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자존심’과 달라요
‘자아존중감(자존감, self-esteem)’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이 못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모두 인정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다른 사람보다 공부를 조금 못할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자존감’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그 사람보다 못났다고 괴롭지는 않은 감정이죠.
‘자신감’은 자신이 있다는 느낌으로 자신이 어떤 것을 잘했을 때, 잘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노래를 잘한다고 한다면 그 자신감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 때 생기죠. 그러다 보니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땐 상실될 수 있어요.
‘자존감’은 ‘자존심’과 혼동하어 쓰는 경우가 있는데, ‘자존감’과 ‘자존심’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을 뜻하고 ‘자존심’은 ‘타인과의 비교나 경쟁 속에서의 긍정’을 뜻하는 등의 차이가 있습니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존감’이 높아야 하는 게 중요한 이유지요. ‘자존심’은 타인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끝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여 상처받기 쉽기 때문이에요.
그에 비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과도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보입니다. 자존감이 높으면 자신감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죠. 자신을 지탱해 주는 감정의 심지가 든든해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어쩌다 생기는 실수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요. 어떤 어려움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합니다.
양육자의 자존감은 아이에게도 전달됩니다. 자존감 높은 양육자가 아이도 자존감 높게 기르는 것이죠. 이때 양육자가 아이를 존중하면서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데요. 다음 상황을 살펴보며 생각해 볼까요?
상황 1. 아이가 집에 돌아오더니 자신이 그린 그림을 유치원 선생님이 칭찬했다고 우쭐댄다.
상황 2. 아이가 모르고 컵을 깨트렸다.
아마도 아이를 존중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거예요.
상황 1. 우와! 축하해! 열심히 그리더니 00의 그림이 칭찬받았구나. 엄마(아빠)가 보기에도 멋진 그림이었어.
상황 2. 다치지 않았니? 실수로 그런 거 알아. 다음에는 엄마(아빠)가 안 깨지는 컵으로 준비해 둬야겠네.
하지만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을 거예요.
상황 1.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한테 칭찬해 준 거 아니야? 너한테만 칭찬한 거 맞아?
상황 2. 넌 누구 닮아 만날 그러니? 덤벙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니? 좀 조심성 있게 행동할 수 없어?
존중의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의 차이가 분명하죠?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한다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반대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를 폄하하고 의심하며 공격하는 의미를 포함하고요. 아이에게 ‘존중의 말’을 자주 건넬 때 아이의 자존감은 올라가겠죠.
자존감이 떨어진 주인공이 어떻게 자존감을 회복하는지 다섯 권의 그림책을 살펴보면서 고민을 더 해볼게요.
첫째, 외모에 대한 불만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진 주인공 <누구나 공주님>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외모에 대해 민감해집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으려 하거나 잘 생긴 친구를 좋아하고 자신이 진짜 예쁜지 자꾸 되묻기도 하지요.
<누구나 공주님>의 마리케는 자신이 동화 속 공주의 모습이 아닌 걸 깨닫고 고민에 빠집니다. 동화 속 공주와 달리 마리케는 안경을 썼고 이도 빠졌기 때문이지요. 아빠가 공주님이라고 불러줘도 시큰둥할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리케의 기분이 나아질까요?
아빠는 마리케를 데리고 마을 곳곳을 다닙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입술 위가 갈라져 보기 흉한 상처가 있지만 머리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미용사, 뚱뚱하고 볼이 늘 빨갛지만 맛있는 초콜릿 과자를 만드는 제빵사, 50년 넘게 서로 사랑한 노부부 등인데요.
마리케는 저마다의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움의 대상인 ‘공주’의 가치가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외모보다도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에서 ‘누구나 공주님’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지요.
둘째, 마음이 약하고 겁이 많아 자존감이 떨어진 주인공 <겁쟁이 윌리>
사람의 성격은 모두 다릅니다. 성격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도 하지만 원래 타고나는 것도 있지요. 어떤 영아는 타고나기를 잘 웃고 쾌활하지만, 어떤 영아는 잘 울고 보채기도 하는 것처럼요.
