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립출판 한 <엄마의 원피스>는 요리에 자신 없는 엄마와 친구들의 도시락 반찬을 부러워했던 딸의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닐 텐데 요리 못하는 엄마를 둔 사람의 경험을 털어놓고 싶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실망했던 순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엄마 손맛’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외로웠던 기분을 말하고 싶었다.
1인 출판사 <책나물>의 김화영 편집장은 강의에서 출판사를 차리고 처음으로 낸 책이 엄마의 시집 <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꿇는다>라고 했다. 엄마 김정숙 작가는 직지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분이기도 했다. 수십 년간 써온 엄마의 시를 딸의 손으로 책을 만들어주었다는 게 참 의미 있었다. 그리고 나도 <엄마의 원피스>가 내가 세상에 내놓은 첫 책이어서 기뻤다.
<엄마의 원피스>를 출판사에 투고를 했지만, 연락이 없었다. 당시에는 실망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감정을 느꼈다. 몇 개의 출판사가 상품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해도 출판한 경험은 글을 쓰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책장에 있는 엄마의 이야기가 담긴 내 책이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도록 내 등을 두들겨 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특별히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누가 요리를 잘하냐고 물으면 “네, 잘해요!”라고 하는 사람이다. 대체 이 자신감이 어디에서 왔나 했더니 엄마한테서 온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뭐든 해보면 다 맛있고, 하다 보니 잘하게 된 것이 나에게 요리인 이유가 30년간 엄마 요리를 먹으면서 맛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덕분이었다. 우리 엄마는 저마다 다른 식재료를 무향무취 공기맛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만든 요리가 그저 맛이 난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이 엄마의 큰 그림이었나 웃음이 났다. 내킬 때마다 집으로 사람을 불러서 밥을 해줄 수 있는 만만한 마음이 엄마로부터 온 것이라니.
세상은 실제라는 것이 없고, 그렇게 바라보는 나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솜씨가 없는 엄마를 둬서 불만이었는데, 요리 솜씨가 없는 엄마를 둔 덕분에 내가 한 부족한 요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불만'이 '덕분에'로 끝나는 일이 더 살아보고 싶게 만든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한 실제가 얼마나 많을까 궁금해진다.
엄마라고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뒤늦게야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엄마가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음을 알았다. 지금도 엄마는 아빠 식사를 챙기고, 자식들이 오면 음식을 준비하고, 뭐라도 만들어서 보내주려고 한다. 맛있다는 말도 듣지 못하면서. 50년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방에 선 무던하고 순박한 우리 엄마를 이제야 알아보다니. 글을 쓰기 시작하고서야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알았다.
엄마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공장일을 마치고 시장이 파장하기 전에 가려고 버스 안에서 발을 동동 굴렀을 젊은 엄마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그 시절의 엄마를 상상하자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엄마를 이제야 만난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마다 내가 글쓰기를 배운 배지영 작가가 새삼 고마워진다. 배지영 작가는 나와 버스 두 코스 거리에 살고 있다.
“작가님,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올래요?”
배지영 작가도 좋다고 했다. 표고버섯밥에다 강된장쌈, 갑오징어볶음과 오이고추된장무침으로 상을 차렸다. 내가 만든 음식이 제각각 다른 맛이 나는 것도 내킬 때 사람을 집으로 불러서 밥을 해줄 수 있는 것도 다 엄마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