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찢어지게 힘들기는 처음이었다. 딱 죽겠다 싶을 때 바지를 보니 무릎 부분이 진짜 찢어져 있는 게 아닌가. 옳다구나 하고 내가 사진을 찍으니까 지리산 아빠가 "또 핑곗거리 잡았네!"라고 했다.
고산 휴양림 환종주 중이었다. 희남 삼촌이 정글 칼을 챙겨야겠다고 할 때부터 예감이 안 좋았다. 정글 칼은 잡목을 끊기 위해서고, 잡목이 많다는 건 탐방로가 아닌 길을 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부터는 길이 희미해서 바짝 따라붙어야 혀.”
희남 삼촌의 말에 뒤에서 내가 “그러게, 길도 없는 데를 왜 가요!”라고 했다.
“말하느라 힘 빼지 말고 발이나 빨리 놀려.”
지리산 아빠까지 잔소리다.
“무슨 시어머니가 두 명이에요?”
볼멘소리하고 머리 위를 쳐다보니 새 둥지가 있었다. 작은 나뭇가지로 촘촘하게 지은 둥지를 보자 일순 마음이 평온해졌다. 둥지에 사용된 나뭇가지 색이 어두운 걸로 봐서 지은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지금은 빈 둥지이지만 예전에는 어미 새가 알을 품고 새끼를 키웠겠지, 어미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장면을 상상하자 더위가 한풀 꺾이는 것 같았다.
다시 현실, 계속 둥지를 쳐다보고 있다가는 뭘 꾸물거리고 있냐는 소리가 날아들 것 같아서 얼른 자리를 떴다.
덥고 습해서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선두에서 희남 삼촌이 정글 칼로 길을 만들면서 가고 그 뒤로 지리산 아빠는 “가시나무 조심해”라며 가지를 부러뜨리며 갔다. 이런 날 어쩌자고 나는 반팔티를 입고 와서 잡목에 팔이 꼼꼼하게 긁혔다. 하지만 나보다 고생하는 분도 있는데 힘들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속으로만 윽, 악,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한참을 길이 없는 데를 가다가 극적으로 임도가 나타났다. 와락 반가운 마음에 임도에 올라서 내처 달렸다. 뒤에서 희남 삼촌이 “거기 아니여, 산으로 올라가야혀” 할 것만 같아서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결승점을 향해 가듯 전속력으로. 얼마쯤 가다보니 드디어 결승점(주차장)이 나왔다.
차로 가서 등산화를 슬리퍼로 갈아신고 여벌옷이 든 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외진 곳이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세면대에서 얼굴과 목을 씻고 있는데 밖에서 희남 삼촌이 소리쳤다.
“건물 뒤에 수도꼭지가 있어! 조금 있다가 와. 우리도 다 씻었응게.”
희남 삼촌과 지리산 아빠가 씻고 나오는 걸 보고 나도 건물 뒤로 갔다. 과연 수도꼭지와 호수가 있었다. 호수를 높이 쳐들어서 땀으로 젖은 옷 위로 물을 뿌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이 타고 흐르는데 시원하기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몸에 있는 소금기를 말끔하게 걷어내고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반바지에 뽀송뽀송한 면티를 입고 수건을 목에 걸고 슬리퍼를 끌며 가는데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군산으로 출발하면서 언제나처럼 가게부터 들렸다. 큰 농협마트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 옆에 있은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각자 먹고 싶은 걸 골랐다. 나는 ‘시골가게 숙성맥주’와 오징어땅콩, 희남삼촌은 맥주와 짱구, 지리산아빠는 운전을 해야 해서 콜라를 골랐다.
차의 에어컨을 최대치로 켜고 맥주캔을 탁 까서 꿀떡꿀떡 마셨다. “아, 시원하다”라는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만 있어봐, 나 금방까지 더워 죽겠다고 했는데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분명히 더웠는데 지금은 시원하고 뭐가 이런 건지 모르겠다.
“좀 짧았지? 동막 마을(더 먼 길)로 내려갔어야 했는디 말이여.”
“무슨 소리예요. 삼촌 진짜 증오할 뻔했다고요!”
희남 삼촌한테 소리를 빽 지르고 나서 산에서 찍은 사진을 봤다. 뭔가 치열했던 시간이 그리운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내 고개를 흔들며 아냐, 지금이 좋아, 지금이 좋다구, 하고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