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구해오라는 유대장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술이 떨어지자 유대장이 잘 보라고 하더니 시에라 컵(등산용 경량컵)을 들고 일어섰다. 라면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보다가 한 남자에게 가서 뭐라고 하면서 씨에라 컵을 내밀었다. 세상에, 술동냥을 하는 것이었다.
유대장은 소주가 넘칠 만큼 담긴 씨에라컵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다음은 네 차례다.”
“뭐예요. 술동냥 한 거예요?”
우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술을 나눠 마셨다.
술은 금세 떨어졌고 누군가 나서야 할 타이밍이 되었다. 유대장은 ‘동냥용’으로 제작했나 싶은 자신의 커다란 씨에라 컵을 내 쪽으로 놓아주었다.
“갔다 와.”
내가 벌떡 일어섰다.
“나는 여기 아무 데나 끼어서 술 먹을 수 있거든요? 지희야 뭐 해. 일어나, 가자.”
내가 가려고 하자 유대장은 나를 말렸고, 숙명처럼 동냥 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다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술을 줄 만한 사람이 없나 기웃거리다가 컵을 내밀고 퇴짜 맞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그걸 보는 우리 세 명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뒤에도 술만 떨어졌다 하면 나는 “지희야, 가자”라며 일어섰고, 유대장은 씨에라컵을 들었다.
다음날 유대장은 자기가 삼일 동안 마시려고 가져온 술을 우리가 다 먹어버렸다며 아침부터 투덜거렸다. 그러더니 맞은편에서 오는 남자 산객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입니까?"
상대가 하산 중이라고 하면 작업에 착수했다. 등산코스와 돌아갈 차편을 물어보고, 조망이 좋은 장소와 버스나 기차를 타는 방법을 필요 이상으로 상세히 알려주는 것이었다. 상대가 택시를 탄다고 하면 택시 기사 전화번호를, 기차나 버스를 탄다고 하면 제일 빠른 방법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했다.
"술은 좀 남았습니까?"
바로 술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걸 알고 난 후 나는 창피해서 유대장이 작업을 시작했다 하면 일행이 아닌 것처럼 모른 척했다. 한 번은 내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한 아저씨가 유대장과 얘기를 나누다가 소주 두 병을 내놓는 게 아닌가? 배낭에서 육포, 라면 같은 것도 마구 꺼내놓으며 자기는 이제 필요 없다며 가지라고 했다. 산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유 대장은 "봤지?" 하면서 기세등등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이틀째 밤을 보내고 천왕봉을 향해 나섰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세찬 눈보라가 몰아쳤고, 그 속으로 한 발 한 발 발을 옮기는데 불쑥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이제껏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정작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살았다. 그런 나 자신이 불쌍하고 미안해서 눈물이 솟구쳤다. 무엇 하나도 같은 것 없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연 속에서 이틀을 보내서일까. 나의 실상을 보게 된 곳이 왜 하필 지리산이었는지 왜 하필 천왕봉으로 가는 길이었는지 모르겠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 그때를 돌이켜보면 어떤 순리 같은 것이 몸으로 전해졌다고 믿는다.
천왕봉에서 우리 네 명은 둘씩 헤어졌다. 화대종주를 하는 유대장과 하대장은 대원사로, 성중종주를 하는 지희와 나는 중산리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천왕봉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하대장, 유대장과 인사를 했다. 중산리로 가는 계단을 내려서는데 유대장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거기 그대로 서봐. 서운해서 안 되겠다. 사진이라도 한 번 더 찍자.”
고개를 들고 유대장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는데 목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이틀 전만 해도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뭐가 이리도 섭섭한지 내 마음을 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산리로 가는 기나긴 돌계단을 무릎이 아파서 절뚝거리며 내려오는데 뿌듯함과 벅찬 감정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지리산 종주를 시작할 때 아득하고 막막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 계획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함께 갈 사람들이 생길 줄도 몰랐고, 헤어지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줄도 몰랐다. 현실에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웃고 떠들고 있다는 게 기적 같았다.
현실의 상황이 바뀌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상관없이 나는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만큼 이국적이었던 세석평전, 연하선경을 걷고, 극심한 허기에 라면이 끓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초코파이 두 개를 겹쳐 먹던 일처럼, 생생하게 보고 느낀 시간들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그 생생한 경험이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중산리탐방안내소에 도착해서도 버스 정류장까지 1km 넘는 도로를 걸어가야 했다. 터벅터벅 내려가고 있는데 뒤처져서 오고 있던 지희가 승용차를 얻어 타고 와서 나한테 타라고 했다. 나는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잠시 주저했지만, 다리가 마비될 지경이라 염치 불고하고 차에 탔다. 차가 움직이는데 내 다리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문명의 혜택이 이토록 클 줄이야. 마음씨 좋은 아저씨한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진주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시간 여유가 있길래 우리는 식당부터 가기로 했다. 대피소에서 모포 대여를 현금으로 해야 했는데, 현금이 없는 지희 대신에 내가 돈을 냈다. 그랬더니 지희가 이번에는 자기가 막걸리를 사겠다고 우겼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파전과 도토리묵, 막걸리가 차려진 상을 보는 데 황공할 지경이었다. 사흘 만에 호사를 누리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잔에 막걸리를 넘치도록 채우고 지희와 종주를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했다. 파전과 막걸리를 사진을 찍어서 유대장에게 보냈더니 잠시 후 유대장도 하대장과 대원사로 내려와서 하산주를 마시고 있다며 전화가 왔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지희는 서울로, 나는 군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유대장은 광주로, 하대장은 수원으로 간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 네 명은 시작할 때처럼 각자 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