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정 Aug 13. 2021

엄마가 부끄럽냐

아침 메뉴로 된장찌개와 마약 계란장을 만들었다. 자고 있는 초밥이를 깨워서 식탁에 앉은 시간은 오전 10시.     

“두부 이거 삼천 원 넘는 거다? 대구에 갔을 때 먹어보니까 맛있더라고. 할머니가 두부는 비싼 걸로 산다니까.”

초밥이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마약 계란장 먹는 방법 알려 줄까? 계란, 양파, 밥을 비빈 다음 그 위에 김을 한 장 탁.”

“엄마, 우리 말하지 말고 먹으면 안돼?”

초밥이는 밥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밥도 입을 오므린 채 오독오독 씹어 먹었다.     

“두부 진짜 맛있네.”

초밥이가 말했지만 나는 밥에 집중했다.

“오늘 반찬 완전 밥도둑이네.”

낚시성 칭찬에도 걸려들지 않았다.   

밥도둑 삼종세트

 


 

휴가 마지막 날, 김재완 작가 강연이 있었다. 강연 일정을 잡은 배지영 작가에게 내 휴가 날찌를 미리 알고 정한 거냐고 물었다. 아무튼 평소라면 일하는 시간이어서 못 가지만 이번에는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초밥이를 주짓수 도장에 처음으로 데려다줬다. 강연이 끝나고 데리러 와야지 생각했다. 초밥이가 이번 주부터는 주짓수 끝나고 킥복싱도 한다는데 대체 얼마나 재미있어서 그러는지 보고 싶기도 했다.

    

초밥이가 다니는 주짓수 도장은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 초밥이는 갈 때는 걸어서 가고 올 때는 택시를 타고 오는데, 초밥이가 오는 저녁 8시 20분이 가까워오면 나는 수업을 하면서도 온통 신경은 문에 가있었다.      

“거기 말고 다른 데 다니면 안 되냐?”

밤에 택시 타는 거 신경 쓰인다고 가까운 곳에 다니라고 하자 초밥이는 관장님(사실은 오빠들)이 좋다며 지금 가는 도장을 고수했다. 내가 택시를 같이 타고 올만한 (오빠 말고) 언니를 찾아보라고 하는 중이었다.   

  

강연을 마치고 주짓수 도장을 찾아갔다.

“혹시 회원 중에 초밥이라고...”

“아예, 안녕하세요. 초밥이 아까 갔는데요?”

관장님으로 보이는 분과 얘기하고 나와서 초밥이한테 전화를 했다.     

“집에 갔어?”

“어.”

“도장에 너 데리러 왔는데 없길래.”

“뭐? 엄마 안에 들어갔어?”

“어.”

“왜? 왜 갔어?”

“너 운동하는 거 보고 싶어서...”

“아, 왜....”     

녀석은 혹시 오빠야들이 나를 봤을까 봐 그러는 것 같았다.

“문 앞에 서서 관장님하고만 말했어. 아무도 못 봤어.”

녀석에게는 엄마보다 오빠들이 더 소중한 걸까. 내가 그렇게 부끄러운 걸까.  

    

5살 초밥에는 발레학원을 다녔다. 분홍색 발레복과 미쉐린 타이어를 연상시키는 초밥이의 몸은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어쩌다 내가 데리러 가면 초밥이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금세 환한 얼굴이 되던 녀석. 과연 그런 시절이 있었나, 굉장히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나간 추억이 되어버렸다.     


“엄마, 이거 봐 봐, 포인, 플렉스”하던 초밥이는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달랐다. 백조들 사이에 낀 뚱뚱 오리 같던 내 새끼. 내 눈에만 예뻐 보이던 그 시절, 가까운 지인조차 초밥이를 보면 귀여운데 귀엽기만 하다고 했다. 지금 초밥이는 살만 빠진 게 아니라 귀여움, 앙증맞음, 엄마에 대한 존경, 사랑 이런 것들도 함께 없어진 게 분명했다. 옛날에는 귀여웠는데 지금은 무섭다. 녀석이 하는 짓을 보면 마치 이별을 준비하는 연인 같다. 한 집에 있어도 우리의 마음은 같은 곳에 있지 않았다. 14살 초밥이에게는 집=엄마고, 마음은 온통 집 밖에 있었다.


서운해하면 지는 거다. 상처 받아서도 안 되고 매달려서도 안 된다. 대인배가 되어 내가 없는 곳으로 달아나려는 딸을 그냥 놓아주어야 한다. 세상에 궁금한 게 천지인 아이가 실컷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나는 그저 이 자리에서 기다려주기만 하면 된다. 엄마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줄 거라는 것만 초밥이가 알면 된다.

     

“주짓수 도장에 가면 평화롭고 정겨워. 엄마가 사람들하고 산에 갈 때랑 비슷한 기분일 거야.”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깊은 연결감을 느끼게 된다. 가족은 아니지만 타인과 일치감을 느끼면 나도 세상의 일부가 된 것 같다. 마음이 느긋해지고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데 초밥이가 말하는 건 그런 감정인 것 같았다. 딸이 내가 없는 다른 곳에서도 배우고 쑥쑥 커가고 있다면, 그럼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전 06화 새벽까지 노는 딸에게 몸보신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