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이면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아파트에 들어온 꽈배기 트럭에서 풍기는 냄새다. 트럭은 2층인 우리 집 아래에 자리를 잡아서 배가 고프지 않을 때도 그 냄새를 맡으면 출출해진다. 어느 화요일, 과외 시간이 다 되어가지만, 얼른 사다 먹을까 하고 밖을 내다봤다. 트럭 앞에 과외를 오는 자매가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어머니가 차 문을 연채로 서있었다. 아이들은 빈손으로 엄마한테 와서 뭐라고 말하고는 아파트 현관 출입구로 향했다. 곧 벨소리가 났다.
“어서 와요. 꽈배기 사려고 했어요? 손님 많아요? 나도 밖을 보고 있었거든요.”
“네. 기다려야 된데요.”
수업을 마친 후 나는 학생들과 함께 나갔다. 사장님은 장사를 마쳤는지 기름솥을 닦고 있었다. 저녁 8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사장님 마감하셨어요?”
“아직 남았어요.”
진열대에 꽤 많은 양의 꽈배기와 도넛이 있었다. 내가 꽈배기 4개, 팥도넛 2개가 세트로 오천 원이라고 적힌 가격표를 보고 있으니까, 사장님이 17,000원에 다 가져가라고 했다.
“네, 다 주세요.”
사장님에게 세 봉지에 나눠 담아달라고 해서 자매에게도 주고, 수업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가려는 남학생을 불러서 한 봉지 주었다. 내가 먹을 한 봉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내가 떨이를 한 것처럼 홀가분했다.
요즘 우리 아파트에는 매주 화요일에 장터가 열린다. 장터라고 하지만, 꽈배기와 구두수선 트럭이 전부다. 전에는 순대, 닭강정, 돈가스, 과일과 채소 트럭이 있었고, 손님도 많았다. 아파트 장터에 손님이 줄어든 건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고부터였다.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품목이 식재료까지 확대되면서 직접 장을 보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쓰레기장에 택배박스가 넘쳐났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후에도 손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에는 조금 비싸다 싶어도 사장님이 권하면 물건이 좋겠지, 하고 믿고 샀던 사람들이 온라인구매로 가격에 민감해져서가 아닐까 싶었다. 나도 그랬다. 학원을 폐업한 뒤로 긴축재정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한 번 비싸다고 인식이 되니까 가지 않게 되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장터에 손님이 줄어든 건 소비문화가 달라진 탓도 있을 거다. 40대인 나는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간 기억이 있다. 엄마가 기분이 좋은 날 어묵, 닭발, 부침개 같은 걸 사주면 그렇게 맛있었다. 그 향수 때문에 아파트 장터가 서면 반가운 마음이 생기는지 모른다. 초밥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오면서 장사 준비를 하는 사장님들과 인사를 하고, 이따 사러 올게요, 했었다. 요즘은 유치원에 가는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들 수가 줄었고, 문화도 달라졌다. 길에서 사는 것보다 앱으로 주문하는 게 더 편한 세대다.
물건을 팔랴 입주민과 이야기를 하랴 늘 분주했던 채소트럭 사장님이 잔뜩 늘어놓은 물건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게 나는 참 미안했다. 조용하던 아파트에 장터가 열리면 활기가 생겨서 좋았는데. 집에 있던 사람들이 나와서 어떤 사람은 두부와 호박, 또 다른 사람은 닭강정을 사가는 걸 보면 이 집의 오늘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구나, 저 집은 닭강정에다 맥주를 한 잔 하겠구나 같은 걸 상상할 수 있었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는 모여 살지만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서 옆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내가 13년을 사는 동안 옆집이 세 번 이사를 나가고 들어왔다. 그중 한 집은 마주쳤을 때 내가 “안녕하세요”하면, 아무 말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어쩌다 그랬겠지 했는데, 그 뒤로도 나만 인사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내가 공부방을 하고 있어서 불편하다는 뜻인가. 남편이 없다고 무시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도 모른 척할까 생각했지만, 그러면 내가 삭막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 하는 인사를 이어가던 어느 날 “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아파트는 매년 가을이면 ‘000 한마당’이라는 축제를 한다. 행사가 있는 토요일, 아파트에 방송이 나왔다.
“오늘은 '000 한마당'를 하는 날입니다. 풍성한 먹거리장터와 노래자랑, 행운권 추첨이 준비되어 있으니 입주민 분께서는 참여하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창밖으로 천막과 무대를 설치하고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곧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나는 과외수업을 하는 중이었지만 일부러 베란다문을 열어두었다.
“쌤, 뭐 하는 거예요?”
학생이 물었다.
“우리 아파트 축제하는 거예요”
“그런 것도 해요?”
다른 아파트에 사는 학생이 신기해했다.
“이번 사람 잘한다. 이 사람이 일등 할 것 같다. 에이, 이 정도는 나도 하겠는데, 내년에는 나도 나가봐야지.”
나는 노래자랑 참가자들의 노래를 들으며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입주민 중에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데 예산 낭비라며 아파트 축제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는 말을 옆 라인에 사는 은덕샘에게 들었다. 나도 수업을 하느라 소리만 들었지만,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사회자가 “올라오세요”하기가 무섭게 초밥이를 포함한 아이들이 우르르 무대에 올라가서 개다리춤을 추는데, 원숭이들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오며 가며 얼굴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리키며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매년 아파트 축제가 돌아오면 가을햇살만큼이나 푸근한 그 장면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