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안에는 회색과 하늘색이 배합된 원피스를 입은, 한 눈에도 멋쟁이인 여성이 타고 있었다. 세수도 안 한 얼굴에 야구 모자를 쓴 나와 비교가 되어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시간이 어쩐지 길게 느껴지던 그때, 초밥이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엄마 옛날에는 피부도 반짝반짝했는데.”

절대 위로가 아닌 말을 전했다.     


평소에도 초밥이는 “엄마는 학원에 일할 때가 제일 예뻤어”라고 정확히 과거형으로 말하고는 한다. 흰머리나 주름 같은 건 발견하는 즉시 알려주는 게 효도의 덕목이라고 배웠는지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엄마 얼굴 왜 그래?”라고 해서 거울을 보면 어김없이 기미가 전보다 진해져 있었고, 그런 초밥이 덕분에 매일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니라 늙어가고 있구나를 잊지 않고 살고 있다.

      



머리를 돌돌 말아서 고정시키는 똥 머리를 다섯 살 초밥이는 싫어했다. 

“똥 머리 아니고 발레 머리야”

이름 때문이라는 걸 알고 급히 정정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엉덩이에 레이스 달린 옷을 입고 발레 머리를 한 초밥이는 환한 이마가 도드라져서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초밥이는 내가 애써 묶은 머리를 풀어버리고는 했다.     


“나 똥 머리 좀 해줘”

중학교 교복을 입은 초밥이가 고무줄과 빗을 들고 왔다.

“언제는 싫다고 난리더니.”

대답은 하지 않았다. 친구와의 카톡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잡은 초밥이 머리카락은 묵직한 게 뭐랄까, 꿈틀거리는 장어를 손으로 잡을 때처럼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까만 머리카락에 나도 모르게 부러운 눈길을 던지다가, 내가 무슨 딸을 질투하는 엄마가 된 것 같아서 의기소침해졌다.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머리카락의 소유자


나는 여성 호르몬이 점점 말라가는데 초밥이는 최고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 생리 양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 내가 생리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더 신경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머리카락도 숭숭 빠지고, 생리양도 줄고 이건 뭐 남아나는 게 없다. 엄마와 딸은 생리대도 나누어 쓰고 호르몬 분비 양도 비교하는 묘한 관계.



오늘은 집 앞 서점에 책을 반납하러 갔는데 독서모임이 있었는지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어?”하고 인사를 하고 보니 내 옷에 뭔가 묻은 게(아침에 만든 오징어볶음 양념으로 추정) 보였고, 장바구니가 신경 쓰여서 뭘 물어보는데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나왔다. 지난주에도 장을 보러 가다가 동사무소 앞에서 윤호 씨를 만났는데 이건 무슨 장바구니만 들었다 하면 사람들을 만나는 통에 장바구니 법칙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전과 사뭇 달라진 내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는 기색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어쨌거나 학부모 상담이 많았던 시절에는 정장을 입고 거기에 맞춰 머리나 화장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장보는 일이 유일인 스케줄인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집에 있는 차림(노 세수, 야구모자)으로 나가게 되는 이유다. 두 시기를 핸드백과 장바구니 시절이라 할 수 있겠다.     



핸드백 시절에는 미용실, 네일숍을 순회하고 화장품과 옷을 검색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뭐 하나를 사려고 하면 후기와 실물 사진까지 보느라 무슨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새로운 브랜드를 알게 되면 곧바로 연구자의 태도로 돌입해야 했고, 파면 팔수록 이건 꼭 있어야 돼, 하는 것이 자꾸만 생겨나서 끝도 없는 클릭에 과로사할 지경이었다.     

초밥이가 말하는 "학원에 일할 때"


장바구니 시절을 보내고 있는 나는 점심에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새우젓 한 숟가락에 멸치 한 줌, 마늘, 고추를 넣고 찌개를 끓였다. 밥에 호박을 쓱쓱 비벼서 먹는데 900원짜리 호박이 어찌 이리도 맛있는 거냐며 감탄했다. 점심에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는 이 모든 여건이 감사했다. 이런 감사함이 이어지는 삶이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더없이 소중했다.    

공평하게 장바구니 시절도


주말에 갔던 지리산에 있는 ‘대성 주막’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정지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곳만의 질서와 세계가 있는.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과 기운이 있었다. 독자적인 시간을 쌓아 올린 것에는 오라가 깃든다는 걸 산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지리산에 있는 '대성 주막'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고 나에게 그것이 사라져 버렸다는 걸 알았다. 인적이 없는 고요한 숲을 걸으면서 어쩌면 산에서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연한 상실감으로 등산을 시작하지 4년 반이 되었다. 


공기 맛 나는 햇반을 먹을 때처럼 어쩔 수 없이 먹은 음식들은 나를 허기지게 했다. 나한테 선택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늘 쫓기는 기분일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건 키우는 화분에서 꽃이 피는 걸 볼 때처럼 작은 감동이 흐르는 삶이었다. 나만의 선택과 시간을 쌓아 올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점심에 요리를 해서 먹는 사치를 부리고 있다

끝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자녀의 2차 성징을 부모가 축하해주듯이 부모의 노화도 자녀들이 칭찬을 해야 한다'는 거다.  “흰머리가 또 늘었네요. 잘 늙어가고 있어요.”라고. 어쩐지 약 올리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2차 성징만큼 노화도 또 하나의 성장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시간으로 자기만의 품격을 만드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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