<겁쟁이 윌리>에 나오는 윌리는 마음이 약해서 파리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조차 “어머, 미안합니다”라고 먼저 사과할 정도죠. 고릴라들은 그런 윌리를 겁쟁이라고 놀려요. 윌리는 그 놀림이 싫어서 역도를 하고 달리기를 하며 근육을 키우고요. 윌리의 노력으로 몸은 불량배가 겁낼 정도로 힘이 세졌는데요.
목표했던 것을 스스로 해냈을 때 자존감은 올라갑니다. 윌리의 자존감은 올라가지요. 처음의 고민이었던 윌리의 성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격은 여전히 “미안합니다”를 잘하는 그대로였어요. 어쩌면 윌리는 처음부터 겁쟁이가 아니라 먼저 사과할 줄 아는 용기 있는 고릴라였던 것 같습니다.
셋째, 아동을 바라보는 어른의 시각으로 자존감이 떨어진 주인공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자존감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지만 많은 경우 가까운 이들의 태도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타인이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느냐, 부정적으로 봐주느냐에 따라 자기 인식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에드와르도>에 나오는 에드와르도는 다른 아이들처럼 가끔, 혹은 때때로 장난을 칠뿐인데 어른의 시선에 따라 ‘버릇없고 시끄럽고 사나운’ 아이가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식물을 잘 가꾸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변하는데요.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책에서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시각을 바꾸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같은 상황을 두고도 표현의 의도는 정 반대로 ‘산만하다’라고 하거나 ‘활발하다’라고 합니다. 이 책의 어른도 에드와르도의 똑같은 행동을 부정의 눈이 아니라 긍정의 눈으로 보자 에드와르도는 못된 아이에서 사랑스러운 아이가 됩니다. 에드와르도의 문제가 아니라 주위 어른이 문제였던 거지요.
넷째, 자신의 원래 모습보다 다른 이의 모습이 부러운 주인공 <우리 그림자 바꿀래?>
우리는 때때로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은 모른 채 내게 없는 것을 지닌 다른 이를 부러워하는데요. 타인에 대한 부러움이 커질수록 자존감은 상처를 입습니다.
<우리 그림자 바꿀래?>의 그림자 동물들은 자신의 주인이 “따분하고 지루하고 싫증이 나서” 그림자를 바꾸기로 합니다. 빨리 달려보고 싶은 거북이 그림자는 캥거루 그림자와 자리를 바꿉니다. 하지만 캥거루가 빨리 달릴수록 거북이 그림자는 속이 메슥거리죠. 가냘프고 약한 메뚜기는 크고 힘센 코뿔소 그림자와 자리를 바꾸지만 자꾸 싸우는 코뿔소가 싫습니다.
그림자 토끼, 황새, 돼지 등 그림자 동물들은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하여 평소 자신이 원했던 그림자 동물이 되어 보지만, 모두 자신에게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림자 동물들은 비로소 원래의 제 모습이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며 자존감은 올라갑니다.
다섯째, 삶의 환경이 절망적이어서 자신을 긍정할 수 없는 주인공 <넌 정말 소중해!>
<넌 정말 소중해!>는 세계 12개 지역에서 가난, 질병, 신분제도, 노동력 착취 등으로 고통과 절망의 삶을 꾸려나가는 아동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뉴욕 할렘의 흑인 아동, 아프리카의 기아 아동,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시달리는 아동,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네팔 아동 등의 모습이 모노톤의 동판화로 형상화했습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넌 너무나 소중해! 고난과 결핍이 너를 지혜롭게 할 테니까” “넌 가장 소중해! 두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으니까”라고 말을 건네는데요. 마지막 장에는 유복한 뉴질랜드 아동을 보여주면서 “너 또한 소중해! 네가 자라는 환경에 감사할 줄 안다면, 그리고 그 행복을 친구들과 나눌 수 있다면”이라고 말을 건네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주위의 따뜻한 관심이 더욱더 필요해지는데요. “넌 정말 소중해!”라고 건네는 긍정의 말은 희망과 용기를 북돋는 데 씨앗이 됩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나의 기준이나 평가를 배재한 채 무조건적인 지지와 믿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힘든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를 존중하며 커나갈 수 있도록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며, “넌 정말 소중해!”라고 말을 건네 보세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펼쳐보며 마음을 나누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