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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04. 2024

희남 삼촌의 특별 관리

지리산 종주를 다녀온 후 나는 일 년간 주말마다 혼자 산을 다니다가 산악회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산을 좋아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희남삼촌도 그들 중 하나다. 추석연휴에 삼촌이 내변산을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앞서 걷는 희남 삼촌은 잠깐 보이는가 싶다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삼촌의 주황색 모자가 부표 같았다. 키 높이만큼 자라 있는 산죽과 잡풀 위에서 삼촌의 모자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부표처럼 잡힐 듯하다가도 이내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어디쯤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나로서는 부표 하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시험이라도 하듯 삼촌은 알바(길 잘못 들기)를 두 번이나 했다. 실컷 올라간 길을 아닌 것 같다고 내려오더니 “아까 거기가 맞는 가벼”하고 다시 올라갔다.     


“장거리 산행을 꾸준히 하면 몸이 지방을 태워서 에너지원으로 만들어.”     


삼촌이 한 말이다.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면 체지방이 감소되어 슬림한 몸매를 가질 수 있고, 먹지 않아도 힘이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효율적인 몸의 시스템을 가지려면 시간당 2.5킬로미터이상의 속도, 20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꾸준히 산행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40대 중반이 되면서 예전보다 적게 먹는데도 살이 찌고, 먹는 게 조금만 부실해도 힘이 빠지는 걸 경험하는 중이었다.      


“저도 훈련할래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삼촌은 특수공작대원 훈련으로 들은 게 틀림없다. 길도 없는 데를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니 말이다. 재백이 고개에 도착해서야 제대로 된 탐방로로 들어섰다. 산을 오른 지 6시간 만이었다.


“말소리 들리지?”     

삼촌은 탐방로 로프를 넘으면서 말했다. 민가로 침투 명령을 하는 빨치산 대장 같았다.      

“여기서부터 관음봉으로 올라 쳐서 세봉으로 넘어가야 하는 데 힘 좀 써야 할 거여.     


지금까지는 뭐 차라도 타고 왔어요?라고 받아치고 싶었지만 내게는 말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까지 관음봉은 세 번 가봤는데, 갈 때마다 힘들었다.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가는 데 비견할 만한 인내심이 필요한 곳이다. 정상에 앉아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하얗게 질려서 뭐라고 욕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여기를 오나 봐라 하고 중얼거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재백이 고개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한 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둘 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내가 간 날은 추석 다음 날로 이런 연휴에는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오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왕년에 왔던 가락을 믿고 올라오는 거겠지만 모처럼의 등산이 야속한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린 체력을 절감하는 장이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관음봉 이리 가요?”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우리한테 물었다. 희남 삼촌이 그렇다고 하자 아내분이 말했다.

“그냥 내려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은 가봐야지.”

부부가 정상을 갈지 말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우리는 천천히 오라고 하고 관음봉으로 향했다.      

나는 삼촌의 특별 관리를 받으며 관음봉까지 겨우 올라왔다. 그 특별 관리가 뭐냐 하면,     

“준정 씨 대단혀, 나는 그 나이 때는 봉우리 하나만 오르고 산 밑에서 막걸리만 마셨당게.”     

이렇게 말하며 뒤에서 소 몰듯이 모는 거다.     


“산을 타다 보면 사는 거랑 똑같다는 생각을 혀. 진짜 힘든 순간에 살려면 이 고비를 어떻게든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이런 이야기도 곁들인다. 뻔한 이야기일까? 몸에 한계가 와서 딱 포기하고 싶을 때 이런 소리를 들으면 하나도 뻔하지 않다. 이 분을 이런 고비를 넘어서 여기까지 왔구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오늘 나는 초반 가파른 길을 오를 때는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노트북 앞에 오래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게 힘들어서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다. 능선에 올라서 이제 오르막은 없겠지 하고 안심했다가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고 급기야 길까지 잃었을 때는 글을 쓰면서 계속 새로운 문제에 맞닥뜨리는 상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막이 나올 때마다 피하려고 하는 것이 현재의 내 모습 같았다. 산을 온 이상 오르막을 피할 수 없는데도 나는 편하려고만 하는구나. 길을 탓하는 나가 지금의 내 모습이고 그동안 내가 힘들었던 이유라는 생각. 내가 넘어야 하는 건 산이 아니라 그런 나라는 것. 눈앞에 있는 산이 바뀔 리 없으니 나를 바꿀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관음봉 정상에 올라서 벤치에 몸을 던지고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있으니 재백이 고개에서 봤던 청바지부부가 올라왔다. 앞서 올라오는 남편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지만 뒤따라 올라오는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 길 뭔가 잘못된 것 같죠?”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후회 섞인 얼굴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이렇게 낯선 사람과 단번에 한마음이 돼보기는 처음이었다.      


“여태까지 갔던 산 중에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벤치에 몸을 던지고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사과를 부부에게 주면서 어디서부터 왔냐고 물어보니 부부는 내소사 주차장에서부터 올라왔다고 했다. 

     

“다리에 쥐가 나서 내려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내분이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밑창이 미끄러운 운동화에 스틱도 없이 어떻게 가나 나도 걱정이 되었다. 잠깐 움직이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남편한테 손을 잡아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삼촌은 배낭에서 근육이완제를 하나 꺼내주었다.      


“이십 분 뒤부터 효과가 나타나니께 먹고 조금 쉬다가 내려와요.”     

고맙다고 하는 부부에게 삼촌과 나는 인사를 하고 내변산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갔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삼촌이 가게에 가서 캔맥주를 사 왔다.      


“시골에는 맥주가 잘 안 팔리잖여. 냉장고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들 안 해서 진짜 시원혀.”     


삼촌의 말을 듣고도 나는 별생각 없이 맥주를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가 깜짝 놀라서 맥주를 다시 쳐다봤다. 맥주는 머리가 띵할 정도로 짜릿했다. 내가 알고 있는 카스가 맞나.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시골 가게 냉장고에서 장시 숙성된 맥주맛을 음미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맥주를 홀짝거리다 보니 이 정도 고생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지만.


“청바지 부부는 잘 내려왔을까? 번호를 알면 전화라도 걸고 싶네.”     

삼촌이 하는 말을 들으며 두 번째 맥주캔을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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