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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04. 2022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와요

단단한 행복이 있는 섬 '돈없이도' 08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머리카락을 묶다가 문득 3년 전까지 여름에도 머리를 묶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20대부터 단발 디지털펌을 했는데, 비 오는 날조차 차분하게 가라앉은 스타일을 위해 보름마다 미용실에 가서 모발클리닉을 했다. 날마다 머리를 감고 찬바람으로 컬을 잡고 말리느라 30분씩 드라이기를 들고 있었다.     


“오이 고추 안 가져가? 아삭하니 맛있는데.”     


방울토마토, 자두를 사고 가려는데 사장님이 오이 고추를 권했다. 월명산 등산로 입구에서 싱싱하고 저렴한 과일을 파는 사장님의 말에 나는 두말 않고 오이 고추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방울토마토 만원, 자두 만원, 오이 고추 이천 원해서 이만 이천 원을 냈다. 다 좋은데 과일 트럭의 한 가지 단점은 내가 걷는 코스의 정확히 절반 지점에 있다는 것. 이제부터 근력운동이 추가된다.  


그날 점심 밥상은 오이 고추가 평정했다. 아삭한 여름의 맛이 입맛을 사로잡았다. 세 번째 데운 된장찌개와 고등어구이, 상추에다 밥을 먹는데 배는 물론 마음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랍스터나 스테이크 같은 걸 꿈꾸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매일 먹는 된장찌개가 아닐까. 금세 질리고 말 음식보다 찌개를 끓이고 먹을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여유와 온기만 이어진다면 괜찮은 삶이 아닐까. 

 

미용실, 네일숍을 순회하던 시절에는 점심에 된장찌개를 끓여 먹은 기억이 없다. 이런 평범한 반찬에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지 모른다. 장보기부터 음식물쓰레기 처리까지 시간과 마음이 넉넉해야 가능한 일이다. 호박, 두부, 고추, 양파, 버섯만 해도 장바구니가 가득 차는데 계란, 음료수까지 하면 허리가 휘청한다. 식초나 맛술은 큰맘 먹어야 살 수 있고 과일 돼지(초밥)를 위해 수박이나 참외를 사면 그야말로 중량 초과다.




밥을 먹고 연 언니한테 전화했더니 코나 샘이랑 점심 먹으러 간다길래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연: 바로 어디 가야 하는데 밥만 먹고 가면 미안하잖아.

나: 밥만 먹고 가면 더 좋아요.
 

밥 먹고 차마시면 3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는 점심 약속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잠깐 얼굴 보고 각자 업무 볼 수 있으면 나로서는 환영이라는 뜻이었다. 아침에 만들어둔 제육볶음, 상추, 반찬이 있으니 찌개만 다시 끓이면 되겠다.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게 된장찌개를 끓였다. 연 언니가 이사 간 작업실은 우리 집과 가까워 십오 분 만에 벨이 울렸다.


연: 그새 다 차린 거야?

나: 있던 거예요. 얼른 앉아서 먹어요.

연: 된장찌개 진짜 오랜만이다. 집에 오면 너무 지쳐서 음식을 만들 수가 있어야지.


연 언니는 이사하는 한 달 동안(십 년을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찌개를 한 번도 끓이지 못했단다. 예전 작업실 앞에 집밥 같은 음식을 하는 ‘서울 이모네’라는 식당이 있어서 우리가 자주 갔는데, 내가 옆에서 깻잎을 떼주자 코나 샘이 나를 (아파트 이름을 따서) "한라 이모"라고 불렀다.


코나: 바로 음식 차려져 있고 옆에서 깻잎 떼어주는 식당 있었으면 좋겠다. 

그날 사진을 못 찍었는데 이런 평범한 밥상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큼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일도 드물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잘하게 되는 일이 나한테는 요리다. 신이 모두에게 한 가지 재능을 준다면 그게 나한테는 요리가 아닐까.

    

가까운 사람이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죽이나 음식을 그 사람 집 앞에 두었는데, 이제까지 총 일곱 번을 했다. 죽은 조금만 끓이기가 힘든 음식이어서 언제나 한솥이 되었고 지인한테 주고도 나와 초밥이가 두 끼는 먹었다. 


죽은 나눠먹는 음식

요즘 보리차를 끓여 냉장고에서 차게 해서 마시고 있는데 새삼 그 구수한 맛에 놀랐다. 생수가 없던 시절 보리차를 마실 때는 한 번도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물이니까, 항상 있는 물이라고만 생각했다. 가족들이 마실 물이 없을까 봐 여름에도 매일 보리차를 끓인 엄마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야 맛을 알게 된 보리차


고백하자면 나는 엄마가 대구로 내려갔을 때 주전자부터 버렸다. 낡고 찌그러진 주전자가 못나보였고, 엄마는 생수가 있는데 뭐하러 보리차를 끓이나 싶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내 삶을 떠받쳐주는 음식과 사람들을 챙기는 시간이 전보다 늘어났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죽을 끓여 나누고 지인들을 불러 같이 밥을 먹는다. 보리차를 끓이고, 상추를 씻고 오이 고추를 된장에 무치는 시간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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