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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05. 2024

왜 항상 새벽에 산에 가?

자고 있는데 벨 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인 정신을 깨려고 애를 쓰는 중에도 벨 소리는 계속 울려댔다. 휴대폰을 찾았지만,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현관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벨을 누르는 거지? 더듬더듬 거실로 나가 보니 인터폰 화면에 지리산 아빠의 얼굴이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시간에 우리 집에 왜 오셨어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 맞다, 악!     


“준비해서 나와.”     

지리산 아빠의 목소리에 체념이 묻어있었다.  

   

그때 시간은 새벽 3시 27분, 사서고생팀과 늘 만나는 예술의 전당 주차장에서 모이기로 한 시간은 3시. 휴대폰을 열어보니 부재중 전화가 일곱 통이나 와있었다. 무음으로 설정한 바람에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나를 데리러(잡으러) 집으로 온 거였다. 이번에는 진짜 대형 사고다. 코로나 때문에 산악회 운영이 중단되자 희남삼촌, 지리산아빠, 유선수, 나는 사서고생팀을 결성해서 함께 산을 다닌 지 2년. 5분 이하 지각은 몇 차례 있었고, 딱 한 번 약속 시간까지 자고 있다가 전화받고 일어난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전화도 받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쓰고 보니 상습범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양치만 하고 튀어 나갔다. 아… 염치가 없다는 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차에 타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해요”라고 하고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그나저나 알람은 왜 안 울린 거지? 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헉, 일요일이 아니라 월요일 2시로 맞춰 있는 게 아닌가.        

  

나: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 거야?

나: 알람을 잘못 맞출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나: 자기 전에 확인했어야지! 인생 그렇게 허술하게 살 거야?      


내가 취조관이자 피의자가 되어 마음속으로 심문을 벌이고 있을 때, 운전을 하던 지리산 아빠가 말했다.          

“어? 주유구가 열려있는데?”

“무슨 주유구요?”          

주유구가 열려있다고 하는 차는 바로 내 차. 우리는 내 차로 이동 중이었다. 지리산 아빠는 확인해 봐야겠다며 졸음 쉼터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주유구 뚜껑이 없어!”     


지리산 아빠가 소리쳤다.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잊어버리는 물건도 다채롭기도 하지, 주유구 뚜껑이라니. 어떻게 하면 주유구 뚜껑을 다 잃어버릴 수가 있지? 기름을 넣고 뚜껑을 닫지 않았다는 건가?    

  

지리산 아빠는 군산으로 돌아가면 주유소부터 가보자고 하고 다시 출발했다. 사실 심각하게 볼까 봐 말은 안 했는데,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 주유소에 카드를 찾으러 간 일이 있었다. 주유소에서 마지막으로 사용하고 카드를 잃어버려서다. 직원한테 습득한 카드가 있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고무줄로 묶어놓은 주먹만 한 크기의 카드 세 뭉치를 주며 찾아보라고 했다. 어떤 카드가 내 거라고 해도 그냥 가져가라고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 정신없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이 되는 건 또 뭔지. 하지만 내 카드는 없었다. 결국 카드사에 전화해서 재발급신청을 했다. 그래 놓고 이번에는 주유구 뚜껑을 찾으러 가면 직원이 뭐라고 할까? 직원이 나를 기억할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너무 일찍 산에 간다는 것. 약속 시간이 아침 7시나 8시만 되어도 (주유구 뚜껑은 빼고) 자다가 잡혀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실제로 당해보면 꿈속에서 끌려가는 기분이다.           


“왜 항상 새벽에 산에 가?”          


새벽어둠 속에 산에 오르는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지인이 이런 댓글을 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잠까지 못 자면 고생스럽지 않냐는 뜻일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일어나려고 하면 산이고 뭐고 잠이나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최근에 가입한 마라토너 산악회는 전주에서 새벽 4시나 5시에 집결해서 군산에서 한 시간 전에 나가야 하니 2시나 3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박산행일 때는 토요일 밤 10시에 출발하기도 한다. 모이는 시간이 일정치 않은 이유는 산행지까지의 이동 거리와 산행 시간 때문인데, 그래도 5시보다 늦는 경우는 없다.          


산행지까지 이동시간이 두 시간이라면 4시에 출발해야 6시에 등산을 시작할 수 있다. 8시간에서 10시간 등산을 하면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하산, 1시간 뒤풀이, 다시 2시간 이동하면 오후 5시에서 7시쯤 전주에 도착한다. 일요일 저녁까지 모든 일정이 끝나야 월요일이 무리가 없기 때문에 포기하는 거다. 밤새 넷플릭스를 보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의 여유를 등산과 맞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토요일 하고도 밤 11시다. 내일은 두 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냥 자지 말까.     

참, 주유구 뚜껑은 주유소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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