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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오 Dec 13. 2024

엄마, 나도 백점 맞고 싶어

OO이는 좋겠다.. 백점 맞아서...

초3이어도 단원평가는 수시로 받는다. 공대를 졸업한 나로서는 대학교 때 쪽지 시험이 학기 내내 있는 기분이었다. 대학생도 아닌데 왜 이렇게 쪽지시험이 많은 거지? 이해가 선뜻 가지 않는다.

그런 기특이가 특별히 어려워하는 분야는 역시 수학이었다.

요즘 초3수학을 풀어 본 적이 있는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왜 만만치 않냐 하면 수학에 국어를 더한 문제들이 많아서이다. 그러니까 수능이 일찍 시작된 느낌이다.

하긴 요즘 수능이 어떻게 출제되고 있는지 모르는 나로서는 이게 수능 스타일인지도 아리송하다.

논술학원이 많고 문해력이 중요하고 그런 이유가 다 있구나 싶은 게 수학을 보면 그렇다.

정답은 알고 보면 별거 아닌데, 문제는 3줄 이상. 블라블라블라 그 안에 스토리를 이해해야 한다.

기특이는 3줄 이상 문제가 길어지면 처음에는 아예 포기해 버리고 잘 모르겠어를 연발했다.

문제를 읽다 보면 기특이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문제를 빙빙 꼬아서 만드는 걸까?

그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특이처럼 느린 아이가 아니어도 힘들 터이다.


예전에 신문기사에서 현 초등학교 20년 차 교사도 지금의 교육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글을 봤다.

특히 수학은 문제안에 언어능력까지 섞어놔서 아직 한글을 떼지 않고 온 1학년들에게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 이렇게 해야만 할까? 모든 아이들을 다 박사님 만들 계획으로 교육과정이 짜이는 걸까?

안 그래도 코로나 시대를 겪은 영유아기 아이들은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갇혀 시대가 만든 '언어지연' 아이들이 많다. 이런 아이들의 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교과서는 여전히 하이레벨을 유지 중이다.

수학의 기초는 연산이라고 하지만 사실 4칙연산은 문제에 별로 나오지도 않는다.

아마 그 조차도 기본이니 다 뗐다는 전제를 가지고 경시대회급 문제를 만드는 것인가...

아이를 가르치다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어른도 알쏭달쏭한 문제가 진정 초등학교 수준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며칠 전 수학 단원 평가가 있던 날.

기특이는 '분수'보다는 훨씬 쉬원던  '들이 와 무게' 단원에서 무려 85점이라는 쾌거를 기록했다!

우아!!!! 기특아 너무 잘했어!!!

하지만 나의 칭찬을 받고 좋아하던 기특이의 얼굴이 곧 시무룩해진다.

백점 맞은 친구들이 12명이란다^^;;(기특이 학교는 반 아이들이 과밀이라 문제가 쉬우면 백점자들도 많이 나온다) 그중 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OO 이는 좋겠다. 백점 맞아서. 나도 백점 맞고 싶은데..


아.. 이럴 때 엄마인 나는 무슨 대답을 해줘야 할까?

너도 잘했어! 85점도 잘한 거야!

아님, 최선을 다했으면 점수는 중요하지 않아. 네가 열심히 한 게 중요한 거지!!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답변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굴러가지만 그 순간 나는 어버버 딱히 좋은 멘트가 생각나지 않았다.

잘 못해도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가질 수 있을 거라고 그동안 나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냥 반에서 너무 쳐지지나 말자, 진도라도 따라가자 이 생각에만 매달렸지..

기특이도 나름 쉽다고 느끼는 분야에서는 더 잘 고 싶은 욕심이 날 수도 있음을..

분수를 가르칠 때는 정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하루하루였는데, 그래도 가끔은 80점대 점수를 받고 온 날이면 기특이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어 나도 미소가 지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고 하는 3학년이 얼마 안 남았다. 4학년부터는 고학년 형님반이다.

4학년이 되면 학교 수업도 수준이 더 올라갈 거고 아이들은 또 저만치 앞서 갈 것이다.

그 안에서는 나는 어떤 중심을 잡아야 하고 어떤 힘듦이 또 예정되어 있을까.

두렵다. 사실 두렵지만 안 두려운 척 오늘 하루만 살아야 한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하루 3번씩 다짐하고 내일을 맞이하자. 그럼 정말 괜찮아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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