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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12. 2024

이제 어디든 가겠구나

몇 달 전부터 희남 삼촌은 산악 마라토너들이 있는 산악회를 가기 시작했다. 나와 지리산 아빠, 유선수는 잘됐다며 그동안 가고 싶었지만, 삼촌이라면 운동량 안 나온다고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할 코스를 우리끼리 다녔다. 그래도 삼촌은 살벌한 산악회에서 외로웠는지 산행을 마치면 우리에게 연락해서 뒤풀이는 함께했다. 그렇게 와서 나는 가고 싶다고 한 적도 없는데 내가 가면 바로 폭탄 되니까 평균 시속 3.5킬로미터 될 때까지 훈련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던 중 지리산 아빠가 근족막염이 도져서 당분간 등산을 쉬어야 하고, 유선수는 냉동고 설치 사업을 하는데 여름이 다가오면서 주문이 늘어서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주 호남정맥은 중간에 빠지는 코스도 있는디 어뗘? 한번 가볼껴?”          

혼자 남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삼촌을 따라갔다.      


마라토너 산악회는 군산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전주에서 집결한다. 삼촌이 늦으면 안 된다고 서두르는 통에 3시 30분에 출발했더니 4시 20분에 전주 종합 경기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집결 시간은 5시. 버스도 없고, 바람조차 잠든 고요한 그곳에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래야 하는데요?”

“아침은 먹었어?”

“밤인데 무슨 아침을 먹어요?”

“난 먹었는디.”          


한편 산악 마라토너들은 나 덕분에 젊은 피가 수혈됐다며 환영해마지 않았다. 50대가 젊은 축에 속하고 60대 회원이 많은 산악회에서 45세인 나는 유소년 축구단 같은 존재였다. 젊다는 건 준거집단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걸 실감했다.

          

“다음 주(백두대간)는 오늘(호남정맥)보다 힘들지 않으니까 꼭 와요.”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했다.        

   

마라토너 산악회는 장거리 산행만 하다 보니 신입회원이 드물었다. 나는 전학생이 드문 산골학교에 전학 온 기분이었다. 희남 삼촌이 잔뜩 겁을 주었지만, 막상 가보니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나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약삭빠르지 않은 순진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딱 그런 분들이었다. 

         

“전부 나한테 전화 와서 말이여. 준정이 백두대간에 오냐고 물어보고 난리여.”


희남 삼촌이 말했다. 호남정맥을 다녀오고 바로 다음 주가 백두대간 산행이었는데, 회원 몇 명이 삼촌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주에 하는 백두대간도 갔다. 거리 25킬로미터, 산행 시간 10시간 등산을 하고 나서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40년 가까이 등산을 해온 임선배가 “이제 어디든 가겠구나”라는 댓글을 달았다. 임선배는 이전에 내가 12킬로미터, 5~6시간 정도의 산행을 해온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댓글을 단 거였다.   

  

‘어디든 갈 수 있다’      

생각할수록 근사한 말이었다.  


마라토너 산악회에 간 두 번의 등산에서 양쪽 옆구리에 찰과상이 생겼다. 피부가 바지 벨트에 쓸려서 생긴 상처였다. 옷은 물론 배낭까지 땀에 푹 절어서 몸에서는 마구간 냄새가 났다. 이 냄새나는 몸은 어디에 갖다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것 같았다. 어이없는 건 그런 상태가 되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는 거다. 홀가분하다는 표현으로 부족하고 뭐랄까 될 대로 돼라는 심정이랄까. 초반에 몸을 사리다가 실컷 두들겨 맞고 나면 겁이 사라지는 것처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든지 가보자 싶었다.     


처음에는 왜 희남 삼촌을 따라와서 이 고생을 하는 걸까 하고 후회를 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생각을 하지 않고 걷는 시간이 이어지자 내 안이 텅 비어 버리는 것 같았다.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는 공백이 낯설지만 어디든지 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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