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삼 년째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이 있다. 그 모임 전에는 약 십 년간 세 개의 독서모임을 거쳐왔다. 이번에 독서모임을 한 개 더 가입한 이유는 새로운 분위기를 경험해보고 싶어서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는 기존에 있던 독서모임에서 일어난 어떤 일 때문이었다.
앞으로 원래 하고 있던 독서모임은 ‘늘클럽’, 새로 가입한 독서모임은 ‘강클럽’이라고 부르겠다. 이름은 모임을 하는 두 개의 도서관명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늘클럽의 한 회원은 책을 읽지 않고 올 때가 많았다. 그리고 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했는데, 한번 시작하면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다른 회원들은 중간에 끊을 수도 없고 다 들어줄 수도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고는 했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내 안에는 토론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쌓여갔고, 그 이유가 그 회원 때문이라는 생각이 커져갔다. 그러던 중 하루는 모임을 마칠 즈음에 나는 총대를 멘다는 각오로 말을 꺼냈다.
“가능하면 책을 읽어 오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 좋겠어요. 책을 벗어나서 이야기가 확장될 수 있지만, 내용을 모르면 흐름이 깨지고 사담에 그치는 것 같아요.”
내가 말을 하고 2주쯤 지났을 때, 단톡방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요즘 제가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고, 유튜브와 서평만 듣고 모임에 참석했어요.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 준 모임이라 계속 있고 싶지만,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안 되겠어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분이 탈퇴까지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 준 모임”이라는 문장에 멈칫했고, 그제야 책을 읽지 못해도 참석했던 그분의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바쁜 중에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그분에게는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그분에게는 무언가를 견디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분은 지각과 결석이 거의 없이 참석해 온 가장 성실한 회원이었다.
나는 이틀을 고민하다 사과의 글을 올렸다.
“선생님이 괜찮으시다면 단톡방 나가지 마시고, 책을 읽지 않으셔도 시간 되실 때 모임에 나오시면 좋겠어요. 제가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말한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러자 다른 회원들이 이미 그 회원은 단톡방을 나갔고, 그분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니 마음 쓰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확인해 보니 단톡방에 그분이 없었다. 나는 개인톡으로 그분에게 사과를 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
새로 가입한 강클럽은 모임장이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모임장은 말을 하지 않은 회원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발언권을 골고루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한 회원이 조금 길게 이야기를 한다 싶으면 의견을 정리를 해주며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가도록 했다. 덕분에 13명이라는, 토론하기에는 많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각자 두 번 이상의 발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루 전날 생각 나눔 질문을 보내주는 것도 토론이 책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에서 줄 친 부분을 다시 읽으며 내 생각을 굴릴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모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걸 느꼈다. 강클럽의 형식은 탈퇴한 회원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책을 읽어오자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기보다 사회자가 진행하는 방식이나 모임 전에 질문을 공유하는 걸 제안했다면 어땠을까?’
탈퇴한 회원은 공개적으로 말한 방식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한 사람의 탓으로만 돌렸던 나의 속마음도 알게 되었다.
늘클럽은 회원이 6명이라 발언 기회는 충분하다. 하지만 사회자가 없어서 한 사람이 말을 길게 할 때 끊지 못하고, 주제에서 벗어나도 중재하기 어려웠다. 나부터가 말을 많이 할 때가 많았다.
내가 총대를 메는 각오를 하기 전에 탈퇴한 회원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늘클럽의 회원들에게 책을 추천한 회원이 진행을 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다시 시작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