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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15. 2021

올여름 다시 뜨겁게

응답하라 2001

예전 나이트클럽 공기를 마시고 살던 시절, 클럽에 연예인이 오면 동성로 길바닥은 전단지로 도배가 되었다. 웨이터들은 거점 사거리에서 명함을 돌렸다. 안면이 있는 웨이터들은 내가 여자 친구들과 있으면 “오늘 물 끝내주니까 꼭 오라”며 내가 대답을 할 때까지 따라왔지만, 남자와 지나갈 때는 철저하게 모른 척해줬다. 그럴 때 나는 그들에게 프로의식과 우정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건 뭐랄까,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는 소리 없는 박수 같은 거였다.     


그중 한 명과는 9년간 끈끈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내가 군산시민이 된 후에도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00 나이트, 부킹 100%를 책임집니다” 같은 문자를 보내와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답장을 해야 했다.  

   

“수고가 많지? 나 이사 왔어. 그동안 고마웠어.”

“결혼했구나? 응 알았어. 전화번호 지울게.”     

얼마나 아름다운 이별인지. 나는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술 취해서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 그가 찾아준 일, 내 생일에 헹가래를 해서 클럽 직원이냐는 소리를 듣게 한 일, 돈 없는 나를 위해 주말에도 기본으로 해준 일 같은 게  떠올랐다. 처음에 손님이 별로 없던 그가 점점 손님이 많아지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고, 쭈뼛쭈뼛하던 나이트 초심자였던 내가 당당한 죽순이로 거듭날 때까지 내 옆에는 그가 있었다.     


나는 어떤 일에 빠지면 끝을 볼 때까지 하려는 장인 정신(?)이 있었는데, 그 시절 내가 꽂힌 건 클럽이었다. 클럽 마스터에 최대의 걸림돌은 다름 아닌 남자 친구였다. “애인과 클럽에 가는  식당에 도시락을 싸들고 가는 것과 같다”는 싸이 선생님의 말을 가슴에 새긴 나는 착실하게 몰래 다녔다. 마치 주경야독하는 심정이었다.     


한 번은 사귄 지 일주일이 된 남자 친구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남자 친구는 “몸이 안 좋아서 먼저 집에 가도 괜찮을까?”라고 했다. 나는 남자 친구에게 아무 걱정 말고 얼른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그가 자리를 뜨자 나는 눈을 반짝거리며 친구들에게 사인을 보냈고 우리는 클럽으로 빛의 속도로 날아갔다.

     

10시 전에 가야 기본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거의 순간이동 수준으로 클럽에 도착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오늘의 수질은 어떤지 측정하고 있는데 영이 흥분해서 말했다.


“와! 저게 누구야? 전방 45도를 봐봐.”

영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에는 몸이 아프다고 했던 남자 친구가 그새 완쾌되어 환하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보고 있으면 나도 따라 행복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헤어진 지 30분 만에 헤쳐 모여라도 한 것처럼 다시 한 지붕 아래 있게 된 것이었다.    

 

한편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실 남자 친구를 일주일 전, 바로 그 나이트클럽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집중 마스터 기간이었고 지속적인 내방이 필요한 시기라는 걸. 하필 중요한 시기에 여자 친구가 생겨버렸고 할 수없이 주경야독하는 심정으로 몰래 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말이다.     


내가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는데 통로에 남자 친구의 친구 두 명이 기도처럼 서있었다.

“내가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훈이한테 가자고 한 거야.”

그는 “훈이는 안 오려고 했다”는 우정 어린 말도 덧붙지만, 보태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똑같은 입장인 내가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게 양심에 찔려서 그만두라고 했다.     


한참 시간이 흘러 화장실을 갔다 나오니 이번에는 남자 친구가 서있었다.

“다 놀았으면 이제 집에 가자”

그때는 마침 다 놀았을 때라 우리는 놀이터에서 사이좋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처럼 함께 클럽을 나섰다. 그날 어쩐지 이 남자와 오래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예감은 적중했다. 평균 교제기간인 6개월을 넘겼으니.  



   

그때는 몰랐다. 이십 년 후에 극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내 생일에 우리 뭐할까?”

내가 초밥이한테 말했다.

“여행 가는 거랑 대구 가는 거는 안 돼.”

“딱 그 두 가지를 하고 싶은데? 일 년에 한 번도 하고 싶은 걸 못해? 나는 너한테 뭐야? 급식 아줌마야?”

초밥이도 너무했다 싶었는지 어디 들어나 보자는 듯 말했다.

“어디 가고 싶은데?”

“펜션.”

“예쁜 데야?”

“초가집이야.”

“아, 엄마~~~~”

예쁜 펜션이면 사진이라도 건지려고 했던 초밥이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 그냥 해. 글 쓰거나 책 보다가 갑자기 음식 만들어서 먹고, 보미랑 산책 가는 거.”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 그리고 엄마도 옛날에는 번쩍번쩍한데 막 그냥, 어? 빡! 어? 카! 어? 막 그랬거든?”


초밥이는 엄마의 번쩍거린 시절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을 담아 “어, 알았어”라고 했다.     

그 순간 응답이라도 하듯, 나와 이인조라 불리며 클럽의 탁한 공기를 함께 마셨던 친구가 선물 쿠폰을 보내왔다. 2년 만이었다. 지금도 내 앞에서 춤을 추던 친구의 모습이 눈이 선한데 우리 사이가 어쩌다 이리 소원해졌을꼬.      


아직 우리에게는 못다 한 흥이 있었다. 이인조와 카톡 몇 번 주고받은 뒤 나는 내 안에 꺼지지 않은 불씨를 확인했다.

“군산으로 휴가 올래? 올여름 다시 뜨겁게 달궈보자!”      


-이 글은 친구에게 소정의 원고료(케이크 쿠폰)를 받고 클럽 마스터 시절을 솔직하게 회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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