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정 Aug 10. 2021

새벽까지 노는 딸에게 몸보신을

일요일에 덕유산을 다녀와서 13시간을 내리 잤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고 걸었더니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랬더니 다음날은 4시간 만에 눈이 떠져버렸다. 책이나 읽자 하고 거실에 나왔더니 초밥이 방에 불이 켜져 있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새벽 3시, 그 시간까지 잠도 안 자고 대체 누구와 통화를 하는 건지. 당장 문을 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서 참았다. 내가 뭐라고 하면 초밥이는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반발심만 생길 테니까.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속에서 화가 뭉개 뭉개 피어나는 건 참을 수 없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가봤자 내가 갈 데라고는 월명산 밖에 더 있나. 새벽 5시 30분에 월명산은 어르신들로 가득 차있었다. 군산의 미래는 어둡지 않아, 부지런한 어르신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부지런한 군산 시민

집에 들어오는 길에 일찍 문을 연 마트를 찾아가 새벽까지 노느라 몸이 축난 초밥이의 몸보신을 위해 수육 재료를 샀다. 수육을 먹은 뒤 초밥이는 자기 방에 들어가서 다시 잠을 자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초인적인 힘이 필요했다.     

새벽까지 노느라 고생하는 딸을 위한 수육

며칠 전, 미역국을 보고 초밥이가 말했다.

“미역이 뭐 이래?”

초밥이 말에 의하면 미역은 자고로 길고 부드러운 맛으로 먹는 건데 이번 건 짧고 뻣뻣하다고 했다. 나는 고작 14년을 산 네가 미역에 대해서 뭘 아냐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말했다. 

    

“이럴 때 할머니라면 ‘맛이 없는 기 몸에 좋은 기다. 네 복을 다 받을 라마 다 무야 된데이’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어. 좋아. 너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서 다음에는 길고 부드러운 미역을 구해보겠어. 너한테 해주는 음식이니까 네 입맛에 맞추는 게 맞겠지.”

초밥이는 그럼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알아둬. 이건 할머니가 보내준 돌미역이라는 걸. 이 순간 엄마는 할머니한테 했던 반찬투정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는 것도.”     

돌미역으로 끓인 미역국

더운데 불 앞에서 끓인 미역국을 딸에게 외면받을 때 어떤 심정인지, 너는 아마 상상도 못 하겠지. 네 것까지 두 그릇째 미역국을 먹는 엄마를 보고 너는 잘도 먹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애를 나은 것도 아닌데 미역국을 후루룩 후루룩 들이키다 헉헉거린 건 사리가 걸린 게 아니라 할머니 생각에 울컥한 거야. 너도 언젠가 네 딸이 밀어낸 음식 앞에서 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나한테 전화를 하면 아마도 비서가 받아서 회의 중이니 두 시간 뒤에 전해주겠다는 말이 돌아올 거야.    

  

나의 독백에 초밥이가 키득거렸다.

“프랑크푸르트는 또 어떻게 알았데.”   

  

엄마의 사랑을 형상화한다면 소고기나 수육, 미역국 이런 게 되지 않을까. 최근에 해준 반찬이 부실하다 싶을 때, 아이가 힘이 빠져 보인다 싶을 때 엄마는 그전에 몇 번 들었다 놓기만 했던 소고기를 큰 맘먹고 산다. 맛있게 잘 끓여보려고 간장병을 든 손에도 힘이 들어간다는 걸 내가 해보고야 알았다. 아, 엄마, 미안해. 

    

전에 말한 것처럼 요리를 못하는 우리 엄마가 가장 자신 있게 하는 음식이 소고깃국이었다. 육개장처럼 빨간 소고기 뭇국. 


“소고깃국 끼릿는데 함 무 봐라.”

그런 날은 나도 밥을 국에 말아서 한 그릇 뚝딱 비워서 오랜만에 엄마한테도 보람 있는 날일 터였다.  


   

도깨비 회의를 하는지 새벽까지 통화하는 딸한테 뭐하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딸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기를 바라서다. 내가 혼내면 그 순간에는 말을 듣겠지만 이후부터 내 앞에서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서려고 할 거다. 정작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나는 모르고, 딸은 고민이 있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 그 안에서 시행착오를 하면서 스스로 느끼기를 바란다. 남이 볼 때 지나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보다 내가 딸을 잘 아니까 남의 시선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초밥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몇 시에 자라고 한 적이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도 초밥이는 깨우지 않아도 혼자 잘 일어났고 학교에 가져갈 가정통신문 같은 걸 신기할 정도로 잘 챙겼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교복을 입기 시작했을 때, 첫 주말에 세탁기를 돌려서 교복을 빨아서 넌 걸 보고 나는 그만 딸에게 존경심이 일고 말았다. 넌 정말 대단한 아이구나.     

 

원래 자아성찰 지능을 높게 타고 태어난 건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간섭하지 않고 아이의 권리를 존중해준 것도 같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믿는다). 나는 부모가 아이를 통제하는 것뿐 아니라 권리도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한테 초밥이가 친구를 데려와도 되냐고 물으면, 나는 “네 집이기도 하니까 데려와도 되겠지(싫지만 어쩔 수 없잖아)”라고 한다. 집이 비었을 때도 초밥이는 내가 허락할 거라는 걸 알지만 전화해서 물어보는 걸 잊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있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늘 새로운 것을 배워나간다. 호기심과 함께 처음에 잘 안 되더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문제 해결 능력,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가까운 곳에서 자기를 믿어주는 부모가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존중받는 경험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그런 마음 근력이 더욱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큰 그림이 있다. 내가 받은 유산 안에서 부족했던 걸 극복하고 싶다. 자유로운 사고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부러웠고, 타인의 시선 속에 갇힌 경직된 내가 답답했다. 나도 확신은 없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그래도 새벽 3시까지 놀다가 오후 내내 좀비처럼 침대에 누워있는 녀석을 보면 화딱지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위기의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이전 05화 네이버기사 때문에친구에게2년 만에연락이 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