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한 아이가 제대로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지요. 부모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모두 나서서 도와야 할 만큼 육아가 힘들고 어렵다는 말일 텐데요.
육아는 연습 없이 해야 하는 실전이기에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치기 일쑤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즐겁기만 하지도 않지요. 무조건적으로 아이에게 맞추어야 하니 답답할 때도 많고 잘하려고 해도 실수와 실패는 따라다닙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우리 아이는 왜 이런지 자꾸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육아에 관한 책을 읽어도 실전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물어도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육아가 힘겹게 느껴지고 마음이 지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에너지를 충전해야 합니다. 행복한 부모가 아이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오는 지금. 부모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다섯 가지의 질문과 다섯 권의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첫째, 삶의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있나요?
그림책 <코끼리 똥>의 아기 코끼리는 어느 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매일 쉬지 않고 건초와 물을 먹으며 커다랗고 둥근 똥을 해마다 늘려갔지만 50살이 되던 해부터 똥의 개수가 줄어들게 된 것이죠. 코끼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코끼리는 달라질 삶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갖습니다. “50년 동안 난 해마다 1개씩 더하기만 해 왔어. 앞으로 남아 있는 50년 동안에는 해마다 1개씩 빼 가는 거야. 내가 제대로 셈을 하면 끝날 때는 시작할 때와 똑같은 수가 되겠지. 정말 대단한 일이야.”라고 말합니다. 드디어 100년이 되어 더 이상 똥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코끼리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0을 알게 되었다며 행복해하죠.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점이 있기 마련인데요. 그중 대표적인 게 결혼과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자라면서 겪는 변화 또한 가늠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전환점이 기쁨만 주지는 않습니다. 때로 혼란과 상실감,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럴 때 그 전환점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면 좌절하거나 괴로워하기보다 코끼리처럼 삶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건 어떨까요? 삶의 변화와 전환점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혹은 그러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건네어 보세요. 그 삶에 기대와 호기심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둘째, 너무 애쓰고 있지는 않나요?
누구나 육아를 잘하고 싶어 합니다. 책과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도 하고 육아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면서요. <방긋 아기씨>의 아름다운 왕비님도 첫 육아를 잘하고 싶어 합니다.
왕비님은 하루 종일 아기씨 옆을 지키며 아기씨 생각뿐입니다. 아기씨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어 값비싼 옷을 짓고 맛있는 요리를 합니다. 하지만 아기씨는 웃지 않네요. 의사는 아기씨를 웃게 하기 위해 깃털로 건드리지만 아기씨는 울음을 터트립니다. 의사는 다급한 마음에 왕비님께 깃털을 갖다 댑니다. 그때 왕비의 웃음이 터지고 방긋, 아기씨가 웃습니다. 웃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따라 웃은 것이죠.
부모는 자녀에게 잘하려고 해도 종종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낯선 육아에 표정은 굳어지는데요. 거울 속 내 표정이 너무 굳어 있지는 않나요? 혹시라도 자녀에게 무엇인가 더 해주지 못해 조바심내고 있다면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어보세요. 최고의 사랑 표현은 부모의 따뜻한 눈빛과 표정, 아이를 보고 웃는 얼굴입니다.
셋째, 나는 권위 있는 부모인가요? 권위적인 부모인가요?
‘권위’는 흔히 강압적인 훈육을 연상시켜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쉬운데요. 양육에서 ‘권위’는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힘을 말합니다. 부모가 억지로 아이를 끌고 가는 힘이 아니라 부모가 모범을 보여 아이가 따르게 하는 힘인 것이죠.
권위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평소 아이와 친밀하게 소통하되, 아이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바로 잡아주는 훈육을 해야 합니다. 아이가 부모를 모델링하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로서의 권위가 생깁니다.
그런데 <으르렁 아빠>의 늑대 아빠는 온통 검은색으로 자신을 치장하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자신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며 권위를 세우려고 하죠. 아내는 “여보, 그 검은색 옷들 때문에 당신은 항상 화난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늑대 아빠는 권위 있는 부모가 아니라 권위적인 모습입니다. 자신의 기준을 자녀에게 맹목적으로 강요하며 아이와의 소통이 아닌, 복종을 요구하네요. 권위적인 부모 곁에서 자란 아이는 정서적인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고 그로 인해 문제행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요.
아이들은 이런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빠의 검은 장화와 장갑을 벗깁니다. 놀랍게도 검은 늑대의 몸은 알록달록 했지요.
우리의 진짜 색은 무엇일까요? 이 책은 권위로 인정받으려는 어른에게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하며 으르렁대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친밀한 소통을 위해서는 ‘권위적’일 게 아니라 진정한 ‘권위’를 갖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넷째, ‘엄마’ 이전에 개성을 지닌 ‘한 사람’인 나를 존중하나요?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말이 있는데요. 결혼하여 살림을 꾸려봐야 엄마의 수고와 희생이 얼마나 값진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엄마’의 수고와 희생은 당연한 걸까요? 그게 엄마 모습의 전부일까요?
<엄마의 초상화>의 엄마인 미영 씨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는 엄마일 뿐만 아니라 꿈과 욕망이 있는 ‘한 사람’입니다. 딸이 그린 엄마의 초상화는 세월을 감추려 뽀글뽀글하게 파마를 하고 메말라가는 손을 지닌 모습이지만 미영 씨는 춤을 배우고 모자로 성긴 마음을 감싸는 멋쟁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미영 씨는 두려움을 모르는 탐험가이거나 자신이 집이 아니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미영 씨는 딸이 그린 초상화보다 낯선 여행지의 화가가 그려 준 초상화를 마음에 들어 합니다. 딸에게는 낯선 모습이지만, 그 낯섦은 은연중에 부모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며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모른 척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겠지요.
때로 우리는 가정생활에 치여 ‘부모 이전의 나’가 지워지기도 하는데요. 그 지워진 모습에 내가 좋아할 만한 초상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부모 이전의 나, 한 인간으로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질문을 해 보세요. 대답을 찾아가며 그 모습을 잃지 않는 지혜를 발휘해 보세요.
다섯째,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있나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중 ‘인간관계’만큼 복잡 미묘하고 어렵게 하는 것은 없을 거예요.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처를 주고받기가 쉽지요.
<곰 씨의 의자>는 자신의 의자에서 시집 읽기를 좋아하고 차를 마시며 음악 듣기를 즐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와 친구가 되죠. 하지만 그때부터 곰 씨의 일상은 서서히 금이 갑니다. 토끼 가족이 늘어가면서 곰 씨에게는 더 많은 친구가 생기지만 불편도 커집니다. 점점 온화하고 우아한 본래의 자기 모습마저 잃어 갑니다. 예전처럼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 곰 씨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냅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좋기도 하지만 갈등이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본래의 내 모습을 잃어가는 듯 해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내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겠지요. 더불어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곰 씨처럼 말이죠.
육아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긴 여정입니다. 오늘 건네는 질문들이 그 여정을 가는 동안 좋은 양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한 해 동안 누구보다도 수고한 나를 다독여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