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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22. 2021

네이버기사 때문에친구에게2년 만에연락이 왔다

이인조 멤버 H는 글을 읽는 순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평소 찾아보지 않던 글쓴이 이름을 찾아 보고서야 익숙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H는 내 이름 석 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낮게 중얼거렸다.   

  

“역시 내가 아는 깐족거림이었어.”     


20대를 나와 함께 허송세월을 보냈던 H가 2년 만에 연락을 한 이유는 네이버에 올라온 하나의 기사 때문이었다. 초밥이가 20만 원짜리 파마를 한 일을 내가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렸는데 그게 네이버에 뜬 모양이었다.      

“다음에 나올 말을 뭔지 알 것은 이 느낌이 뭘까 했는데 바로 너였어.”     


H가 걸어준 링크 덕분에 악명 높다고 소문으로만 들어왔던(에세이 쓰기 팀의 현웅 샘이 말해줬다) 네이버 댓글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129개의 댓글이 한 목소리로 칭찬과 성원하는 글은 아닐 거라는 건 나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토록 다채로운 비난 버전은 무엇일까 하는 참으로 쓸데없는 호기심이 나를 댓글 창을 클릭하게 하고 말았다.      


“에효, 이것도 기사라고”

“일기냐?”


처음 댓글 두 개만 보고 바로 창을 닫았다. ‘느낌 알아쓰, 이만하면 됐어’      

초밥이한테 말했더니 녀석은 “휴대폰 이리 줘 봐”하고는 댓글을 하나씩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 너무하네.”

“읽어주지 마.”

“가정교육이 엉망이라고?”

“볼 거면 말하지 말고 봐.”     


나의 새가슴을 물려받지 않은 딸은 “안 되겠네” 하더니 로그인하고 대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네가 그 딸이지’하면서 더 심한 말 하면 어쩌려고 그래.”

“나도 욕하면 되지.” 


어디서 이런 결기 있는 딸이 나왔을꼬. 아무튼 옆에서 말리다 보니 이거 왠지 내가 어디서 맞고 와서 딸한테 일러주는 상황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밥이는 지쳐가는 게 아니라 점점 신이 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이건 어쩌면 나를 대신해 싸워주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너...댓글을 핑계 삼아 욕하는 거.... 아니지?”


녀석은 엄마 대신에 전장에 나가 있는 딸한테 그게 할 소리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마, 웃긴 것도 있어.”

“뭔데?”

“‘기자 하지 말고 파마나 해라’”


우리 둘 다 빵 터져버렸다. 기분 나쁜데 웃긴 건 웃긴 거였다. 그렇게 한 시간을 낄낄거렸나. 침대에서 복숭아를 집어먹으며 나는 책을 읽었고 초밥이는 답글을 달고 있을 때 문득 내가 물었다.  

    

“엄마 작가 될 수 있을까?”

“어.”

“어떻게 알아?”

“열심히 하잖아.”    

 

초밥이의 단호한 말투 때문이었을까, 나는 조금 울컥했다. 44살에 노화가 진행되는 엄마가 딸한테 묻는 질문치 고는 이상했고, 딸의 말에 용기를 얻는 것도 이상했지만, 위안이 되고 고마웠다.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믿어준다면 계속해봐야겠다는, 자그마한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았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였고, 쓰기는 고쳐 쓰기였으며, 작품의 완성이란 불가능하고 마감에 맞춰 작업을 멈출 뿐이다.”    

 

책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에 나오는 말인데, 한 문장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연달아 가슴을 때리는 문장이 나왔다.   

  

“사는 것 역시 비슷했다. 우리는 어제를 고쳐 오늘을 살고 내일이란 시간을 쓴다. 매일 지면서 계속 사는 삶의 숭고함에 비하면 글쓰기의 실패는 미미한 일과에 지나지 않았다.”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는 김호연 작가의 20년 글쓰기를 하는 동안의 “실패담”인데,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나는 당장에 이 작가의 소설을 읽지 않고는 못 견딜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바로 읽기 시작한 것이 <망원동 브라더스>였다.     


좋은 소설이란 소설 속 인물들을 마구 응원하다가 나조차 위로받고 마는 거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은 후에는 잔상 때문에 곧바로 다른 글을 읽을 수 없다면 확실하다. 스토리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작가가 지는 삶 속에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길어 올려서 탄생한 글이라서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 날리는 유머라 빛이 났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난 속에서 한 발씩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이제 나는 쓰면 괴롭고 쓰지 않으면 더 괴로운 상태가 되었다. 더 좋은 글을 쓰지 못해 괴롭고 뭐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왕 버린(?) 몸이 된 바에야 어떻게든 써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왕 버린 몸, 나의 실패담을 써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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