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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09. 2024

독립출판한 지 삼 년

뭐든 다 괜찮은 기분

<엄마의 원피스>는 글쓰기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독립출판 한 나의 첫 책이다. 사실 출판할 당시에는 내 책이라고 소개하고, 문우들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하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출판사와 계약하고 나온 책이 아니어서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이 달라졌다. 

         

지금 나는 글을 계속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내 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엄마의 원피스>는 책꽂이에 다른 책들과 함께 꽂혀있다. 글을 쓰고 있으면 등 뒤의 책장에 있는 내 책이 내 등을 두들겨 주는 기분이 든다. 출판하고 3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작가가 되어가고, <엄마의 원피스>는 내 책이 되어간 것 같다.    

  

<엄마의 원피스>는 나에게 작가라는 마음을 심어주었다. 혼자 작업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인정보다 그게 더 중요할지 모른다. 몇 개의 출판사가 상품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해도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 시간이 지나 보면 더 귀하게 남을 수 있다.      


<엄마의 원피스>는 요리에 자신 없는 엄마와 친구들의 도시락 반찬을 부러워했던 딸의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다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닐 텐데 요리 못하는 엄마를 둔 자식의 경험을 털어놓고 싶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실망했던 순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엄마 손맛’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외로웠던 기분을 말하고 싶었다.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밤 11시에 학원일을 마치고 내일 소풍 가는 딸을 위해 아파트 앞 마트에서 김밥 재료를 산 일을 쓰다 보니 우리 엄마는 그 시절에 늦게까지 문을 연 마트도 없었는데 어떻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일을 마치고 시장이 파장하기 전에 가려고 버스 안에서 발을 동동 굴렀을 젊은 엄마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사랑한다는 건 상상하는 거다. 그 시절의 엄마를 상상하자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엄마의 원피스>는 엄마와 나를 가깝게 이어준 책이다.     

     

지난 금요일 도서문화공간 <조용한 흥분색>에서 편집강의가 있었다. 강사는 1인 출판사 <책나물>의 김화영 편집장이었다. 김화영 편집장이 출판사를 차리고 처음으로 낸 책은 엄마의 시집 <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꿇는다>였다. 엄마 김정숙 작가는 직지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분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를 듣자 수십 년간 써온 엄마의 시를 딸의 손으로 책을 만들어주었다는 게 참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엄마의 원피스>가 나의 첫 책이어서, 내가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이야기여서 기뻤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나는 특별히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누가 요리를 잘하냐고 물으면 “네, 잘해요!”라고 하는 사람이다. 대체 이 자신감이 어디에서 왔나 찾아보니 엄마한테서 온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뭐든 해보면 다 맛있고, 하다 보니 잘하게 된 것이 나에게 요리인 이유가 30년간 엄마 요리를 먹으면서 맛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덕분이었다. 우리 엄마는 저마다 다른 식재료를 무향무취 공기맛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만든 요리가 그저 맛이 난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예상밖에 소득이라니. 이것이 엄마의 큰 그림이었나 하면서 웃음이 나지 뭔가.  

   

이럴 때 세상은 실제라는 것이 없고, 그렇게 바라보는 나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리솜씨가 없는 엄마를 둬서 불만이었는데, 요리 솜씨가 없는 엄마를 둔 덕분에 내가 한 부족한 요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니. 이런 일이 더 살아보고 싶게 만든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한 실제가 얼마나 많을까 궁금해진다.  

   

엄마라고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뒤늦게야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엄마가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지금도 엄마는 아빠 식사를 챙기고, 자식들이 오면 음식을 준비하고, 뭐라도 만들어서 보내주려고 한다. 맛있다는 말도 듣지 못하면서 말이다. 50년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방에 선 무던하고 순박한 우리 엄마를 이제야 알아보다니. 글을 쓰기 시작하고서야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소중한 것들을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다.     

 

문득 내가 글쓰기를 배운 배지영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북받쳐서 톡을 했다. (배지영 작가는 나와 버스 두 코스 거리에 살고 있는데, 작은 도시에서는 특별한 일은 아니다)   

   

“작가님,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올래요?”


작가님이 서점에 갈 일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한길문고에서 만나서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특별한 반찬은 없었다. 표고버섯밥에다 강된장에 쌈을 준비했다. 아침에 수산시장에 가서 사 온 갑오징어로 볶음을 하고 오이고추를 된장에 무친 게 다다. 힘들 것 하나도 없다. 먹어보면 제각각 다른 맛이 난다. 마음이 내킬 때 생각나는 사람을 집으로 불러서 밥을 해줄 수 있어서, 이런 만만한 마음이 엄마로부터 온 것이라서 다 괜찮은 기분이다.   

버섯밥, 강된장, 쌈채소, 갑오징어볶음
독립출판 한 나의 첫 책 <엄마의 원피스>
산나물 출판사의 첫 책 <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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