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산에 14년을 살고도 여전히 바다가 낯설다. 분지에서 30년을 살아온 나는 자동차를 타고 십오 분만 가면 바다라는 사실에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꼬박꼬박 놀란다.
‘오늘도 월명산’을 오르고 돌아가는 길에 언제나처럼 점심에 뭘 먹을까를 궁리하다가 고등어나 한 마리 사서 구워 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집 앞 중형마트에서 파는 생선이 제법 싱싱해서 가는 길에 들러야겠다 하고 산 밑을 내려다보는데 수산물센터가 보이는 게 아닌가. 수산 시장을 코 앞에 두고 마트가 다 뭐람.
수산물시장에 들어서니 고등어 한 마리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곧장 기분 따라 덤을 듬뿍 주는 사장님네 가게로 향했고 돈을 미리 꺼냈다. 현금을 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사장님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방게 만원, 세 마리 만원인 고등어와 7,000원인 생태를 샀는데 역시나 사장님은 새우 한 움큼을 넣어줬다. 내가 삼만 원을 내자 “잔돈이 없네. 이거 더 주면 되지?”라고 해서, “네 좋아요”라고 했더니 “그래, 착하다” 하면서 새우를 두 주먹 넣어줬다. 적어도 만원 어치는 되는 새우를 보고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이야기를 희남이 삼촌한테 했더니 작업복을 입은 삼촌을 보고 사장님이 ‘열심히 산다’하면서 꼬록 한 바가지를 서비스로 줬단다)
수산 시장 바로 앞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가서 큰 접시에 굴, 파김치, 봄동을 담았더니 파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봄동에 굴과 파김치를 싸서 먹는데 캬, 굴 향이 기가 막혀서 옆에 사람도 없는데 "끝내준다, 그지?"라고 했다.
“엄마, 아빠 해망동에서 굴 사서 먹고 있어요. 설에 사 가지고 갈게요. 사랑해요.”
부모님에게 약 올리는 건지 헷갈리는 문자를 사진과 함께 보냈다.
굴을 파김치와 싸 먹어 보세요
민현 작가는 책 <조금 이른 은퇴를 했습니다>에서 서울 대신 지방 소도시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을 구하면 그 차액으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물가가 저렴한 외국에 가서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버는 것 없이, 10년 동안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3억이라는 큰돈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면 마련할 수 있다. 직장이 없는데 굳이 비싼 수도권에서 살 이유가 없다.”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 양쪽에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생긴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와 이마트가 있다. 시내인 동성로는 버스 두 코스 거리에 있고 경북 대학교도 그 정도 떨어져 있다. 그렇다, 20대가 놀러 다니기에 최적화된 위치가 바로 우리 집이었다. 내가 20대에 환락의 시간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하자).
대형 마트라는 것이 처음 생겼을 때 진풍경을 우리 아파트 주민만큼 생생하게 목격한 사람들도 없다. 주말이면 대구시민들은 피난이라도 가는 것처럼 쇼핑한 물건을 카트에 산더미처럼 쌓아서 야외 주차장으로 향했고 마트에서 ‘보고 싶다 친구야’ 같은 장면이 수시로 연출되었다. 홈플러스가 생긴 첫 해 대구시민들은 ‘일요일이야, 마트를 가야 해’ 하며 모두 우리 동네로만 와서 집에 가는 길이 백화점 세일 기간 주차장으로 가는 대열에 낀 것 같았다.
삼성에서는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편의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쇼핑 카트를 아파트 내로 가지고 가도록 허용한 일이다. 주민들은 개인 카트처럼 집 앞까지 카트를 끌고 왔다가 다음에 그걸 가지고 장을 보러 갔고, 매일 아침마다 마트 직원이 아파트에 와서 카트를 수거해갔다.
아무튼 나는 70대인 부모님이 계속 그 동네에 살기보다 나와 같이 군산에 살면서 파김치와 굴을 싸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평생 살아온 터전을 떠나는 건 부모님한테 쉽지 않은 일일 거다.
엄마는 초밥이를 봐주기 위해 군산에 사는 동안 수영장을 다녔다. 소도시는 뭘 하기에 돈과 시간의 장벽이 낮다. 군산 월명 수영장의 입장료는 성인 2,750원, 경로와 초등은 1,650원으로 주말에 엄마, 나, 초밥이와 함께 수영장을 가면 입장료 6,050원, 자판기 음료수 1,500원에 우리 세 명은 행복했다. 수영을 마친 후 음료수 하나씩 물고 이제 뭐할까, 했던 그 평범했던 하루가 별처럼 빛나는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수영하고 나면 몸이 편하다며 매일 수영장을 다녔고 친구들을 사귀어서 가끔 점심을 먹기도 했다. 엄마가 수영장에서 사귄 친구가 밥을 사줬다고 했을 때 나는 “엄마도 다음에 사” 하고 건성으로 말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따로 돈을 드렸으면 좋았거라는 후회가 된다. 내가 준 카드는 장 볼 때만 쓰는 거라 엄마가 쓰기 어려워한다는 걸 알면서 나는 남한테 밥은 잘만 사면서 정작 엄마는 챙기지 못했다. 밥값을 내고 싶은데 망설였을 엄마가 떠올라서 가슴이 아팠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데 나는 나중에 후회할 일만 쌓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엄마가 대구로 돌아갔을 때 나는 엄마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수영장을 알아봤고 그렇게 찾은 곳은 하루 입장료가 12,000원이었다. 내가 등록해준다고 했지만 엄마는 싫다고 했고 시에서 운영하는 두류 수영장은 입장료는 저렴하지만 거리가 멀고 당연히 사람이 많았다. 대구로 간 3년 동안 엄마는 수영장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자기한테 돈 쓰는 걸 아까워하는 엄마에게 수영복을 사주고도 일 년, 간신히 설득해서 내가 수영장에 데려다줘서 수영을 하기까지 이 년이 걸렸다. 삼 년 만에 수영의 재미를 안 엄마가 다시 수영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책을 통해 지출이 적으면 조기 은퇴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민현 작가는 은퇴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있었고, 나는 폐업 후 경제적 곤란을 겪은 다음에야 강제 미니멀 라이프를 하게 되었다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그나마 소비를 멈출 수 있어서 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돈을 더 벌게 되더라도 지출을 늘리고 싶지 않다. 그것이 결국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느라 일을 쉬지 못하기보다 원하는 곳에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구례에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한 달에 보름은 지리산으로 가는 등산객들을 태워주고 보름은 나도 산에 갈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 호의적이기만 한' 배낭 큰 아저씨들'이 단골이 되어줄 거는 믿음과 여차하면 구례 고등학교 학생들을 과외라도 하려는 나름 치밀한 차선책도 마련해두었다.
5년 전 처음 지리산 종주를 했을 때, 구례역에서 택시를 타고 성삼제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푸근했는지 모른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이렇게 따뜻한 엄마 품 속 같은 곳도 있구나, 내가 사는 곳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순간이었다.
60대든 40대든 은퇴는 누구에게든 찾아오고 “이른 은퇴”는 어쩌면 시간을 버는 일일지 모르겠다.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능력을 기르는 시간을 벌어서 굴 향처럼 잠깐 왔다 가는 행복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