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회원들의 의견을 평가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다 전에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잖아. 그냥 듣자, 하다가 그래도 저건 아닌데 하는 거다. 판단하고 그만 두기를 반복하다 보면, 회원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내 마음과 다투는 것 같다.
사실 독서모임이 아니라면 나의 가치관과 관심사가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가족과 친구끼리는 대화는 해도 의견은 나누기 어렵기 때문이다. 친구가 나와 대치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싶으면 그와 관련된 화제는 미리 피한다. 특히 정치나 자녀교육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그렇다.
최근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쩌다 자녀의 성적으로 흐르고 말았다. 내가 딸이 진학한 고등학교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었다.
나: 학교 내신은 4등급인데 모의고사는 3등급이 나와. 전국 수준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교이긴 한데 말이야...
친구: 우리 딸은 상위 1퍼센트였어. 의대도 갈 수 있었는데, 자기가 싫다고 해서 공대 간 거야.
나: 우리는 자식 공부하는 거 좋아하지 말자. 그건 자식한테 부담을 주는 거야. 우리도 경험해 봤잖아.
친구: 나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은 거야.
거기까지 말하고 대화는 진전되지 못했다. 둘 다 마음이 상할까 봐 화제를 돌렸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회적 서열을 아이도 아는데, 부모까지 보태면 어떤 순간 자기가 줄에서 밀려났다고 느낄 때 찾아올 곳이 없게 되고, 그건 아이를 외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와서 나는 이 대화를 곱씹어본 후에야 알아챘다. 내가 ‘상위 1퍼센트’라는 말에 발끈했다는 걸. 나도 아이 성적에 예민하지 않았다면 친구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었을 텐데, 말과 행동이 달랐기 때문에 친구와 이 주제로 대화를 더 이어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한국이라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사는 한 타인의 인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내가 불편했던 걸 보면 그것에 메여있다는 뜻이였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 아이들 성적이나 진로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다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 친구와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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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회원들은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친구나 가족들 앞에서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 불편한 이야기가 오간다고 하더라도 사적인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를 비난할 의도가 없음을 인지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토론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과 감상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그 자리에 왔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그 목적에 충실하려고 한다.
친구는 거울처럼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존재다. 어릴 때부터 알아온 친구의 변해가는 모습과 친구의 생각이 그 어떤 유명인사의 강의나 책 보다 나에게 크게 다가온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서로를 지켜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나는 고대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나무라면 언젠가 울창한 숲이 되어서 친구와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자주 만나서 가까워지기보다 내가 친구의 생각이 궁금하고 흥미로울수록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다고 생각한다. 친구의 의견이 나와 달라서 기분이 상하기보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부분을 두드려 깨워준다고 느낄 때, 새로운 생각을 불러오는 순간이 반가울 때 관계가 낡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배려하고 동의하는 것만으로 관계가 새로워질 수 없다.
십 년 가까이 독서모임을 해오면서 진지하게 목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꾸준히 책을 읽고, 책을 추천받고, 사람들과 책에서 얻은 지식과 감동을 나누면 재미있다는 것 말고 한 발 더 나아가는 나만의 목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불편함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불편함이 반가움으로 바뀔 수 있게 연습하는 거라고. 불편함이 궁금함이 되도록 훈련하는 거라고. 그래서 저마다의 천 개의 반짝이는 진실을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