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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02. 2024

오늘이라는 스위치를 내리는 기분

“술은 얼마나 가져왔어?”     


유대장은 만난 지 두 시간 만에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요’를 붙였던 것 같기도 한데 체감은 반말이었으니 느낀 대로 써보겠다. 내가 대피소에서 마시려고 가져온 200cc 팩 와인을 보여줬더니 유대장은 그걸 술이라고 가져왔냐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술 모자라면 니가 구해와야 한다.”     


노루목에서 유대장이 주는 술을 받아마시면서 나는 이 첩첩산중에 술을 어디서 사 오라는 건가, 그냥 하는 말이겠지 하고 흘려 넘겼다.     


지리산 중턱에서 소주를 마시기는 처음이었다. 술기운이 퍼지자, 추위와 긴장이 풀렸고 불과 몇 시간 전 시암재에서의 막막했던 기분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2017년은 국립공원 내 음주 행위에 대한 금지 규정이 없었지만, 현재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지희와 내가 못 따라가서 가다 쉬다를 거듭하다 보니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두컴컴해지고서야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벌써 저녁 7시 30분이었다.     


“예약 확인부터 하고 먹을 거 들고 탕비실로 와.”

유대장이 지시했다.     


국립공원 직원에게 가서 호텔로 치면 체크인 같은 걸 하고 ‘방’이 아닌 ‘자리’를 배정받았다. 지리산종주 후기를 올린 블로그에서 사진으로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대피소는 꽤나 낯설었다. 군대 내무반 같은 곳에 한 사람이 누울 만큼 공간이 분할되어 있고, 그곳에 번호와 선반이 하나씩 있었다.     


내가 받은 번호를 찾아 온종일 메고 다닌 배낭을 내려놓았다. 여기가 오늘 하루 내 집이구나. 좁긴 해도 엉덩이를 대보니 따뜻했다. 곧바로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극심한 허기가 몰려와서 대구에서 구입한 산악용 버너, 코펠과 저녁거리를 챙겨서 탕비실로 갔다.     


탕비실에는 하대장, 유대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희와 내가 가자 하대장이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나는 고기가 익는 모습을 빨려들 듯이 바라보다가 익기가 무섭게 집어먹었다. 하지만 하대장이 가져온 삼겹살 반 근과 내가 가져온 목살 반 근은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기름은 버리지 말고 밥 볶을 때 넣자고.”     


유대장의 지시에 하대장은 삼겹살 기름을 빈 그릇에 덜어두었다가 고기를 다 구운 다음 삼겹살 기름에다 햇반을 볶았다.     


“고추장도 한 숟가락 넣자고.”     


하대장이 고추장을 투하했다. 이때부터 종주가 끝날 때까지 유대장은 말만 하고 일은 하대장이 다 하는 상황은 계속되었다. 하대장이 밥을 볶는 동안 유대장은 지리산 빨치산부터 지리산 인근 마을에 사는 문인들 얘기를 해주었다.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에 기억에 남은 게 없어서 지면에 옮길 수 없지만.

     

볶음밥이 입에 들어오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삼겹살 기름, 햇반, 고추장의 조합에는 단숨에 기분 좋게 하는 마법이 숨어있었다. 하루 종일 추위에 떨다가 기름기 흐르는 밥이 들어가자, 피로와 고단함이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소주를 곁들였더니 한없이 느긋한 기분이 되었다. (2017년은 국립공원 내 음주 행위에 대한 금지 규정이 없었지만, 현재는 대피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 및 시설에서의 음주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안주로 볶음밥 한 숟가락씩 먹었다. 특별히 우스운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연신 웃음이 터졌고 그냥 다 좋고 다 고마웠다. 하루치 길을 걸었고 오늘은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오늘은 이대로 먹고 쉬면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뻤다. 내일은 내일치 길을 가면 되고 오늘은 이걸로 끝이라는 것이 나를 홀가분하게 했다.      


이런 가벼운 기분이 낯설기도 했다. 그즈음 나는 밤이면 내일 할 일을 떠올리고 걱정하느라 잠을 뒤척이는 날이 많았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닌데 피곤한 아침을 맞이하고 꾸역꾸역 출근하고, 또다시 미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지리산에서는 오늘이라는 스위치를 탁, 하고 내리는 것 같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뒷정리를 하는데 유대장이 말했다.     


“내일 형제봉에서 일출을 볼 거니까 4시에 배낭 챙겨서 나와.”     


새벽 4시에 일출을 본다고? 마흔 생을 사는 동안 산에서 일출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리산까지 왔으니 이번 기회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누울 때는 새벽 4시에 어떻게 일어나나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밤새 코 고는 소리와 말소리, 답답한 공기 때문에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잠은 거의 자지 못했다. 매점에서 한 장에 삼천 원을 주고 빌린 모포 두 장은 한기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찬 기운이 훅하고 밀려와서 몸서리를 쳤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짐을 챙겨서 나가는 사람들 소리에 나도 몸을 일으켰다. 알람이 따로 필요 없었다.    

 

아직도 밤이 분명한 시간에 밖을 나갔다. 등산화를 우겨 신고 옷도 제대로 여미지 못했는데 따귀를 후려갈기는 것 같은 칼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탕비실로 들어서니 하대장이 누룽지를 끓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하마터면 ‘엄마’라고 부를 뻔했다. 엄마 아니 하대장이 끓여준 누룽지로 속을 채우고 산행 준비를 했다.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고, 찬바람이 새어들지 않게 버프, 모자, 장갑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아이젠도 찼다. 우리 네 명은 서로의 장비를 봐주고 헤드랜턴을 켜고 암흑 속을 걸어 들어갔다.     


앞도 뒤도 캄캄한 그런 완벽한 어둠에 갇힌 건 처음이었다. 갱도 속을 걷는 기분이 이런 걸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파리한 기운이 주위를 에워싸더니 파랑, 주황, 빨강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색이 까만 바탕을 물들였다. 여명이었다. 산속에서 맞이한 여명은 아득히 먼 것 같기도 하고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시각각 오묘한 색으로 변하는 물결 속을 걸어가자 나도 그들의 일부로 물들어 가는 것 같았다.    

 

형제봉에 도착해서 일출을 기다렸다. 어둠과 추위는 해가 뜨기 직전에 극심해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깊은 어둠을 속에서 처음 태어나는 것처럼 해가 떠오르자 순식간에 추위와 어둠은 자취를 감추고 주위는 따뜻하고 환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굽이굽이 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비춰주는 햇살에서 자애로움을 느꼈다.     


한편, 너무 커다란 힘 앞에서 나는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몸으로 전해왔다. 내게 일어난 일 중에 나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이 결과에 이르게 할 능력이 내게 없었던 게 아닐까. 자연이 만들어 낸 우연이 나라는 존재를 생겨나게 하고 거의 모든 일을 한 게 아닐까. 내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나의 책임이라는 건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형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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